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광양을 본향으로 삼은 성씨

살기 좋은 곳에는 그 지역의 토착 세력이 관향(貫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섬을 본향으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선시대의 섬은 거의 유배지였다. 아마도 제주도는 고(), (), ()씨들이 본향으로 삼은 곳인데 너무 커서 섬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제주도의 북쪽에는 탐라국의 시조들을 제사 지내는 삼성혈이 있고, 그곳과 관련된 탐라국 건국 신화가 있다. 옛날 사대부들은 농사짓기가 척박한 바닷가나 천재지변으로 길이 막히는 곳인 섬을 선호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는 사대부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으로 인식하였고, 물고기 또한 비린내 난다고 잘 먹지 않았다. 바닷가를 본향으로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 아니다. 신안군 압해도에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정덕성(丁德盛, 대양군)을 도시조(都始祖)로 모시는 정()씨가 있는데 이들이 압해정씨(押海丁氏)이다.

광양을 본관으로 삼은 성씨는 광양이씨, 광양김씨, 광양최씨, 광양정씨 4개 정도이다. 전국적인 호수와 인구를 살펴보면(남한만의 통계), 광양김씨는 177호에 647, 광양최씨는 144호에 609, 광양이씨는 68호에 260, 광양정씨는 7호에 36명이 1985년에 남한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광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조선후기 18세기 후반에는 무려 27개나 존재했는데, 해방 이후에는 겨우 4개만이 남아 있었고 그들마저 1천 명도 채 못 되는 희성에 불과하였던 것이다.(광양시지(2005), 3, 845)

광양이씨(光陽李氏)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광양 부원군으로 봉해진 이무방(李茂芳, 1319~1398)을 시조로 하고 있다. 광양김씨(光陽金氏)의 시조는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상고할 수 없다고 하면서 중시조인 원외랑(員外郞) 김희석(金希奭)으로 본다. 김황원(金黃元), 김의원(金義元), 김약온(金若溫) 등을 배출하였다. 광양최씨(光陽崔氏)증보문헌비고에 상고할 수 없다고 하였고, 대표적인 인물로 최산두(崔山斗)가 있다. 네 성씨의 시조는 모두 광양으로 이거한 입향조로 보이고, 처음부터 광양을 본관으로 삼은 성씨는 없는 것 같다. , 그 후손들의 숫자가 적은 것으로 보아 가문이 번성하지는 못한 것 같다.

백운산의 삼정 전설

하지만 광양에서는 백운산의 정기를 받은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광양시지(2005)의 기록을 보자.

광양 고을의 북쪽에 우뚝 솟은 백운산은 고래로 명산이라 일컬어 독특한 영걸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백운산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백운산(白雲山)에 세 가지 정기가 있다고 전하는 정기(精氣)의 하나는 봉의 정기(精氣), 둘의 정기는 호정(狐精, 여우의 정기), 셋의 정기는 저정(猪楨, 돼지의 정기)을 말한다.

첫째, ()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은 최산두(崔山斗) 선생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학사대에서 수학하고, 이조 중종 때 현유 조광조와 교우가 깊어 당대의 유명한 학자로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최산두의 출생지는 본래 뫼내면이다. 그 뒤 봉강면(鳳岡面)으로 개칭되었고, 봉강면에는 봉당(鳳堂), 봉계(鳳溪) 등의 마을 이름이 있는가 하면, 최산두를 제향하고 강학하던 서원도 봉양서원(鳳陽書院)이고 이분을 제향하는 곳도 봉양사(鳳陽寺)이어서 봉의 정기는 최산두가 독점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둘째, ()의 정기에 얽혀 있는 전설은 월애(月愛)의 이야기다. 월애는 고려 때 지금의 옥룡면 초암부락 월애촌에서 출생하였다. 이 마을 이름을 월애촌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이 마을에 살던 월애는 어려서 행실이 근엄할 뿐 아니라 그 자태가 뛰어나 만인의 주시 대상이 되어 가히 화용월태(花容月態,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맵시를 이르는 말)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려 충렬왕 이후로 몽고에 수백 명의 고려 처녀를 징발하여 몽고로 보낼 때라 월애의 미색이 널리 알려져 몽고에 공녀(貢女)로 뽑혀 갔었다. 그는 곧 몽고 왕의 왕비로 간택되었다. 월애는 당시 고려 조정의 어려움을 몽고 왕에게 간청, 조정역할을 다함으로써 조정에 여러 가지 공헌을 하게 되어 이 마을을 월애촌이라 하고 호의 정기는 월애가 받은 것이라 하였다.

