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shine광양愛[1]-무옹불암(舞翁佛岩)

산줄기와 물줄기를 제대로 나타낸 신경준(申景濬)산경표(山經表)

과거 전통적 산지 인식 체계는 분수계에 따라 산맥을 인식했다. 이것을 잘 표현한 것이 조선 시대 영조 때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편찬한 산경표(山經表)이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산맥도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져 지질과 지각 변동, 지하자원 분포 파악에는 쉬울지 몰라도, 분수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해 산줄기와 물줄기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분수계는 지질 구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 동고서저(東高西低)로 대부분의 큰 하천은 황해나 남해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대체로 강의 길이가 길고, 경사가 완만하다. 대개 산들도 마찬가지다. 북쪽보다 남쪽이, 동쪽보다는 서쪽이 낮다. 그런데 백운산만 호남정맥의 낮은 데서 유일하게 거꾸로 동남으로 진출하여 끝난 부분이 높다. 풍수지리에서는 이곳에 정기가 서려 있는 것으로 본다. 광양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대개 서쪽과 남쪽으로 흐른다. 이중환(李重煥)택리지(擇里志)에서 역수(逆水)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는데, 대체로 반대로 흐르는 강이 두만강, 형산강 등이 있다. 진주 남강 또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거의 이곳에서 나왔다. 강이 반대로 흐를 경우 물길에 힘이 모이는 명당수가 되기 때문이다.

풍전세류(風前細柳)와 태산교악(泰山喬嶽)

경상도 지역은 산세가 중후하여 독일 풍수와 비슷하다.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성실하고 의리가 있어 변함이 없다. 전라도 지역은 산세가 마르고 서로 달리기를 하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프랑스 풍수와 비슷하다. 프랑스처럼 혁명이 자주 난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풍광이 좋지만 조금 지나면 허해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유행에 민감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바대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갈래가 달라짐으로써 자연환경이 달라지고 각 고장의 땅, , 기후와 같은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적 환경이 사람의 인문적 환경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옛 팔도 주민의 성격적 특성을 밝혔다. 전라도 사람들을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실버들), 경상도 사람들을 태산교악(泰山喬嶽, 큰 산과 웅장한 봉우리)에 비유했다. 전라도는 일찍이 비옥한 농토가 있어 물산이 풍부해 음식 문화가 발달했고, 이를 축적할 수 있어 생활의 여유가 생긴다. 그러니 풍류를 좋아해 예술의 고장이 되었다. 성격이 부드럽고 사교적이며 영리하다. 경상도는 사람의 척추 격인 백두대간과 그 지맥인 소백산과 황악산, 지리산이 자리한다. 그래서 산봉우리의 정기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인품과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나게 된다.

호남정맥(湖南正脈)의 끝, 광양 백운산(白雲山)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에서 끝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일컫는다. 산경표(山經表)에 의하면 우리나라 땅의 산줄기[山經]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여러 갈래로 나뉜 산줄기는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크게 나누어 동·서 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다시 갈라져 하나하나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했다.

백두대간의 영취산(1075.6m, 장수군)에서 서쪽으로 분기된 산줄기를 금남호남정맥(영취산주화산)이라 부른다. 이 산줄기의 진안과 완주의 경계를 이루는 모래재 터널부근 주화산(565m)에서 북쪽으로 뻗은 것을 금남정맥(주화산에서 시작해 낙화암까지)으로 부르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것을 호남정맥(주화산에서 시작해 백운산까지)이라 부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호남정맥(湖南正脈)주화산(珠華山, 565m)에서 시작하여 내장산(763.2m)을 지나 전라남도 장흥을 흘러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유역을 갈라 광양 백운산(白雲山, 1222m)에서 끝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으로 정의한다. 주화산(珠華山, 565m)에서 시작해 갈래 진 후 장수의 팔공산(1151m), 기백산에서 좌청룡으로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광주의 무등산(無等山), 화순의 만연산과 백아산, 강진의 월출산, 대둔산, 달마산으로 이어지고, 또 완도의 상왕산에서 추자도를 건너 제주 한라산으로 이어진다. 달마산에서 강진 만덕산(萬德山), 장흥의 천관산, 사자산으로 이어지고 벌교의 제석산, 고흥의 팔영산, 낙안의 금전산(金錢山), 승주의 조계산(曹溪山), 계족산(鷄足山) 그리고 광양의 백운산까지 호남 내륙을 관통해 끝난다. 무려 70여 개의 산과 무려 430Km의 산줄기로 이뤄진다. 한편 장수 기백산에서 우백호로 장성의 백암산, 영광 태청산, 불갑산, 무안의 승달산, 목포 유달산 그리고 삼학도로 이어진다.

