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희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어느 해 겨울방학 전날이었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방학 때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가장 먼저 손을 든 아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시골 할머니집이요. 할머니 군고구마가 제일 맛있어요” 아이는 하얀 눈이 내리는 할머니집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 마음은 벌써 할머니집으로 달려가는 듯했다. 

하평마을 전경
하평마을 전경


구슬을 품은 마을
하평마을은 광양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옥룡면 운평리(雲坪里)에 속한다. 1500년경 이천서씨(利川徐氏) 형제가 상평(上坪)마을에 입촌해 살다가 두 형제가 분가하면서 동생이 이곳 아래쪽마을(下坪)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평마을의 입구엔 다른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제각이 있다.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재실(향선재)로 매년 음력 2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 옥평사(玉坪祠)다. 

‘하평’이라는 이름은 문헌상 처음 기록된 평촌(坪村)에서 찾을 수 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굴몰, 상운·하운마을에 비교해 그 위치가 옥룡천변 넓게 펼쳐진 뜰에 자리한 마을, 즉 평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평촌(坪村)이라 했다. 하평(下坪)은 위치상 아랫평뜰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뜻이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옥평사’는 옥룡의 옥(玉)과 하평의 평(坪)을 가져와 붙인 이름인 듯하다. 마을 입구에 이런 사당이 세워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구슬을 품은 마을?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마을을 찾아가는 필자의 마음이 바빠졌다. 옛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구슬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하평마을 회관
하평마을 회관

마을로 들어가는 들판은 온통 초록빛으로 출렁인다. 마음까지 초록으로 물들이고, 길가 개구리들 뜀박질 몇 번 보고 나니, 저만큼 맵시 좋은 큰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서 보니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늦봄엔 연한 자주색 꽃이 피고, 가을엔 멀건 빛깔의 구슬 닮은 열매가 열린다 하여 이름이 멀구슬나무다. 꽃이 예쁘고 열매가 귀여워 필자의 글과 그림에도 가끔 등장했던 나무다. 줄기, 뿌리, 열매가 모두 약재로 쓰이며 살충제로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연에 큰 해를 끼치지 않고도 해충을 없앨 수 있으니 동네 지킴이 나무로 안성맞춤이다. 마을 입구에 이런 나무를 심은 어르신들의 지혜와 안목에 감탄하며 필자도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옷깃을 가다듬었다.

조말례 어머니와 주형덕 어머니
조말례 어머니와 주형덕 어머니

“날 더운데 뭐하셔요?” 어머니 두 분이 대문 앞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계셨다. 조말례(89세) 어르신과 주형덕(82세) 어르신이다. 뽑아놓은 완두콩 줄기에서 콩꼬투리를 따고 계셨다. 이미 따놓은 꼬투리도 바구니에 가득하다. “여그 할머니가 나를 도와주고 있어. 날마다 이것저것 다 도와줘서 참 고맙제” “그냥 심심혀서 혀. 낮에 놀면 밤에 잠이 안 와. 꼼지락거리는 지금이 참 좋아” 농사 안 짓는 조말례 어르신이 이웃에 사는 주형덕 어르신의 일을 돕고 계신다는 말씀이셨다. 환히 웃는 그 모습이 좋아 필자도 따라 웃었다. 그 순간 닭장의 수탉이 꼬끼오! 목청을 높였다. 푸다닥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암탉은 알을 낳은 것 같다. 닭장 옆 뽕나무에 열린 오디가 더 까맣게 익어가는 오후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여기저기 하평마을의 고양이들도 나타났다. 사부작사부작 걷는 한 마리를 따라가니 마을회관이다. “우리 동네는 논 한가운데 있어 자랑거리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어요” 마을 일을 맡고 계신 성낙원(67세) 이장의 짧은 인사말이었다. 마을에 가면 이장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이라 필자는 소리내어 웃었다. 이제부터 마을자랑 시작이라는 예고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성낙원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
성낙원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

“우리 마을은 박옥근 전임이장이 마을가꾸기 사업공모로 5억을 받았어요. 7월부터 마을 돌담 쌓기 사업을 추진할 테니 기대해 주시고요. 다음주에는 주민화합한마당 잔치를 할 겁니다. 마을공동 꽃길조성사업 4개 마을에도 선정됐어요. 3년 예약이에요. 곧 마을 진입로를 꽃길로 만들 예정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필자의 추임새에 성낙원 이장은 “우리 동네는 저 들판 건너 우물터가 있어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시집온 새색시들이 이른 아침 줄지어 물동이를 이고 날랐다는 우물입니다. 그 물로 밥을 지었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문득 유년 시절이 떠올라 호흡을 가다듬었다. 물 긷는 엄마 옷자락을 붙들고 따라간 우물가는 웃음꽃이 피는 장소였다. 하하호호 동네 엄마들의 웃음소리가 잠시 귓가에 맴돌았다. 

