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4

자장면 처음 먹은 날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된 시간일수록 더 또렷하게 기억할 확률이 높다. 가난한 시간이었고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간이었다. 식객은 읍내 장날 아버지와 함께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먹었던 고향의 그곳 중국집 이름뿐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 자장면의 맛, 그 집 사람들까지 기억난다. 물론 생전에 모시고 여러 번 다시 방문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시절 중국집은 외식을 상징하는 대표선수였다. 

그래, 오늘 점심은 중국집이다. 돌아가신 중국집 사장님이 형편이 어려워 일찍이 하동터미널 근처 중국집에서 일을 시작하셨단다. 40여 년 전 식당을 차렸을 때 배달을 할라치면 이 마을 논두렁 저 마을 밭두렁으로 한 번에 다니다 마지막 도착한 곳에서는 면이 불어서 원성이 자자해 배달을 중지했단다. 양이 너무 많아서 적게 달라는 손님과 싸운단다, 빨리 먹지 않으면 양이 너무 많아서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단다. 옛날엔 볶음밥 한 그릇으로 온 가족이 다 먹었단다. 음식 가격 올리지 말라는 사장님 유지를 받아 아직도 다른 곳의 반값을 받는단다. 

신원반점. 광양사람치고 이곳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가끔 중국집을 생각하면 신원반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언젠가 다압이 고향인 사람들과 신원반점 이야기를 할 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설의? 말들을 보탰다. 오랜 세월 지역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추억이 되고 문화가 되고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이리라. 

비 오는 날 아침, 조금 일찍 서둘러 일행과 다압면의 입구 신원으로 향했다. 옥곡을 지나 진상을 지나고 탄치를 넘어 하동읍으로 들어가는 섬진교 건너기 전 원동삼거리에서 진월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바로 섬진강가에 신원반점이 자리한다. 신원교차로가 생기며 자리를 옮겼다. 몇 해 전 옮긴다는 소리를 듣고 이후 첫 방문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11시 30분. 벌써 주차장엔 차들이 그득하다. 그렇다고 차 델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앉을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일이라서 일하다 온 손님이 많았고 테이블 회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짜장면 3천원, 짬뽕 4천원, 점심엔 요리는 안 되고 식사 종류만 가능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우린 탕수육 찍먹을 주문해 양이 많으면 싸 올 생각을 했었다. 처음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할 수 없이 짜장과 짬뽕만을 주문하니 두 사람 합이 7천원. 민망하다. 곧이어 음식이 나오자 그 양에 다시 놀라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세 번째 놀란 것은 맛, 변함없는 딱 그 맛이다. 어렴풋이 창업자 사장님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식객은 싸고 맛있는 음식에 감사해 티슈 한 장, 물 한 모금도 스스로 아끼게 된다.

게눈 감추듯 자장면 한 그릇 비우고 나니 배가 빵빵해진다. 같이 간 일행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짬뽕지옥에 걸려들어 애처롭게 나를 바라본다.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나는 일행을 돕기로 했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손님들 대부분은 남기지 않고 비운다. 다리를 건너 하동 송림을 걸었다. 옛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게 미소 짓는 시간이었다.

동쪽 하동사람 서쪽 광양사람들이 매일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곳.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신원반점. 이미 유명하지만 다시 들러 기분 좋은 옛일들을 떠올리고 싶은 변함없는 완소 중국집이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다음 밥 한 끼는 어디로 가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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