도선국사가 옥룡에 37년간 정주(定住)하다

광양의 백운산은 남도 내륙을 관통해 조계산, 계족산을 지난다. 정상에는 백운산 상봉(白雲山上峯, 1222m)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서 있다. 가장 높은 상봉 주위로 성불봉, 도솔봉, 억불봉이 있다. 하동 덕평 마을과 서산대사가 출가했다는 의신의 원통암 쪽에서 보면 삼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도솔봉(兜率峯, 1123m)이라 상징되는 도솔천에서 부처님이 하강하여 봉강의 성불사 뒷산인 성불봉에서 성불을 하시고, 어치 쪽에 있는 억불봉에 오시어 억만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도선국사가 옥룡에 37년간 정주(定住)하시면서 이런 불교식 이름을 붙인 듯하다.

도솔봉에서 좌청룡으로 왼쪽 섬진강 따라 매봉, 갈미봉, 쫓비산, 불암산, 야양산, 국사봉, 망덕산(197.2m), 태인도 삼봉산으로 이어진다. 불암산에서 왼쪽 방향(다시 하동읍 너뱅이 뜰)으로 무동산이 있다. 억불봉의 중출맥은 노랑이재를 거쳐 옥곡의 국사봉과 가야산(가요산), 바루섬, 길도, 묘도, 여수 영취산으로 이어진다. 가요산의 좌청룡(왼쪽)으로 삼봉산, 우백호(오른쪽)로는 구봉산이 있다. 백운산은 분수계에 따라 봉강의 성불 계곡, 옥룡의 동곡 계곡, 진상의 어치 계곡, 다압의 금천 계곡을 이룬다. 이를 광양의 4대 계곡이라 부른다.

또한 사성암이 있는 문척 오산(鼇山, 541.7m)도 백운산 자락에 해당한다. 오산은 백운산의 서북쪽 갈래가 섬진강을 만나 깎아 지른 절벽을 이루어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오산(鰲山) 꼭대기에 사성암이 위치하고 있다. 오산을 새오재라 하기도 하고, 금자라 형국이어서 금오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곡성, 압록을 거쳐 흐르는 섬진강 물이 오산을 휘돌아 화개, 하동으로 흐른다. 자라가 섬진강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오산(자라산)으로 명명한 것이다.

백운산 자락에 해당하는 사성암

사성암 사적(四聖庵史蹟)4명의 고승, 즉 원효(元曉도선국사(道詵國師진각(眞覺의상(義湘)이 수도했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자라나 거북 모양의 지형은 목을 오므렸다가 내놓는 머리가 있는 곳이 혈처로 길지에 해당한다. 사성암은 544(성왕 22)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해 원래 오산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자라와 거북이는 꼬리가 있는 곳에서 알을 낳는다. 그러므로 구례 간전면이 오산의 끝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이 자라나 거북이 알을 낳는 땅에 해당한다. 호남정맥은 장수 팔공산에서 동남진하여 시작점보다 끝이 더 높다. 출발점이 낮고 끝난 지점이 높기 때문에 도선국사는 광양을 천년재상지지(千年宰相之地, 천년 동안 재상이 나올 땅)’라 했다.