당산나무 아래 지석묘군
당산나무 아래 지석묘군

“청동기 시대 유물인 지석묘군이 있는 곳엔 당산나무가 3그루가 있었어요. 그중 광양 대표 노거수로 표지를 장식했던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썩어서 베어냈어요. 동네 수호신으로 삼을 대체나무가 필요합니다” 성낙원 이장은 동네 사람들의 바람도 전했다. 담담하게 듣고만 계시던 박우규(76세) 어르신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우리 동네는 조그만 해요. 보릿고개도 넘어 왔는데 이젠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마음으로 살아요. 당산나무 아래가 공원처럼 꾸며졌으면 하는 희망만 있는디…” 말꼬리를 흐리는 어르신 옆에서 김계수(78세) 어르신과 이상호(81세) 어르신도 같은 마음인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을 주민의 편한 쉼터 겸 학생들의 소풍 장소, 이곳에서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아담한 역사공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필자도 어르신들의 소망에 두 손을 모아 빌었다.

흙과 돌로 쌓은 돌담길
흙과 돌로 쌓은 돌담길

100년이 넘은 유적들
마을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해 박종윤(78세) 어르신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흙과 돌로만 쌓은 담이 길게 이어졌다. 시대를 거슬러 과거 어느 지점에 이른 기분이다. 커다란 돌을 그대로 이용해 벽을 쌓은 담도 보였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마당 한가운데엔 집채만 한 바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명 ‘복바위집’이라는 불리는 정옥기(89세) 어르신 댁이었다.

“우리 동네 돌담은 100년이 넘었어요. 지석묘라 부르는 돌도 하평 곳곳에 있고요. 하지만 집안이나 집 근처에 있어 많이 조심스럽지요. 밖에서는 문화재라 하지만 우리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게 우리 동네의 사정이랍니다” 박종윤 어르신의 낮은 음성 속에 마을 어른으로서의 고뇌가 엿보였다. 문화재로 지정 후 일어날 많은 문제를 염려하시는 모습이라 필자는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은 마을이라 마을에 큰 풍파는 없었어요. 우리 마을 가장 큰 경사라면 윗동네 상평에서 독립해서 자연부락이 된 일이에요. 그 후 마을 문제를 직접 요구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됐어요” ‘독립’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 걸 보면 하평마을의 오랜 숙원이 해결됐다는 뜻일 것이다. 

정옥기 어르신 집 마당에 있는 복바위
정옥기 어르신 집 마당에 있는 복바위

“마을 안길이 좁아 통행도 불편하고 주차문제도 있지만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해결할거라 믿습니다. 마을 하천도 넓혀 지금은 폭우가 와도 큰 걱정이 없어요. 예전에는 비가 많이 내리면 중흥사 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백마가 달려오는 것 같았어요” 제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것도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법, 예술 영역에서는 멋지게 묘사하고 있는 백마도 현실에서는 두려운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는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말씀을 나누는 동안 사모님 최맹례 어르신은 잠시도 앉아있지 않으셨다. 수박을 쟁반 가득 썰어 주시더니 음료수와 커피를 슬쩍 밀어주시고 감자까지 삶아 오셨다. 정이 담긴 포슬포슬한 햇감자를 맛나게 먹었다. 잠깐 앉아 하평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라 부탁했더니 동네가 아담하고 모난 사람이 없어 살기 좋다 하신다. 바라는 것을 여쭈었더니 젊은 엄마들이 이사 왔으면 좋겠다는 부탁으로 대신했다. 25가구 40여 명이 사는 동네라 정겹게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하평마을 주민화합 한마당 잔치하던 날
하평마을 주민화합 한마당 잔치하던 날

할머니집에 가고 싶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그때까지도 어르신 두 분이 콩꼬투리를 따고 계셨다. 무거운 콩바구니를 두 분이 함께 날라서 금방 끝냈다고 서로 마주보고 웃으신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사실 거란다. 

필자는 하평 취재를 다녀온 며칠 후 사진 몇 장을 건네받았다. 동네 주민화합한마당 잔치 모습이었다. 마을회관 앞에 모인 동네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어우러져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행복은 이런 거야’를 보여주는 듯했다. 

뜨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지금쯤 어떤 시간 속에 있을까. 학원을 오가며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필자는 살짝 알려주고 싶다. 동화 속 그림 같은 오래된 동네가 보고 싶으면, 돌담 사이 어딘가에서 구슬을 찾고 싶으면, 품안에 꼭 안고 토닥여준 할머니 손길이 그리우면 하평마을로 달려가라고.

글·사진=방승희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