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균영백일장 입상작품_2-초등부 대상┃백은성

푸릇푸릇한 나무들은 계절이 바뀌면 그 날씨와 사람들의 옷차림에 맞게 잎들을 바꿔가곤 한다. 사람들도 계절이 바뀌면 그 날씨와 특별한 일정에 맞춰 옷들을 골라 입곤 한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하지만 내 옆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 언제나 한결같이 나에게 웃어주시고, 나에게 칭찬과 마음을, 위로와 조언을 함께 건네주신 나의 외할머니이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나의 어설픈 글이자, 외할머니께 바치는 서툰 것밖에 없는 내 마음의 글이다.

광양에 한 마을 언덕 꼭대기엔 우리 엄마가 살았던 낡은 기와집 한 채가 있다. 보안도 허술하고 기술도 덜 발달된 그 낡은 집엔 80세가 넘으신 우리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다. 그 낡은 집에서 할머니는 정말 자주적으로 살아가고 계시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뒤뜰의 채소를 가꾸시며 아침을 드시면 마을회관을 청소하러 일을 나가신다. 그 넓은 마을회관을 열심히 청소하시고 퇴근하면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만 바라보시곤 한다. 그렇게 집에 오시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텅 빈 집에 돌아와 TV를 보다 잠이 드는 재미없는, 혼자여서 외로운 하루를 내일도 모레도 반복밖에 되지 않는 하루를 살아가신다.

난 할머니가 외로운 날들을 보내시는 게 싫어서 할머니께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아요하며 할머니를 설득시켜보려 했지만, 항상 안돼, 할미 없으면 도깨비 나와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처음엔 답답할 뿐이었다. 낡은 집이 아닌 현대적인 집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딸, 서방, 손주들과 함께 사는 외롭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훨씬 행복할 텐데 말이다. 그땐 그저 할머니가 고집부리시는 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고집이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차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추억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5남매를 키워온 추억, 사랑하던 남편, 즉 할아버지를 일찍 보낸 가슴 아픈 추억, 작았던 자식들이 어느새 다 커서 이젠 새 생명을 키워가려는 기분 묘한 추억. 그리고 앞으로 그려갈 새로운 추억들을 지키기 위해 40년이 넘도록 그 집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기억 못 할 추억이라기엔 소중하고 값진 순간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정말 미련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그건 할머니의 유일하고 커다란 의지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금방 접어뒀다.

할머니, 할머니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 집에서 살아오셨어요?

어떤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며 외로움을 견뎌오신 거예요?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추억을 이렇게까지 간직하고 기억하려는 이유는 뭐에요?

정말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다. 할머니가 힘들게 살아왔던 걸 아니까. 난 그저 조용히 마음으로만 위로 드릴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가 미련하고 바보 같다며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의 소중한 기억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광양에 한 마을 언덕 꼭대기에 있는 낡은 기와집에 살고 있는 소소하고 해맑은, 자신의 일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억하려는 미련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를 보려고 가려 한다. 할머니의 추억 속에 내가 이렇게 할머니를 사랑한다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 할머니를 사랑하지만, 표현이 서툰 내가 내 진심을 전하기 위해. 할머니께 꼭 전할 것이다. 할머니는 미련한 게 아니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재미없고 외로운 나날들이 아닌,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나날들이라고 내가 철이 없어 함부로 생각했다고. 꼭 전하고 싶다. 할머니의 소중한 추억들이 기억되길 바라니까.

푸릇푸릇한 나무들은 계절이 바뀌면 그 날씨와 사람들에 맞게 잎들을 바꾸곤 한다. 사람들도 계절이 바뀌면 그 날씨와 특별한 일정에 맞춰 옷들을 골라 입곤 한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하지만 내 옆엔 그렇게 살아가진 못하지만, 재미없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특별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 순간의 감정을 소중하게 기억하느라 40년이 넘도록 한 기와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외할머니는 추억 지킴이다. 지금까지 써 내려온 이야기는 나의 어설픈 글이자 할머니께 바치는 마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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