광양 백운산의 우백호 줄기의 끝이 여수 영취산이다. 영취산의 흥국사를 보조국사가 지었다. 조계종을 새로 세운 분이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다. 고려 시대는 선종과 교종의 대립이 심했는데,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해 불교의 개혁을 추진했으며, 돈오점수(頓悟漸修, 깨달음 후의 점진적인 수행을 중시하는 입장)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추구했다. 1200(신종 3) 신라 시대에 세워진 송광산(松廣山) 길상사(吉祥寺, 지금의 송광사)를 중건(重建)하고, 그곳으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옮겨 수행과 교화에 주력했다.

보조국사가 조계산 천자암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나무 비둘기 세 마리를 날렸다. 한 마리는 바로 밑에 떨어졌다. 바로 그 자리가 송광사이다. 더 날아가 떨어진 곳이 거금도(절이도(折爾島))인데 그 곳에는 송광암이 있다고 한다. 나머지 한 마리는 여수 금오도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빈터로 일제강점기에 소실됐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끝이다. 하동 쌍계사 뒤로 오르면 불일폭포가 있다. 지눌의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불일폭포의 옥천대에 고운 최지원이 기거한 토굴이 있다고 한다. 원래 암자가 있던 자리인 백학봉 위에 불일암을 복원해 놓았다.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섬진강은 데미샘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뻗어 흐른다. 데미샘은 진안 원신암 마을 상추막이골에 위치해 있다. 그곳을 천상데미라고 부르는데, 데미라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인 더미(봉우리)’에서 유래 되었다. 천상데미는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다. 장수 수분령에서 서쪽으로는 동진강과 만경강으로 흐르고, 동남쪽으로 흘러 섬진강이 된다. 섬진강은 배알도를 기점으로 하동 쪽과 태인도, 길호, 광양만 쪽으로 두 갈래로 나뉘어져 남해와 만나게 된다.

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하는 곳은 국부들이 많이 난다. 대표적인 곳이 남강이다. 진주, 지수, 의령, 함안, 창녕 등으로 부자와 기인이 많이 난다. 삼성, LG, GS, 효성, 삼성, 한보, 벽산 등으로 재벌이 80% 이상이 이곳 출신이다. 풍수지리에서 동출서류는 극에 달한 기운이 쇠락한다고 해서 멀리하고, 서출동류는 앞으로 더욱 융성하고 발전한다고 해서 명당수로 여긴다.

섬진강
섬진강

상전벽해가 되어 광양제철이 들어서다

섬진강은 물이 동출서류(東出西流,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물)하여 관()이 많이 난다. 그래서 광양은 전국에서 5급 이상의 사무관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이다. 조선 시대 관직으로는 당상관(堂上官)으로 고위 관료에 해당한다.

섬진강 550리 끝인 망덕포구는 원래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벚굴과 전어가 유명했다. 바로 앞의 태인도와 금호도(金湖島) 그리고 바다가 매립되어 광양제철이 들어섰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김시식지였으며, 백합, (석화), 고막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금호도(金湖島)라는 이름에 걸맞게 쇳물이 호수를 이루는 형국이 그대로 입증되었다.

중국의 강은 대부분 서출동류한다. 하늘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은 티벳고원의 희말라야이다. 이곳에서 발원해 산동성으로 흘러 우리나라의 서해로 물이 빠지는데 중국에서 보면 동쪽으로 빠진다. 중국은 11성으로 한 명의 강에 한 명의 성인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거인(巨人)이 잘 나오지 못한다. 거인이 먹을 곡식과 물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거인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주원장, 칭기즈칸, 진시황제 등 나라를 세운 황제들이 그들이다. 중국처럼 곡식을 얻을 수 있는 들이 100km나 되고, 강이 1000km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100km 넘는 들판과 1000km 넘는 강이 없다. 저 만주벌판과 요동 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진취적 기상과 신라말 서남해안의 해적을 평정하고 당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국제무역을 주도했던 해상왕 장보고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한반도라는 영토의 국지(局地)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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