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 광양시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사무국장

조은정 광양시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사무국장
조은정 광양시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사무국장

아직도 한참 젊은 거 같은데 주변에 어린 동생들이 늘어나고 03년 대학 새내기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단 걸 셈하고 보니 나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라는 걸 실감하곤 한다.

창문을 열어 선선한 가을 공기를 삼키며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래를 흥얼댄다.

젊은 날의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리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바쁘고 치열하게 열심히 산거 같은데 이뤄 놓은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현실 속에서도 보석 같은 아이들 내 곁에 있어서 그 아이들 덕분에 그래도 내 삶이 풍요로울 수 있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지난 주말 신랑과 정기검진 예약을 해서 광주에 다녀왔다.

암을 잘 찾아내는 기관이라고 2년에 한 번은 그곳에서 내시경까지 싹 검사해 보는데 올해는 다행스럽게도 제거할 용종 하나 없이 검진을 잘 마쳤다.

새벽 6시에 출발해서 8시부터 보는 진료인데도 번호표 순번이 198번이다. 10명이 넘는 접수처 직원들 사이에서 번호 순번을 기다리고 4시간을 웃도는 시간 동안 몸 구석구석을 검진한다. 길고 지루한 시간인데도 같이 손잡고 진료 올 수 있는 신랑이 있어 데이트 마냥 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몸이 재산인 우리가 어쨌든 아프지 않고 올해도 같이 검진 올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고마운 순간이다.

내시경 검진을 위해 전날 저녁부터 새벽 4시까지 약 챙겨 먹느라 잠을 못 잔 탓도 있지만 그 약을 수유 중에 먹을 수 없다 하여 예고도 없이 단유를 했더니 자지러지는 막내를 억지로 재우느라 밤새 잠을 잔 건지 날을 샌 건지 싶은 정신으로 강행군을 펼치고선 남편 어깨에 기대 있으니 절로 눈이 감겨온다.

맞은편 자리에 웃을 때 쏙 들어가는 예쁜 보조개를 가진 20대의 아가씨가 보인다. 엄마와 함께 검진을 왔는지 쏙 닮은 붕어빵 모녀이다. 젊은 날 우리 엄마 나이처럼 보이는 그분을 보고 손가락을 놀려가며 엄마 나이를 셈해본다. 45. 젊디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 엄마 참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말하고선 더 깊이 내어주는 신랑의 어깨에 말 없는 위로를 받는다.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죽고 나면 화장한 골분은 그냥 휴지통에 버리라고 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있을 때 잘해야지 돌아가시고 나서 성묘 오고 제사 지내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다.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유교문화가 여전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말을 뱉으면 어른들께 딱 개념 없는 MZ세대 취급을 받겠지만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목소리를 듣고 그렇게 부대끼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말이다.

같이 근무하는 단장님과 기러기 아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자고로 가족이란 부대끼며 살아야 가족이지 성공해서 외국 간들 안 보고 살면 가족이 아니라 그저 해외동포라는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두고두고 곱씹어 보니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세상이 좋아져 영상통화도 하고 수시로 연락도 주고받을 수 있지만 한번 맞잡은 손보다, 포옹보다 어찌 더 따뜻할 수 있으랴.

멀지도 않은 광주 친정도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해져 친삼촌보다 매일 보는 이웃사촌을 더 삼촌처럼 여기는 아이들만 봐도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사랑의 표현인지 백번 공감한다.

어느덧 마지막 대장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간호사의 부름에 몸을 일으킨다. 어질어질 여전히 약에 취해 있는 듯한 정신을 이끌고 남편의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깍지 낀 손을 꼭 움켜쥐어본다. 최근 과음이 잦아진 남편 건강이 다소 걱정이었는데 둘 다 별 큰 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30시간 이상 공복의 주린 배를 달래려 들어간 죽집에서 죽 한 그릇씩 깨끗이 비우고 신랑보다 더 자서 그런지 좀 더 맑은 정신인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금세 잠든 신랑의 잔잔한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도시 외곽의 황금물결 넘실대는 모습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내 온몸에 가을 내음을 전하고 나니 숨 쉬는 이 순간이 감사다. 또다시 주어진 건강한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사랑할 수 있을 때 숨 쉬듯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나의 인생 길이지만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래 가사를 빌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품어 살아가겠노라 다짐해본다.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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