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각자 생각이 다르므로 살기 좋은 곳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경제적인 부()를 축적한 마을보다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박사를 많이 배출한 마을들을 탐구해 보려고 한다. 먼저 많이 알려진 우리나라 3대 박사마을인 영양군 주곡면 주실마을과, 춘천시 서면 박사마을,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마을에 대해 알아보고, 다음으로 호남 지방의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의 달빛한옥마을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영양군 주곡면 주실마을

주실 마을로 말할 것 같으면 한마을에서 인물 많이 나오기로 여기만 한 곳이 없을 정도이다. 동자 돌림만 해도 고 조동탁(지훈, 고려대), 조동걸(국민대 역사학), 조동일(서울대 국문학), 조동원(성균관대 역사학), 조동택(경북대 미생물학), 조동욱(대구대), 조동성(인하대 공학) 등을 꼽으며, 조성환(안동전문대학장, 기계공학), 조성하(고려대 경제학), 조석연(평택대 행정학), 조석경(평택대 컴퓨터공학), 조석준(경남대 국문학), 조형석(과기대 산업공학) 등을 하염없이 손꼽으며, 내가 근무하는 영남대학교에만도 정년하셨지만 조봉기(물리학), 고 조대봉(교육학), 조화석(기계공학) 등이 이곳 주실 출신이다.(창작과 비평사, 1997, 199~200)”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해 아주 유명해진 마을이다. 그곳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로, 한양조씨(漢陽趙氏) 동족촌이다. 입향조는 1629(인조 7)에 호은(壺隱) 조전(趙佺)이다. 원래 주씨(朱氏)들이 살았던 곳에 터를 잡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경이 배 모양이라 하며 산골 등짝이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주실(注室) 또는 주곡(注谷)이라 유래하였다고 한다.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마을 입구에는 주실쑤라는 숲이 있다. 소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수구막이 숲이라고 한다. 수구막이란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또는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으로써 건물, 나무, , 장승 등을 이용한다. 풍수지리에서는 골짜기의 물이 멀리 돌아 흘러 하류가 보이지 않는 곳을 명당으로 친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마을에 수구(물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통로) 지점에 수구막 숲이 조성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일종의 물 빠짐을 가리기 위한 비보(裨補) 풍수에 해당한다.

주실 마을 중앙 맨 앞에 자리한 호은종택을 마주 보고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가 문필봉이다. 문필봉은 붓모양으로 된 삼각형의 목산(木山)을 말한다. 마을 뒤에는 부용봉(芙蓉峯)이 있고 그 사이를 장군천이 흐른다. 풍수지리에[서는 문필봉이 있으면 문인이나 학자들이 많이 난다고 본다. , 좋은 명당은 삼불차(三不借)’의 전통이 있는데. 재물, 사람, 문장을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실 마을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밝힌 것처럼 많은 박사를 배출했다.

춘천시 서면 박사마을

서면 박사마을은 춘천에서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많이 얻는다. 이곳 사람들 또한 새벽에 광주리를 이고 보자기에 산나물과 채소를 싼 짐 서너 개 들고 나룻배 타고 춘천 시내에 내다 팔아 교육비를 벌어 자식들을 키웠고, 자식들 또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자연스레 200명이 넘는 박사를 배출하였다. 이 지역에는 서면으로 딸 시집을 보내려면 광주리에 호미 하나씩 마련해주면 된다.’ ‘시내에서 광주리이고 발등에 흙먼지 까맣게 앉은 이는 물어보지 않아도 서면 아낙이다라는 말이 있다.

