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10

바야흐로 여름이다. 기나긴 장마가 지나니 연이은 폭염에 모든 것이 익어가는 나날이다. 한 뼘 그늘만 있어도 들어가 태양을 피하고 한 방울 물기만 있어도 손을 내밀어 차가움을 느끼고 싶은 더위가 지속된다. 다산 정약용은 노년의 여름에 더위가 극심하자 ‘소서팔사(小暑八事: 더위를 식히는 여덟가지 방법)’라는 멋스러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송단호시(松壇弧矢)인데 소나무 그늘 뚝방에서 화살을 날리며 더위를 물리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더위는 바람 시원한 소나무 그늘은 좋지만, 활쏘기는커녕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다. 강바람 시원한 강둑 소나무 그늘, 어디가 좋을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섬진강가로 천천히 가보자. 뒤로 백운산자락 산바람 살랑이고 앞으로 섬진강 유유히 강바람을 거느리고 춤추는 곳,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보자. 가다가 물길이 흐느적 태평해지면 나지막한 망덕산이 보이는 포구에 차를 세우고 진월정(津月亭)에 앉아 지난 봄날 벚꽃 가득한 강가를 추억하며 강물과 바다의 만남에 넋을 놓아보자. 그때, 마침 꼬르륵 신호가 오니 만사가 식후경이다. 가만히 앉아 입맛 살리는 밥상 한 끼 받아볼 수 있는 곳, 어디에 있을까? 

청룡식당, 섬진강 하면 떠오르는 식재료, 재첩전문식당이다. 남해고속도로 부산방향 휴게소 바로 뒤편 섬진강가에 위치한다. 주변은 경관과 한가로움이 적당히 조화롭다. 섬진강 자전거길이 바로 식당 앞으로 지나니 아이들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가를 달리던 추억이 떠오른다. 식당에 들어서면 카운터에서 주문을 먼저 한다. 시원한 방에 입장하면 손님들이 벽에 등을 기대고 한가로이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식사가 아닌 모임에 온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그때 주문한 순서대로 상이 통째로 들어온다. 방안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식객은 일행과 재첩회 (소)자 하나와 재첩국 하나를 주문했다. 재첩국에는 밥이 포함해 나오나 회에는 별도 주문이니 공기밥 하나 추가한다. 재첩회무침 (소)가 1만5천원, 재첩국 8천원, 공기밥 1천원, 합이 2만4천원, 적당한 가격이다.

먼저, 초록초록 소불 둥둥 뜬 재첩국에 숟가락을 담가 한 숟가락 입에 가져간다. 많은 이들이 재첩국을 시원하고 깔끔한 맛 때문에 좋아한다고 하나 식객은 어젯밤의 숙취를 해결해 줄 것만 같은 그 맑음을 좋아한다. 마치 맑고 푸르른 섬진강물로 어제의 흐림을 흘려보내듯이 말이다. 자 이제 지짐처럼 접시에 넓게 펼쳐진 재첩회무침을 한 젓가락 먹어보자. 아아 땀을 식혀주는 이 새초롬함이라니. 입안이 헹궈지며 입맛이 껑충 상승한다. 손 놀릴 힘을 얻었으니 본격적으로 비벼보자. 노르스름한 참기름 넉넉한 그릇에 밥공기를 통째로 던지고 재첩회를 접시째 들고 반을 뚝 잘라 밥 위에 얹고 김가루를 충분히 뿌려준 후 힘차게 비벼주면 된다. 습습 침이 고인다. 이쯤되면 방안 여기저기 상마다 웃음소리가 많아진다. 맛있다. 국물과 깔끔한 반찬이 딱 맞아떨어진다. 섬진강가에서 더위를 잃어버렸다. 내 더위 좀 찾아주세요~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섬진강가 더위를 물리치는 그 첫 번째 방법 재첩 한 끼, 청룡식당. 시원한 방에서 세상 편하게 앉아 쉬다 통째로 받는 맛있는 재첩밥상, 지친 나를 위로하는 상을 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다음 밥 한 끼는 어디로 가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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