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방승희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우리 몸의 장기 중 ‘심장’은 생명체의 가동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산소와 영양분을 실은 혈액을 전신으로 흐르게 해주는 중심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심이 되는 곳이나 중요한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는 심장, 심장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옥룡의 중심은 어디일까. 그 심장부를 찾아 한여름 뙤약볕 속으로 들어갔다.

옥룡면사무소의 위치는 신재로, 행정구역상 운평리에 속한다. 봄이 되면 연분홍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수양벚나무가 주민들을 맞는 곳이다. 이 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농협, 우체국, 경찰서 치안센터, 소방서 출장소, 보건지소, 초등학교가 있다. 최근 완공한 교육문화복지센터에서는 주민들에게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옥룡의 중심 상평마을 이야기다. 

상평마을 전경
상평마을 전경


상평마을은 1500년경 인동장씨(仁同張氏)·청송심씨(靑松沈氏)·이천서씨(利川徐氏) 3성씨가 입촌해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상평이라는 이름 유래는 문헌상 처음 이름인 평촌(坪村)에 연유한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이웃 상운·하운마을과 비교해 그 위치가 옥룡천변에 넓게 펼쳐진 뜰에 자리 잡은 마을, 즉 평뜰에 있는 마을이라 해 평촌(坪村)이라 했다. 상평(上坪)은 웃평뜰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뜻이다. 백운산에서 흘러온 옥룡천은 상평의 동쪽으로 흐르며 들판을 살찌운다. 장마가 끝난 요즘은 물줄기 따라 옥룡이 들썩인다. 웅장한 계곡 물소리와 사람이 하나 되는 시간, 뜨거운 여름이다. 
  
우리 동네는 도시랑 마찬가지여
“오메 누구당가”, “어쩐 일이당가”, “어디서 왔당가” 땀을 닦는 필자를 어르신들이 노래하듯 반기신다. 회관 밖 찜통더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모두 밝은 표정이다. 상평마을 구경 왔다 했더니 “이것 좀 묵어 봐”, “요것도 묵어 봐”, “이것이 더 맛있당게” 자꾸 음식을 내놓으신다. 뭔가 다르다. 얼굴빛도 모두 발그레 복숭아 색이다. 시종일관 환히 웃으신다. 여느 동네와 달리 활기가 넘친다. 20여 명의 어머니들이 둘러앉아 계시니 누구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하나. 이쪽에서 부르면 대답하고, 권하는 주스 한 모금 마시고, 저쪽에서 부르면 또 대답하고, 누군가 불쑥 한마디에 까르르 웃기를 반복, 필자는 어느 순간 방문의 취지도 잊어버렸다. 

“우리 동네는 48가구 80여 명 정도가 사는디 매달 17일이면 청년회, 노인회, 남자 여자가 다 모여 밥을 해 먹소. 다 모이면 50명이 넘으요”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서경순(84세)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상황 정리를 하신다. 자신이 아직 젊어 노인들 섬기고 밥도 해드릴 수 있어 기쁘다 하신다. 회관에 모인 분들 중에서 가장 젊은 색시는 여든둘이란다. “매월 말 토요일엔 젊고 늙고 할 것 없이 다 황토방에도 간당게”, “우리는 여그서 전래동화도 듣고 요가도 혀”, “글제, 요렇게 요렇게 백세운동도 하고 치매운동도 허제”, “차 다니는 길 건너는 교육도 헌당게”, “이렇게 마실 나와 노는 게 제일 좋아”, “여그는 특별히 좋고 나쁜 사람도 없어. 다 잘 허고 산게”, “우리 동네는 도시랑 마찬가지여”, “맞어. 차 타기 좋고, 차도 많고, 면사무소랑 조합도 가깝고, 궂은 것이 하나도 없어” 앉은 순서대로 말씀이 이어진다. 말꼬리 이어가는 재미난 놀이 같다.

회관에서 만난 어머니들
회관에서 만난 어머니들

가장 연세가 많다는 이말순(95세) 어머니도 “좋은 것도 모자란 것도 없어. 그동안 세월만 흘렀제” 읊조리듯 말씀하셨다.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운 얼굴이라 “농사일은 안 하셨나 봐요?” 나지막이 물었더니 세상 좋아진 줄도 모르고 일만 하셨단다. 

나이 들면 어디서 살아야 하나
“이제는 천지가 아퍼. 젊어서는 애기 키우는 재미로 살았는디 이제는 아퍼서 죽었으면 좋것어. 안 죽어서 탈이여” 뒤쪽에 앉아계시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말에 회관이 야단법석 들썩였다.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 노인이 얼른 죽고 싶다, 상인이 밑지고 판다’는 한국의 3대 거짓말을 예로 들며 한참을 옥신각신 하시더니 “자식들 고생시키면 안 돼야!”로 의견이 모아졌다. 겉으로 보기엔 훈훈한 마무리였다. 어미란 이런 것,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부모라는 이름엔 공통분모가 있다.

