만약 당신이 광양에 전원주택을 짓는다면 어떤 기준으로 마을을 선택할까? 필자는 십여 년 전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째, 직장과 종합병원이 승용차로 30분 이내. 둘째, 마을 뒷산과 앞 시냇가 즉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광. 셋째, 마을의 전통과 인심. 넷째, 축사 등 주변 혐오 시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등이었다.

그래서 옥룡면 남정마을을 선택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저절로 끌렸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창밖을 통해 넓은 들판과 멀리 국사봉 능선을 바라보면 마치 고향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퇴근하고 날마다 고향의 품의 안긴다는 착각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과장처럼 들린다면, 광양읍 옥룡 방면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3km 지점에 이르면 왼쪽으로 펼쳐지는 너른 들판 너머 옹기종기 낮은 주택들이 보이는 마을, 그 입구에 잠시 멈추어 보시라. 마을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옥룡 제일 남정’이란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할 것이다.

호두산 아래 남정마을과 들판
호두산 아래 남정마을과 들판

굳이 풍수를 논하지 않더라도, 호랑이 머리 모양의 백운산 줄기인 호두산(虎頭山)이 마을을 품고 있고 앞으로는 옥룡 최대의 들판이 펼쳐지고 있어 이곳 인심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마을 입구에 장기(場基) 혹은 장터거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이곳에 큰 장이 열려 이곳 곡식과 소금을 얻기 위해 순천 월등, 황천, 하동 화개에서 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이천 서씨 제각 옥평사
이천 서씨 제각 옥평사

남정마을은 현재 70여 가구에 110여 명이 살고 있다.
올해로 세번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정현식씨에 따르면 “최근 점점 가구수가 늘고 있는데, 이것이 한 마디로 우리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말해 준다”고 하면서 트럭을 몰고 씽하니 모내기하러 떠났다.

마을 뒷산 고갯길을 넘으면 봉강면 부현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왼편으로 산본, 오른편으로 하평마을이 있고 마을 앞 2차선 도로를 건너면 덕천이다.

마을 이장 정현식씨
마을 이장 정현식씨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헌상 기록에는 1600년경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 남정촌(南井村)’이라는 근거가 있고, 구전에 의하면 약 450여 년 전 이천서씨(利川徐氏)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는데 지금도 서 씨가 다수이다. 마을 이름은 우물과 관련이 있다. 옛날 광양현감이 가목재 밑 맑은 샘물을 마시고 감탄했다는 감로정(甘露井)이 있었다. 이곳 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남정(南井)이라 부르게 됐단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인돌공원
문화재로 지정된 고인돌공원

마을 소개 1번지는 무엇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청동기시대의 흔적인 고인돌군이다. 인근 하평마을에도 고인돌이 있지만, 이곳은 44기로 광양에서 최대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로 보아 늦어도 2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인근에 촌락을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고인돌 공원 덕분에 광양의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향토사들의 필수 답사코스가 되었다. 그 옛날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무거운 돌들을 이곳에 어떻게 옮겼을까 호기심이 자동으로 솟는다. 내 고장이 수천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것은 그만큼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 즐거움과 괴로움이 서려 있는 곳이기에 삶의 교훈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개인 소유로 되어 있어 전에 보이지 않던 가묘 같은 무덤도 생겼다. 바라기는 행정당국이 이곳을 매입해 제대로 된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됐으면 한다. 애향심은 어렸을 때 많은 추억을 쌓음으로써 그 씨앗이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표지판을 작은 크기로 새롭게 단장했는데, 단체가 동시에 보기에는 위치가 적절하지 않아 아쉽다. 반듯하게 서 있던 예전 표지판이 차라리 좋았다. 

솔섬공원 내 정자
솔섬공원 내 정자

다음으로 자랑거리는 마을 앞 솔밭공원이다. 공식 이름은 ‘동천내하천섬공원’으로 약 1만5천평이다. 마을에서 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율천교를 건너야 하지만 산남리 135-1번지에 해당한다. 사실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기보다는 순천, 광양읍 등 외지인들이 훨씬 많이 찾아온다. 수년 전 텐트를 이용한 캠핑 인파가 너무 많아 마을 입구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주민들이 민원을 넣었고 그 이후로 캠핑은 금지됐다. 요즘 다시 캠핑카들이 늘고 있다.