1999년 마을에서 성금을 모아 박사마을 선양탑을 건립했다고 한다. 그 탑에는 바로 앞에 춘천시가지가 펼쳐져 있지만 북한강이 가로막아 도도히 흐르고 뒤로는 고산준령이 솟아 교통이 불편하기만 했던 곳,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했고, 참을성과 진취성이 강했던 주민들, 자식들만은 보다 살기 좋은 곳,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고자 힘겨워도 더 많이 가르치고 또 배워야 했기에 어느 곳보다도 교육열이 높았다는 마을, 학자금 마련을 위해 어머니들은 채소를 광주리에 이고 내다 파느라 하루해가 짧았고, 아버지들은 원예작물 재배에 힘써 뒷바라지 하기를 낙으로 삼으니, 앞집 뒷집 이 이 동네 저 마을에서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으니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적어 놓았다. 이 탑의 기록은 박사마을이 탄생하게 된 연유를 총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196711, 일류문비(溢流門扉) 14개 수문을 가지는 발전용량 45kW, 연 발전량은 161Gwh의 다목적댐이 건설되자 산악 도시인 춘천을 호반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의암댐은 강원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있는 북한강의 댐으로 높이 23m, 제방길이 273m, 총저수용량 8천만ton, 유역면적 7709이다. 이 댐으로 인해 춘천시 서쪽을 둘러싼 호수 면적 17, 너비 5km, 길이 8km의 타원형인 의암호가 만들어졌다. 춘천시에서 남서쪽으로 12km 떨어진 삼악산(三岳山) 계곡 국도변에 있다. 그래서 춘천시 및 대안(對岸)에 있는 삼악산의 풍치와 잘 조화를 이루어 인공적이라기보다 자연호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김현회의 박사마을의 풍수지리론적 입지 분석 연구라는 논문에 의하면 서면 주산이 든든하고 목성체의 문필봉이 많으며, 주위의 사격이 빼어나고 수려하다. 다음으로 의암댐의 준공으로 담수호가 생겨 물이 맑은 호수로 변하고 이로 인해 생긴 나성(羅星)이 유속을 느리게 한다. 또한 좁은 계곡이 넓은 호수로 바뀌면서, 유체의 흐름이 느려지고 순화돼 서면에서는 계곡풍이 아닌, 갈무리된 길풍(吉風)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논문의 요지는 의암댐의 건설로 의암호가 생겨 유속의 감소를 가져왔고, 물이 나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여 길()하게 됨으로써 박사마을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 의암호의 담수로 추한 부분이 없어지고 주위의 사격과 문필봉이 어우러져 마을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의암호의 가운데에는 세 개의 섬, 즉 하중도·중도·상중도가 있다. 중도와 상중도는 하나의 섬인데 뱃길을 내기 위해 운하를 파서 두 개의 섬이 됐다. 섬에서의 토지이용을 보면, ·하중도는 조림지이고, 중도에서는 채소를 재배한다.

마을 앞 의암호 한가운데 중도라는 섬이 있고 마을 뒤로는 삼악산(655.82m)이 엄호하고 있다. 주봉(主峰)이 용화봉과 함께 청운봉(546m)·등선봉(632m) 3개이므로 삼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의 산세가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 멈추고 서쪽으로 모여 흐르는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소양강 건너에는 춘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 산들은 문필봉(文筆峰), 귀인봉(貴人峰), 일자문성(一字文星) 보이는데, 풍수지리에서는 문인, 학자가 많이 나는 곳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박사마을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박사마을의 깊숙한 안쪽 산줄기 아래에는 우리나라 8대 명당 중의 하나로 불리는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의 묘가 있고, 금산리에는 임진왜란 때의 한백록 장군의 묘가 있다. 또 이곳은 야은 길재의 후손들의 동족촌이 있고, 김시습, 이항복, 신흠, 정약용, 김창협과 김창집 형제 등 유학자들과 관련된 곳이 매우 많다.

춘천시 서면 박사마을 출신 1호는 1963년 미국 의학박사 송병덕이다. 그리고 3호는 전 국리총리이자 유엔총회 의장을 역임한 한승수라고 한다. 31호는 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홍소자, 168호가 컴퓨터음악박사 홍의식이다. EBS 사장 박흥수, 전 강원대 총장 박용수, 전 강원도 교육감 한장수, 전 산림청장 고 정광수 등 사무관급 이상 공직자 100여 명, 학교장급 이상 교육자가 130여 명을 배출하였다. 모든 분야에서 걸출한 인재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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