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김세광 하조나라 대표

요즘 들어 골목이나 시냇가에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

몇몇이 어울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냇가 바위틈을 헤집으며 서로를 부르며 깔깔거리며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물속의 고기떼들을 보며 큰 일이라도 생긴 듯 빨리 와! 여기 엄청나!”하며 급히 친구들을 부르기도 한다.

아이들은 몰려가고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진다.

거칠 것 없는 그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잠들어 있는 듯한 산촌의 고요를 깨운다.

전에 없던 광경이라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고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증이 생긴다.

어디에서든 한곳에 머물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은 아이들의 본능인 듯하다.

길을 지나다가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길 강아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그 아이들을 만났다.

착한 일을 하는구나, 어디서 왔어?”

옷차림이 단정한, 선한 눈빛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저기 저 집으로 이사 왔어요. 봉강초등학교에 다녀요.” 아하! 알고 보니 도시에서 산촌으로 유학 온 아이들이었다.

유학이란 시골에서 큰 도시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도시에 살던 아이들이 산촌으로 와서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게 세월이라더니 우리의 생활환경도 문명의 변화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는 듯하다.

세상에는 자식의 학교 성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잡한 세상에 상처 없이 건강하게 커가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다.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회가 조금씩 성숙해가는 듯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산촌 여기저기에는 안타깝게도 비어 가는 학교가 많다.
아이들 소리가 사라지고 덩그렇게 남은 폐교들이 버림받은 듯 처량해 보인다.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에는 잡초들이 우거지고 교실 창문 밖에 세워진 위인들의 동상에는 푸른곰팡이가 눌어붙어있다.

아이들의 꿈을 키우게 하던 위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갈 곳 없는 패잔병처럼 보인다.

그나마 연명하듯 남아있는 학교마저도 학교의 크기에 비해 아이들이 많지 않아 운동장에서 모여있는 채 열 명도 안 되는 아이들을 보면 교정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학생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산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가족이 함께 거주할 집을 제공하고 근처 학교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처음 1년 거주를 목표로 했던 계획이 2년으로 다시 3년으로 연장되고 있어 흐뭇한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이 산촌으로 이사 왔을 때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딸은 4살이었다.

아침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듯 노란 버스가 마을에 나타나면 버스 정류장에서 병아리들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타곤 했다.

어느 날 아침 정류장까지 걸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엉엉 울면서 집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학교 가기 싫다며 울먹거렸는데 순간 뭔가 문제가 생겼구나 싶어 가슴이 덜컹했다. 이유인 즉 길에 개구리들이 튀어 올라와 징그럽고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것이다. 속으론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겨우 아이를 달래고 어르며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종종 헤어진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울먹거리도 했고 학교도 허름하고 흔한 치킨집도 없고 쓸데없이 높은 산만 있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곤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을 낯선 환경에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듯한 죄책감 때문에 여러 날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반색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학교에서 형들과 축구를 했는데 어땠는지 알아요? 그 형들이, 동하야! 하고 내 이름을 불러 주었어요, 참 신기했어요.”

그를 대하는 아이들의 살가운 태도에 아이의 음성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전교생이 고작 50여 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라 누군가 전학을 오면 몇 학년 누구, 사는 동네까지 아이에 관한 신상이 학교에 확 퍼졌다.

모르는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그에게 관심을 베풀어 주고 있다는 것이 도시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 아이는 조금씩 학교에 적응해갔다.

처음 귀촌했을 때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의아해하곤 했다.

사람들은 아이들 학업을 이유로 도시로 이사를 가거나 유학을 떠나기도 하는데 거꾸로 산골로 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내가 전원생활에 대한 욕심이 컸던 탓도 있지만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생각이 좀 달랐다. 어릴 때부터 과도한 공부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며 커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급적 피곤해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바랐고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교실에서 배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운동장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였다. 운동회날이면 그 나무를 중심으로 울긋불긋 만국기가 걸렸고 중간쯤에 걸린 확성기에 울리는 노랫소리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 적이 있었다.

늘 푸르고 튼튼한 모습으로 서 있던 그 나무는 그 시절의 아름다운 자태는 물론 나의 미래의 꿈과 희망까지도 품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을 느끼면서 함께 호흡하는 것이 그의 인생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름다운 풍경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거나 시냇물의 맑은 소리에서 음률을 생각하거나 가슴으로 다가오는 느낌에서 시를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찬찬히 둘러보면 자연에는 살아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산을 이루는 꽃과 나무는 물론이고 해마다 푸른 논밭에도 새싹들이 커가고 심지어는 흐르는 구름도 냇물도 바람조차도 부단히 움직인다.

그런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에서 사람들은 힘과 활력을 얻는다.

그런 힘과 활력은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쌓이고 생각 속으로 깊이 저장되며 한동안 잊혔다가 기억으로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들은 군을 제대하고 대학을 나와 자신이 틈틈이 쓴 글을 출간하기 위해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었고 책을 두 권이나 출판했다. 또래의 친구들이나 학생들에 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랐고 하고 싶은 일을 주저 없이 행하는 적극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에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앞날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부모의 DNA를 물려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구체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 힘차게 나아가는 과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속에도 세상을 사는 즐거움이 생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오롯이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이루고 그 가운데에서 누구에겐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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