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주 진보당 광양시위원회 위원장

유현주 진보당 광양시위원회 위원장
유현주 진보당 광양시위원회 위원장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돌 우를 지나 어루만지듯, 쓰다듬듯 파도가 친다.
그 우에 배경처럼 여성들의 잔잔한 회고가 얹어진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10·19 여순항쟁 75주기를 즈음해 뜻있는 분들과 단체의 노력으로 영화 상영, 강연, 문화제 등이 이어졌다. 광양시 ‘10·19 여순사건희생자 추모 조형물도 제막식을 갖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제주 4·3항쟁을 다룬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영화 상영이 있었다. 제주 4·3항쟁 중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 군사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한 다섯 여성의 기억을 담은 영화다. 4·3 수형인들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된 순간도 담겼다. 이 모든 순간을 보았을 제주의 자연풍광도 짧지 않게 담겼다.

우리 할머니들은 말한다. 다시 4·3항쟁 당시 제주에 있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집이 불타고 눈앞에서 살붙이가 총살당하는 장면도, 산사람들에게 무엇을 얼만큼 보냈는지 말하라 강요당하고 고문받는 장면도, 형식도 절차도 없는 재판에서 누구누구 몇 년이라고 형을 언도받는 장면도, 오밤중에 실려가 전주형무소라는 소리를 듣고 이젠 살았다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도 목소리의 힘으로 형상화된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지 않아 좋았다. 여성들의 날 것 그대로의 경험을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화가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할머니들이 이미 그 고통과 슬픔, 분노를 승화시켜 역사의 기록으로 남긴 삶의 승리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도 동네 어머님들이 그 고통스러운 일들과 이후의 일상을 유머위트로 표현하는 힘은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 멘트 나라는 사람이 기억돼서 너무 좋다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가장 큰 삶의 목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영화는 우리를 4·310·19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세세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고도 현대사 그 어느 지점을 만나고 더 알아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면,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지? 라고 질문할 수 있었다면 이 영화는 할 일을 다한 것일 수 있다.

75년이 지나도 아직 우리는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날의 진실을 직접 말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젠 말할 수 있는 분들도 우리 곁에 많지 않다.

처음 이 영화 제목을 접했을 때는 돌들이 말할 때까지 라는 의미를 끝까지’ ‘영원히라던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라던가로 해석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다 싶다.

나의 다른 해석은 어쩌면 돌들은 이미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이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었을 뿐. 아니 들으려하지 않았을지도. 돌들의 말을 알아듣게 될 때까지 우리는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로.

마지막 해석은 역사와 시대의 무게로 돌이 되어 버린 사람들, 침묵하던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이다. 희생자 유족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말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불평등과 부조리, 반역사와 반인권이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해석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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