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마을

삼계면은 현재 전국의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는 최고로 많은 약 200여 명의 박사를 배출해, 2005년부터 이곳을 박사골마을로 바꿔 부른다. , 임실군은 세심리에 박사마을의 이야기와 문화를 담은 박사골체험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博士(박사)의 고장 三溪面(삼계면)’ 비문에 산자수명한 우리 고장 인심 좋고 성실한 조상들의 덕망을 이어받아 명석한 두뇌를 갈고닦아 국가의 동량이 된 박사촌을 이루었으니 그 높은 뜻을 기리고 후대에 전수코자.”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2017년 삼계면 행정구역은 후천리에 후천, 광제마을, 봉현리에 숙호, 사오마을, 세심리에 세심, 택승마을, 학정리에 학정마을, 죽계리에 죽계마을, 홍곡리에 비홍, 괘평마을, 산수리에 산수마을, 삼계리에 삼계마을, 오지리에 신기, 화촌마을, 덕계리에 중촌, 음지마을, 두월리에 두월마을, 뇌천리에 뇌천, 해곡마을, 삼은리에 삼은마을, 어은리에 어은마을이 있어 14개 법정리, 21개 행정리(자연부락 72)가 있다.(임실군지, 293)

삼계면은 임실읍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곳곳에 선비들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뇌천(磊川, 머내), 후천(後川, 뒷내), 유천(柳川, 버드내)3개의 시내를 따서 삼계(三溪)라 명명했다. 후천리(後川里)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아산방 지역으로 시내가 북쪽에서 흘러 마을을 돌아 흘러가므로 뒷내 또는 후천이라 했다. 아산마을은 유천(柳川)과 후곡천(後谷川)이 합수해 큰 호를 그리면 흘러가는 안쪽으로 형성됐다. 오류동은 오류골이라고도 하는데, 커다란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서 오류동이라고 했다. 풍천노씨 문중에서 8명의 생원과 진사를 배출했다고 한다. 마을에는 풍천노씨와 경주김씨, 그리고 양천허씨 등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광제(光霽)마을은 삼계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떨어져 있다. 웃광제와 아랫광제로 나뉘어 있고 두 마을 사이로 후곡천이 흐른다. 무오사화(1498) 이후 이곳 삼계 봉현리로 낙향했던 남원양씨 양돈(楊墩, 1461~1512)이 오수천과 후곡천이 합류하는 곳에 정자를 지어 광제정(光霽亭)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전북도 지정 문화재자료 130호이며, 1871년 세심리로 옮겼다고 한다.

김현회의 박사마을의 풍수지리론적 입지 분석 연구라는 논문에 의하면 삼계면은 산악지대로 마을이 평균 해발 141m의 야산 지역의 구릉지로 봉화산을 비롯하여 동서남북으로 수십 개의 금·목성체의 수려하고 빼어난 산이 둘러쌓고 있다. 문필봉(文筆峰)이 한마을 앞에 45개까지 펼쳐진 곳도 있고, 한 개는 기본이다. 생거남원 사거임실(生居南原 死居任實, 남원에서 태어나 임실에 묻힌다.)처럼 임실의 삼계면은 음택 명당 또한 최고로서 든든한 주산의 배산임수의 형국이 문필봉의 사격과 잘 어우러져 마을에 영향을 미치어 자손 대대로 인물이 끊이지 않고 현재도 박사 배출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논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풍수지리에서는 문필봉을 보고 자라면 마을에 문인, 학자들이 많이 탄생한다고 한다.

삼계면은 호남정맥에서 분맥하여 이뤄졌다. 삼계면의 주산은 깃대봉이고, 삼계면을 감싸는 산들이 나무 모양의 목성체(木星體)로 모두 붓과 같은 필봉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뇌천, 유천, 후천의 삼천이 감싸고 있어 보온과 보습이 잘되는 곳이다.

삼계면은 남북 약 8km, 동서 약 10km로 동서가 약간 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천을 따라서 봉현리와 어은리에 약간의 평지가 분포한다. 면의 남동쪽에는 오수천이 통과하고 있으며, 오수천의 지류인 어은천과 후곡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삼계면은 하천 수계에 의해서 동부의 어은천 유역과 서부의 후곡천 유역으로 지역을 구분할 수 있다. 삼계면은 북쪽으로는 임실읍과 청웅면, 동쪽으로는 오수면과 남원시 사매면, 남쪽으로는 순창군 동계면, 서쪽으로는 덕치면과 경계를 이룬다. 13번 국도가 오수면과 순창군 동계면을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연결하고, 북쪽의 임실읍과는 745번 지방도로 연결되고 있다.(임실군지, 76)

학정리에는 예전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꼭 챙긴다는 박사엿이 유명하다. 삼계면 860가구 중 100가구가 전통 쌀 엿을 만들고 있다. 엿에 들어 있는 당 성분이 두뇌활동에 필요한 포도당을 공급해, 예부터 궁중에서는 왕세자가 공부하기 전에 조청을 먹였다고 한다. 두뇌활동도 왕성해지고, 소화를 잘되게 해 주니 쌀엿이 박사들을 배출한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1호 박사는 서울대 약학대 학장을 역임한 심길순 교수가 있다. 2호 박사인 허세욱 고려대 중문과 교수도 유명하다. 삼대에 걸쳐 여섯 명의 박사가 난 집도 있다. 전북대 노상순 교수, 노덕환 군산대 경영학과 교수, 노도환 전북대 공대 교수, 노승환 한국원자력연구소, 노방환 전북대 공대 교수이고 손자 노시환은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정병헌 숙명여대 교수와 박미리 이화여대 교수는 부부이다. 또 한상진 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노시훈 서울대 약학과 교수, 이동호 한양대 교수, 노상우 전북대 교수, 김진흥 변호사, 한성수 전 원광대 대학원장, 김인회 전북대 의대 교수, 허필수 중앙교육진흥연구소 회장 등 정관계, 교육계, 경제사회계, 문화예술언론계, 의료계 등 너무나 많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