셋째, ()의 정기를 받은 사람은 아직 없다고들 하는데 옛날 중국의 석숭(石崇)과 같은 부호가 날 것이라고 하여 이 고장의 사람들은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고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 제철소와 컨테이너 부두의 활성화로 돼지의 정기를 꿈꾸고 있다.

한려수도의 미려한 정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망덕산(望德山)에는 천자봉조혈(天子奉朝穴)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풍수들이 많이 찾아든다. 60~70년 전 황매천(黃梅泉) 제자임을 자처하는 방산이라는 호를 가진 신씨가 천자봉조혈이 망덕산 아래 바닷속에 있다고 믿고 물에 뛰어 들어갔는데 3일 후에야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전한다.(3, 436~438)

옥룡면 사무소 앞 삼정 전설 비
옥룡면 사무소 앞 삼정 전설 비

백운산의 옛 지명인 백계산

백운산은 조선 중기까지 백계산으로 불리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곳곳에 쇠말뚝이 박히고,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는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1861년 제작된 대동여지도에 백운산과 백계산이 다른 두 개의 산으로 구분하지만, 통칭 백계산은 백운산의 옛 지명으로 본다. 오늘날 백계산이 백운산이라는 이름으로 고착화된 것은 일제의 만행에 의해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40권 전라도 광양현 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백계산(白鷄山)은 현의 북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산 정상에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 샘이 있으며, 샘 밑에서 흰 구름이 때때로 일어난다. 무릇 빌기만 하면 문득 영험이 있고 재계(齋戒)하는 것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샘이 마른다.

백운산은 원래 지네 형국이다. 그러니 지네의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한 진압 풍수의 하나로 백계산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닭은 지네를 매우 좋아하고, 지네는 닭뼈를 매우 좋아한다. 이 둘은 상극 관계이다. 진압 풍수란 강한 것을 눌러서 조화를 이루고 상생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광화문 앞 해태상이 대표적이다. 이는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운 것이다. , 일설에는 백운산을 흰 닭이 두 발을 딛고 날개를 활짝 펼친 상태에서 북쪽으로 날아오르는 형국으로 보기도 한다. 광양 봉강과 순천시 서면의 경계 지역에 말 그대로 닭의 다리라는 계족산(鷄足山)이 있기 때문이다.

닭은 이마 위에 세로로 살 조각인 볏이 붙어 있다. 닭이 머리 위에 볏을 달고 있는 모습이 관()을 쓴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하여 관()닭의 볏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원시적 사고에 의하면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낳는다고 본다. 갑골문 관()의 자형은 군주에게 벼슬을 제수받고 의관을 갖춘 영윤(令尹, 지방의 장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빛깔이 붉고 시울(약간 굽거나 휜 부분의 가장자리)이 톱니처럼 생겨서 벼슬이 높은 훌륭한 인물이 쓰는 관(, )과 유사하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두고 과거 준비하는 사람은 닭 그림을 보면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닭이 입신출세(立身出世)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백운산은 전라남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한반도의 남단 중앙부에 위치하며, 한반도의 산세와 역방향이므로 정기가 매우 강하다. 영험한 산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백운산에는 삼정 전설이 전해온다. 봉황의 정기로 벼슬을, 여우[월애]의 정기로 지혜를, 돼지의 정기는 부(, 재물)를 이루어 준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광양시민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돼지혈의 정기가 자신에게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요즘의 대기업 삼성 같은 대부호가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성웅 전 시장님께서는 광양이야말로 천하만복지지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재물복은 사곡의 금광 시대와 그 후 광양제철 시대, 그리고 항만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해석하셨다. ,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이 있어 시민 1인당 소득이 전국 5위 안에 들 수 있는 것도 저정의 기운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좋은 길지를 명당이라고 하는데, 대명당일수록 풍수가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됨으로써 그 혈자리는 각기 다른 형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의 끝인 망덕산을 풍수가에 따라 천자봉조혈(天子奉朝穴)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풍수가는 할아버지 산인 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회룡고조혈(回龍顧祖)이라 하기도 한다. 이런 명당일수록 많은 사람이 조금씩이라도 기운을 다 받을 수 있으며, 그중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 귀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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