솔밭공원은 백운산에서 시작하는 동천(東川)이 남정마을 앞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생긴 하천섬이다. 30여 년 전에는 개인 소유 덕천농장이었다. 필자는 당시 농장주인과 우연히 인연이 되었는데, 그는 채소와 과일을 트럭에 싣고 와 금호동에서 판매했다. 나중에 농장을 방문해 그가 솔섬 안에 자갈밭을 일구게 되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소상히 들었다.

그리고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매미가 엄청난 폭우와 강풍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필자가 목격한 바로, 마을 앞 들판에 컨테이너 몇 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농장은 돌로 지은 창고만 남고 모조리 폐허가 되었다. 이후 시에서 매입해 하천섬 공원으로 새로 단장했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고, 화장실, 주차장, 돌다리, 전망대, 자연 관찰대, 습지원, 캠핑데크, 족구장 등이 조성돼 새로운 힐링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특히 섬 양쪽은 얕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안전한 물놀이는 물론 각종 새와 수초들의 보고가 되었다.

공사 중인 바이오톱(우측 호수)
공사 중인 바이오톱(우측 호수)

2019년 전남녹색연합은 이곳 식생조사를 하고 나무 이름표를 부착했다. 현재는 개인뿐만 아니라 환경단체, 마을학교, 유치원, 초등학생들의 놀이와 생태교육현장으로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 겨울 굴삭기를 동원해 강바닥을 긁어내는 공사를 하더니만, 요즘 광양시 산단녹지센터에서 바이오톱을 리모델링해 ‘공동체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최고의 예의는 가급적 원형 보전이 아닐까 싶다. 잘 우거진 숲으로 그리고 섬 양편으로 흐르는 시냇가로도 훌륭하건만 바이오톱을 만들고 데크길을 깔았다가 뜯어내고 이제 다시 새로운 공사를 한다.

2억원이 넘는 큰 세금이 쓰이는 만큼 소기의 목표를 달성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연 녹지공간이나 공원 개발을 할 때는 환경단체의 의견도 수렴해 주면 좋겠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곳을 전국 최초 ‘시립가족공원’으로 지정해 음주나 흡연을 금지하고 가족들의 힐링과 학생들의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한다. 

마을에는 최근 핫플로 떠오르는 ‘남정빵체험농장’이 있다. 이 농장은 도토리마을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농장주 서예신 씨는 “땅도 살리고 아이들 아토피 치료에도 도움이 되어 시작했다”면서 요즘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줄을 이어 즐거운 비명을 지를 지경이라고 한다. 

남정 빵체험 농장
남정 빵체험 농장

돌배 소보로, 매실 마들렌, 곶감쿠키, 컵케익, 고구마빵, 피자, 효소청 만들기, 해먹타기 등 다양한 메뉴와 자연물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남정마을의 명사 중 한 분은 서정현 씨이다. 그는 2020년 당시 마을 이장을 했는데 광양시의 도움으로 마을 진입로 넓고 반듯하게 확포장 된 기념으로 사비를 들여 높이 2m의 화강암으로 표지석을 세웠다. 이뿐 아니라 그의 선행은 광양여고 축구부에 매년 쌀 200kg을 기증하는 등 다양하다. 그의 선행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폐지나 고철 등을 수집해 판매한 수익을 사용하는 점이다. 자원 재활용과 기부 천사로서 그는 생을 마칠 때까지 즐겁게 살고 늘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마을의 수호신 250살 팽나무
마을의 수호신 250살 팽나무

남정마을은 2020년 농림축산부 공모 사업 지원금 5억원으로 마을 담장 개량과 전통 우물을 복원하는 등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경관을 가꾸거나 소득 작물 경영에 힘쓰고 있다. 앞으로 마을 뒷산에 둘레길을 내고 마을 앞 들판에 마을 정원을 가꾸고 노인들이 함께 숙식할 수 있는 노인 공동 생활시설을 세우면 좋겠다. 낮에는 어린이들이 찾아오고 밤에는 평생 친구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집을 멀리 떠나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단정한 담장 개량 사업
단정한 담장 개량 사업

한편 남정마을이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너른 들판에 점점 늘어나는 대규모 태양광 시설과 마을과 좀 떨어진 거리이지만 규모를 키워가는 축산농가들과의 원만한 협상과 타협이다. 개인의 영리활동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곳에 수 백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당사자 간의 갈등이 합리적으로 풀리지 않을 때, 행정 당국이 중재하는 역할을 하거나 마을에서 최소거리를 떨어지도록 하는 제도를 수립해 주기를 기대한다. 
글·사진=박발진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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