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_18

자주 술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본인만의 해장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국물을 찾지만, 요즘은 햄버거로 해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니 어쩌면 해장은 맨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서 각자의 호불호에 따라서 쓰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닐까. 식객의 경우 우선 국물이 있어야 하고 그 국물은 맑은 국물이든 빨간 국물이든 약간 슴슴하고 건더기가 많아 배를 채우며 투가리에 담아 뜨끈하여 머리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야 한다. 그래야 뱃속과 관계없이 머릿속에서 “아 풀리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 지역은 유난히 국밥집이 많은 곳이다. 우리모두가 국밥을 사랑하여 아침 점심으로 국밥집은 대부분 사람들로 그득하다. 오래 끓여 진한 육수에 압도적 건더기의 양, 그리고 밥과 국의 혼연일체, 그리고 쐐주 한 잔은 바쁜 현대인에게 또는 주머니 가벼운 가장에게 최적의 예술적 조합이다. 아 머릿고기국밥, 매번 질리지도 않고 생각만으로 벌써 군침이 돈다. 그러다 가끔 아 오늘은 좀 특별한 국밥이 없을까. 그럴 때 어김없는 찾는 곳, 그래 오늘 해장은 그곳으로 가자. 

중마동 발섬 4길 ‘장군일식’ 옆 골목에 자리한 ‘창평숯불갈비’에서 먹는 ‘흑돼지애호박찌개’가 오늘의 밥 한 끼다. 먼저 연세가 지긋한 분이라면 애호박찌개에 대한 오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 대가족시절 자주 국으로 오르던 애호박찌개는 돼지고기야 숟가락질을 여러 번 해도 구경하기 힘들지만 빨간 고추장 국물에 호박은 듬뿍, 그리고 조미료 적당히 넣고 끓여주던 어머니들의 애호하는 메뉴였다. 그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서 뚝딱하면 고기도 먹고 배도 부르게 먹은듯한 포만감이 좋았다. 밥 한 톨 국물 한 방울 남기는 법은 없었다. 그때의 습관인지 지금도 남김 없다. 먹다 보면 숟가락을 당기는 마법이 있는 애호박찌개를 잘하는 그 집에 오늘 한 끼를 의탁한다. 맛있는 흑돼지고기 듬뿍, 씹는 맛 또한 제법이다. ‘담양식떡갈비’와 ‘흑돼지주물럭’이 메인 메뉴인 식당이지만 식객의 경우 ‘흑돼지애호박찌개’를 좋아하는 지인분과 함께 자주 가며 알게 된 집이다. 기본 반찬 또한 흠잡을 것 없이 근사하며 운수 좋은 날엔 사장님께서 갈치 한 토막도 내어 주시는 맛있고 추억되고 해장되는 흑돼지애호박찌개 집이다.

가을이다. 어제 읽은 책 중간에 책갈피 꽂아 둔 한 문장을 상에 올리니 밥도 드시고 마음의 양식도 한 끼 하시면 좋겠다.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가 의병이 되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아니었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오직 의로써 싸워왔소. 그렇게 싸우다가, 저격여단의 창설자 김수협과 항일연합포연대의 청년중대장 현창하, 부중대장 이정재,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전사했소. 박한과 리범진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고, 허위와 박상진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소. 그들이 싸워왔기에 오늘의 싸움이 있소. 오늘 싸워야 내일의 싸움도 있소.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다음 싸움도 없소.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언젠가, 대한의 누군가가 못다 한 우리의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오. 그렇지 않소?" <방현석 소설 ‘범도’ 중 봉오동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의 말>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오늘은 고깃집에서 먹는 고기 듬뿍 추억의 ‘흑돼지애호박찌개’로 배불리 밥 한 끼 잘 먹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가을볕에 졸음이 솔솔 몰려옵니다. 배부르고 평온한 한 주를 기대하며, 다음 한 끼는 뭘 먹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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