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16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 장터는 반반이다. 명절을 앞두고 햇곡식과 과일들은 더 윤기가 넘쳐 보이고, 생선은 배불러 보인다. 그러나 장터는 확실히 예년과 비교해 활기와 웃음이 줄었다. 서민의 삶이 더 힘들어진 탓이다. 시장 옆 새로 생긴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슬비를 맞으며 자주 가는 잔치 국숫집 앞에 다다랐을 때 전과 다른 썰렁함을 느낀다. 포장이 닫힌 채 빨간 포장 위로 종이에 쓰인 글자들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개인사정(무릎)으로 인하여 두 달 후에 뵙겠습니다장터든 장터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이든 세월의 그늘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장에 들어온 이상 사방팔방에서 풍겨오는 기름 냄새에 음식 냄새에 오감이 활기가 돈다. 두어 집 건너 또 다른 국숫집 파라솔에 일행과 앉았다. 잔치국수 하나, 비빔국수 하나, 5천원에 합이 만원이다. 앞에서 비빔국수를 비비는 동안 나는 그 새 잔치국수 반을 넘게 흡입하고 있다. 가득 찬 주변 테이블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점심을 조금 넘긴 시간이라서 그런지 게 눈 감추듯이 국수가 사라져 버렸다. 주문에서 국물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 나박김치 먹을 새도 없었다. .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 생선장을 어슬렁 거린다.

제철을 맞아 꽃게가 빨간 대야에서 뛰쳐나올 듯이 허우적거린다. 손님이 발하나를 들어 올리니 발버둥을 치며 살아있음을 포효한다. 갈치도 고등어도 서대도 가자미도 오징어도 전어도 새우도 조기도 가오리도 좌판마다 가득히 쌓여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시장통 길 가운데 좌판에는 한모 당 순두부 국산 5천원. 순두부 수입 3천원, 도토리묵 4천원, 우무 3천원. 큼직한 글씨 너머로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멸치는 종류별로 박스 채 쌓여 가장 위에 놓인 박스만 속을 보여준다. 또 과자와 사탕을 파는 좌판은 오색 왕사탕과 전병 과자를 대표선수로 다양한 종류를 갖추고 침샘을 분비시킨다. 그뿐인가. 땅콩은 고소하게 볶아지며 벌건 고추 포대들이 무리 지어 성을 이룬다. 채소며 오곡이며 생필품들이 만물상처럼 어지러운 듯, 하지만 그들만의 질서 속에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 말소리와 대장간 쇠소리, 뻥튀기 가게 뻥이야소리가 조화롭게 섞여 공백없는 콩나물시루처럼 수북하다. 한쪽 무대에서는 추석맞이 경품행사가 떠들썩하다. 푸짐하고 정겨운 광양오일장 풍경이다.

실파 한 단에 만원, 잘 익은 햇밤 만원어치를 샀다. 구경하다 보니 잔치국수는 소화가 다 되고 다시 두리번거린다. 구수한 기름 냄새를 따라가니 전집에 다다른다. 나머지 빈 배는 모듬전과 막걸리 한잔이다. 전집에 들어서니 좁은 가게가 거의 찬다. 대부분 여성 손님들이다. 비교적 조용하다. 모듬전 14천원과 막걸리 한 병 3천원을 주문한다. 아 이 모듬전 때깔머지? 고기전, 깻잎전, 버섯전, 삼색전, 명태전, 고추전이 널찍하고 먹음직스럽게 큰 접시에 나온다. 각종 전에 양파장아찌 한 조각 올려서 막걸리와 넘기면 아아 이 맛이다. 이것이 장터의 맛이고 광양의 맛이고 오래된 우리 삶의 맛이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오늘은 추석명절을 앞둔 광양오일장에서 입뿐 아니라 눈코귀 오감으로 즐기는 풍성한 한 끼를 아니 두 끼를 배불러 먹었습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어 줘서 감사합니다. 손에 들린 찹쌀도너츠 검은 봉투가 춤을 춘다. 다음 한 끼는 뭘 먹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