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3

전화 예약하셨어요? 식당의 미닫이문이 열리면 들리는 소리다. 오픈된 주방에서 연세 지긋한 사장님은 면을 밀고 뽑느라 문 쪽에 눈길도 못 주고 따님으로 보이는 젊은 한 분은 콩을 삶고 가느라 분주하다. 손님은 허공에 대고 무언가 잘못한 듯 “안하고 그냥…” 말의 끝을 흐린다. 그러면 주인께서는 “오래 기다려셔야 합니다” 손님은 익숙한 듯 “네”라고 답하고 메뉴도 말하지 않고 앉는다. 

물과 반찬은 셀프입니다. 식당 큰 벽면을 채우고 있는 많이 자유로운(?) 메뉴판엔 셀프를 강조한 큰 글귀가 두 개나 붙어있다. 물과 반찬뿐 아니라 홀에서의 모든 것은 손님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분은 주방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요^^. 사장님은 목소리에서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 또한 주방에서 노룩패스처럼 목소리 하나로 홀의 손님들을 조화롭게 지휘하시는 사장님의 쌓인 내공이리라. 

비 오는 날 메뉴가 있는 식당. 분위기에 적응할 즈음 메뉴판 아래쪽 흰 종이에 매직으로 써서 붙여 놓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비 오는 날 메뉴. 알면팥죽, 동지죽, 콩죽, 팥죽, 콩새알죽’ 그럼 비 안 오는 날 메뉴는 무엇인가? 빠른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마른 날 메뉴는 오직 하나, ‘콩국수’다. 계산 후 나오며 사장님께 궁금해 물었다. “사장님, 비 오는 날 기준은 어떻게 정하세요?” 답답하다는 듯 “그날 아침에 내가 정하지 머” 우문현답에 그저 “네네” 재밌다.

상아분식. 광양읍 칠성주공 1단지 103동 큰길 맞은편 골목 오른쪽 초입 광양교회 앞에 있는 콩국수 집이다. 여느 분식집처럼 여러 가지 메뉴가 있으면서도 콩국수 한 가지만 파는 곳, 20분 전에 전화 예약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곳, 주문과 동시에 사장님이 면을 밀고 뽑고 삶는 곳, 그와 동시에 종업원이 콩을 삶고 갈고 콩물을 만드는 곳, 홀엔 스스로 앉고 일어나 셀프로 물과 반찬뿐 아니라 먹고 나서 짬 처리도 손님 몫인 곳, 비 오면 메뉴가 추가되는 곳, 비 오는 날에 다시 가고 싶은 곳, 맛에 진심인 곳,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시집온 21년차 카리스마 사장님의 멋이 군데군데 스며있는 재미진 동네 콩국수 집이다. 

주문은 필요 없다. 앉은 수만큼 콩국수 주문이 자동으로 들어간다. 손님 중 한 명이 일어나 물과 반찬을 가져오고 한가롭게 기다리자면 자연스레 면과 콩물을 만드는 장면에 눈이 가고 시간이 금새 지나간다. 반찬은 평소 무생채, 콩나물, 김치, 삶은콩간장조림 등 서너 가지다. 거기에 오늘은 농장에서 재배한 오이와 고구마순나물이 추가됐다. 콩국수 반찬으로는 많은 편이다. 손님들 문 여닫는 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국산 콩만을 사용해 콩물 가는 소리, 홀 안은 장면과 소리로 풍성한 점심시간이다.

두 분 콩국수 나왔습니다. 콩국수를 식객이 직접 서빙 해 와 식탁에 놓는다. 우유인 듯 하얗고 고소한 콩물에 빠진 탱글 찰진 면과 그 위에 얹어진 곱게 간 얼음, 마치 대접에 가득 담긴 빙수 한 그릇 앞에 놓고 있는 듯 바라만 보아도 시원함에 몸을 떨게 한다. 처음엔 소금간만 해서 반 먹고 반은 설탕간을 추가해서 달콤하게 후루룩 마시듯이 먹는다. 그래, 올여름은 이곳이다. 상아분식 콩국수. 팔천원.

연세 많으신 노부부께서 계산을 하시는데 2천원을 빼 주신다. 이어지는 사장님 목소리, “80세 이상 어르신은 천원씩 할인해 드립니다” 아~ 칠성리에 멋짐주의보 발령!!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다음 밥 한 끼는 어디로 가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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