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8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에 무얼 하나? 방학할 아이들을 둔 부모 세대들은 기억날 것이다. 방학이면 며칠 외할머니댁에 가서 나무 그늘 밑 평상에 앉아 외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을 푸지게 먹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다가 일어나 우물에서 건져낸 시원한 수박을 잘라 주시면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던 여름방학 외할머니댁 풍경 말이다.

어느 여름밤, 어머니께서 어린 나의 손을 잡고 해주던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시부모님과 집안 어르신들 모시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던 새댁시절 친정엄마가 방문해 가시며 모두의 눈을 피해 어렵게 주고 간 떡 몇 조각이 너무 안쓰럽고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찬장 구석에 놓았다가 시어머니에게 들켜서 꾸중 들었던 이야기를 웃으며 해주었다. 나는 나이 어린 어머니의 그리움 너머로 단정하게 쪽 찐 머리에 고운 한복 차려입으신 외할머니께서 시집간 어린 첫째 딸 걱정에 얼마나 애달프셨으면 체면 불고하고 사돈집을 방문해 그리하셨을까. 그리해 딸의 아이들이 여름방학이라고 오면 얼마나 차려주고 싶었을까. 외갓집은 우리에게 포근하고 편안한 여름 안식처였고 외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은 우리의 추억을 살찌게 했다. 지금은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안 계시지만 사무치게 그리울 때 생각나는 한 끼는 어디가 좋을까?

광동식당. 광양 읍내중앙길 밭 샘 목욕탕 골목 소방도로 중간쯤에 위치하는 30년 넘은 오래된 식당이다. 20여 년 전에 현재 위치로 옮겨서 그 사장님이 지금도 그대로 그 맛을 유지하고 계신다. 전화로 예약을 하며 메뉴를 물으시길래 되려 물었다. 오늘 머가 좋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이 미소 짓게 만든다. 맨날 비 오는데 머 맛난 게 있겄소? 조기매운탕을 준비해 주시라 말씀드렸다. 테이블 다섯 개에 연세 있으신 두 분이 오래된 콤비처럼 손발을 맞추고 계셨다. 밥 짓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 동그란 쟁반에 반찬 올리는 소리, 이미 식당 안은 소리로 맛을 내고 있었다. 

도다리쑥국을 비롯해 매운탕, 조기매운탕, 물메기탕, 갈치조림, 서대 매운탕 등이 식사 메뉴다. 변화하는 입맛과 달리 단맛이 적으며 옛 맛을 잘 간직한 식당이다. 오늘 식객은 찐 호박잎에 갓 지은 밥 한 덩이를 올리고 갈치속젓 속 고추 한 조각과 마늘장아찌 한 조각을 올려 한 쌈 두 쌈…다섯 쌈을 했으며 뜨뜻한 조기매운탕 국물 몇 숟가락 허겁지겁 뜨고 식사 도중에 나온 구수한 누룽지 숭늉을 남은 밥에 부어 후루룩후루룩 식사를 마쳤다. 다른 반찬들도 바란스가 잘 맞추진 훌륭한 한 끼 식사다.

방학을 맞아 내려 온 아들에게 함께 맛보여 주고 싶은 한 끼였다. 아들과 같이한 아내는 이렇게 옛 맛을 변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식당이 흔치 않은데 반갑다며 맛있는 식사를 했다. 1인분에 1만3천원. 식당을 나오며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렸다. 

식당 바닥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계시는 사장님이 온화한 얼굴로 웃으며 배 꺼졌으면 옥수수 삶았으니 많이 먹으라 하며 손을 흔드는 외할머니로 착각이 들었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광동식당,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다음 밥 한 끼는 어디로 가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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