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2

열린 샷시유리문을 넘어 단정한 가정집 같은 밥집 안으로 타고 들어오는 바람 한 점은 귀밑에 맺힌 땀을 식히기에 충분하다. 시골집 대청마루에 앉은 듯 반들반들한 바닥에 앉으면 단출한 메뉴가 한 번 더 시원함을 준다. 유월 초. 날이 더워지며 입맛도 생기를 잃고 시들해진다. 나간 입맛을 되돌리는 신의 한 숟가락–보리밥이야말로 오늘 점심으로 제격이다.

남일보리밥. 옛 남일호텔 뒤편에 자리한 광양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골목길을 먼저 기억하는 밥집이다. 대장간 있는, 학교 가던 골목길 친숙한 길가 가정집이 길이 뚫리며 큰길가 보리밥집이 되었다. 오래전 이야기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살리고 옛 기억을 살리고 있다. 

메뉴는 간단하다. 보리밥과 추어탕이 사철메뉴이며 계절 메뉴로 여름 한 철 장어탕을 내놓는다. 

주메뉴인 보리밥을 시키면 먼저 고추장과 참기름이 상위에 대기 중 상태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무생채, 버섯볶음, 호박볶음, 고사리나물, 콩나물무침, 야채무침, 배추나물, 열무짠지 등 비비기 알맞은 밑반찬이 나오고, 파릇한 열무와 상추가 담긴 쌈채 바구니가 뒤를 잇고, 뒤따라 갈치속젓과 쌈장이 놓인다. 드디어 오늘의 주연배우 보리밥이 입장하고 주연급 조연 된장찌개가 대미를 장식한다. 자 이제부터 입맛 확 당기는 향연의 시작이다. 

보리밥은 먹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식객의 방법을 소개하자면 먼저 된장찌개를 뜰 국그릇에 보리밥 한 덩이를 넣고 찬물을 부어 말아서 한 입 뜨면서 쌈채 위 고추를 들어 쌈장에 찍어 베어 물면 첫술에 입을 헹굼과 동시에 초여름 더위는 한걸음 물러난다. 

물에 말은 보리밥을 다 먹고 나면, 그릇에 다시 보리밥 한술을 담고 이번엔 된장찌개를 한 국자 떠서 말아 술술 목을 넘긴다. 옛 집된장 맛에 광양 입맛의 특색인 방아잎이 들어간 찌개의 향기야말로 보리밥과 찰진 궁합이다. 이제 입맛은 한껏 돋우어졌고 한낮의 만찬은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대접에 담긴 보리밥 위로 상위에 나열된 모든 반찬을 올린다. 그리고 고추장 작은술 두 개, 참기름 죽죽 두르고 비빈다. 

보리밥은 비빔밥을 위해 태어났을까? 숟가락으로 툭 건들면 스스로 굴러서 참기름을 바르고 고추장과 어울리고 반찬과 한 몸이 된다. 입에 침이 고인다. 큼직한 열무이파리를 손에 올리고 비빈 보리밥을 한 숟가락 뜨고 갈치속젓을 한 젓가락 찍어 올리면 아아 이 맛, 만원의 개꿀 행복이다.

몇 해 전에 작고한 장인어른은 보리밥을 드시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면 나름 성공한 노년의 신사가 옛 생각에 젖어 보리밥을 먹는 장면도 나오건만 어린 시절 꽁보리밥 같은 가난이 너무 힘드셨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 배를 채우던 찰기 없고 찬 없는 보리밥을 기억하기 싫어하는 장인을 위해 장모님은 좋은 쌀을 찾아 끼니마다 가마솥에 쌀밥을 해 평생 상에 올리셨다. 보리밥은 그때의 보릿고개와는 다른 근래에 와서 근사하게 각색된 살만한 세대의 추억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보리밥 한 그릇의 조화로움을 통해 세대 간 밥상머리 소통을 권유한다.

‘남일보리밥’의 건강한 밥상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기 바라며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다음 밥 한 끼는 어디로 가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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