옥룡보건지소
옥룡보건지소

마음 한쪽 애잔함을 달래려고 상평에서 가장 좋은 곳을 알려 달라 했더니 이구동성 ‘보건소’라고 외친다. 풍경 좋은 곳을 상상했던 필자에게 보충 설명까지 해주신다. 침 놔주고, 약 주고, 물리치료까지 해주는 곳이 좋은 곳이란다. 집에서 가깝고 돈도 안 받아 더 좋단다. 나이 들면 어디서 살아야 하나. 그 해답을 상평 어머니들께 들은 것 같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게 지내시라 작별 인사를 했더니 늙은이들 말 들어줘 고맙다 하신다. ‘고맙다’는 말은 언제나 힘이 세다. 쪼글쪼글 어머니들 손마디에서 전해지는 울림이 필자의 심장을 쿵 쿵 뛰게 한다.

유정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지경수(70세)씨
유정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지경수(70세)씨

회관을 나와 상평의 한복판에서 유정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 지경수(70세)씨를 만났다. “식당한 지 34년 되었는데요. 사람 살기 무난한 곳입니다. 옆에 냇가 있지, 공기 좋지, 관공서 가깝지, 범죄 없지, 좋은 점이 아주 많아요” 장사는 잘 되시냐 물었더니 인상 좋은 얼굴이 더 밝아졌다. “사는 데 지장 없으면 됐지요. 가끔 노인당에 밥이랑 찌개 끓여 드리긴 하는데… 이런 얘기 해도 되나 모르것네” 쑥스러워 하면서도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신다. 선행은 널리 널리 알려야 한다며 필자는 엄지척으로 감사 표시를 했다. 

상평이장 이찬주(76세) 씨
상평이장 이찬주(76세) 씨

상평길을 걸을 때는
이처럼 활기차고 열정 넘치는 상평마을엔 어떤 이장님이 계실까. 교장 선생님 같은 근엄한 표정에 털털웃음을 짓는 이찬주(76세) 이장님을 옥룡초 교문 앞에서 만났다. “상평 여자들은 기운이 넘칩니다. 젊은이들 같아요” 조금 전 회관의 모습이 떠올라 필자는 물개박수를 치며 웃었다. “우리 마을은 인구가 계속 줄고 있어요. 산 아래 동네는 비탈진 곳에 집 지을 장소라도 있지만 우리 마을은 벌판 가운데 있어 집터로 적당치 않아요. 집값마저 높아서 이주를 원하는 사람도 없고요”

금세 이장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요즘 이주자들이 넓은 집을 선호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세 가구 집이 헐려 겨우 한 채가 지어지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가장 시급히 해결한 일은 따로 있다고 한다. “정화조 시설을 준공하는 일이에요. 동네 골목길도 확장해야 하고요. 화재가 나면 소방차가 들어올 수가 없어요. 여러 가지 상황이 얽혀 참 어렵습니다”

상평 한복판 얼기설기 전선줄만큼이나 복잡한 것일까. 긴 한숨으로 현재의 심정을 대신했다. “제가 상평이장이 아닌 옥룡 대표로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창덕에서 산본 모퉁이를 돌아 삼정지까지 4차선 길이 만들어진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천변 따라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고 해요. 면소재지를 벗어나 다른 쪽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거지요. 이건 비용이 들더라도 재고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도시의 도심공동화 현상을 생각하시냐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산 너머 이웃 동네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냐고 되레 물으신다. 오직 상평마을만을 위한 생각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건강을 체크할 때마다 심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옥룡의 심장 역할을 하는 상평을 살리는 노력은 몇몇 특정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옥룡천
옥룡천

 

상평마을 이장이 책임져야 할 고뇌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잠깐이라도 마을 걱정 내려놓고 자랑거리를 들려 달라 하니 그제야 얼굴이 밝아진다.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단합이 잘 돼요. 재정이 바닥날 상황이 되면 금방 채워집니다. 주민들도 협조를 잘 하지만 외지에 살고 있는 청년들도 늘 관심을 가지고 도와줍니다” 이런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시는 것인지 아침마다 동네 길가를 청소하신단다. 길을 쓸고, 풀을 뽑는데 밥알이 떨어져도 주워 먹을 정도로 깨끗해야 만족하신단다.
상평길을 걸을 때는 조심하시라. 특히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은 혼쭐이 날 수도 있다. 

더불어 행복
뭉게구름이 백운산 줄기에 그늘을 드리웠다. 날아오던 새들이 그늘 속에 안긴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흐른다. “<행복하게 살기>가 교육목표입니다” 옥룡초등학교 문정식(55세) 교장선생님의 첫마디다.

옥룡초 문정식(55세) 교장선생님과 학생들
옥룡초 문정식(55세) 교장선생님과 학생들

“미래에 행복하려면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해요.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연구하는 중입니다” 90명 전교생이 참여하는 학술제를 준비 중이라 하신다. “우리 논리 문학팀은 교장선생님께서 지도를 해줘요”, “독후감의 중요성을 알게 돼 보람 있어요”, “논리라는 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발표 준비를 하며 재미를 느꼈어요”, “제가 정한 주제는 ‘시로 남기는 나의 흔적’이에요. 뿌듯하고 좋아요” 아이들의 야무진 소감이 필자의 귀에는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들린다.

학교를 나오면서 ‘7의사 3·1운동 기념비’를 둘러보았다. 어린 나이로 일제에 항거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 모두의 행복이었을 것이다.
함께 더불어 행복한 세상은 영원한 우리의 과제다.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인 아이들이 행복하다며 웃는다. 쌩쌩 운동장을 달린다. 쿵쾅쿵쾅 심장이 뛴다. 힘찬 상평의 소리를 오랫동안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방승희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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