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산책-박옥경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상적바구는 돌담이 되어 마을을 지키고 있네

덕천마을은 율천교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솔밭섬이 있고 왼쪽으로 무궁화밭이 있다. 작은 다리(이것도 율천교)를 하나 더 지나면 340년 수령의 보호수 팽나무가 오랜 세월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왼쪽에 위치한 아담한 우산각 부근에서 마을이 올려다보인다.

덕천(德川)이라는 지명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처음에 덕내라고 부르다가 국사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옥룡천에 합수되기 전 마을 한가운데를 흘렀으므로 이름에 내천() 자를 붙여서 덕천이라고 불렀다고 짐작한다.(2005 광양시지) 옥룡면 율촌리에 속하고 행정리상 덕천이다.

덕천마을
덕천마을

덕수노인회라는 간판이 붙은 회관에 들렀다가 거기가 아님을 알고 마을회관으로 차를 돌리느라 이장님과의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이장님이 마중나와 계셨고 안으로 들어가자 감사하게도 여러 어르신이 환영해주셨다.

주태준 이장님
주태준 이장님

미리 조사해 간 물방앗간과 돌확터, 상적바구에 대해 여쭤 보았다. 물방앗간과 돌확터는 흔적이 없어 알 길이 없다고 하셨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상적바구인데 상제(上帝)바구라고도 한다. 옛날 하늘에 매년 10월 제사를 지냈던 바위로 동네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빌었다. 2005년 기준으로 약 30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가 마을 복판에 있다고 알고 간 상적바구는 마을회관 정면 돌담 속에 있었다. 아주 작은 화단이 그 앞을 장식하고 있고 조각 난 상적바구가 지탱하고 있는 돌담 위에는 개인 소유의 경작지가 있다. 작년에 도로가 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데 그 전에 상적바구를 보지 못한 게 몹시 아쉽다.

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옛것의 보존이라는 선택에서 옛것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돌담에 박혀 있는 돌조각이 어떻게 상적바구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자세히 보면 질감과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오니 저렇게라도 남아있음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돌담에 박힌 상적바구(화살표부분)
돌담에 박힌 상적바구(화살표부분)

상적바구는 평상시에는 밤에 도적을 지킬 때 바위에 올라앉아 야경을 하던 곳이다. 밤실과 덕천은 인접해 있으므로 상적바구에 올라가서 밤실 덕천 이상 없음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옥동 주민이 옥룡지서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안전을 맡았던 상적바구는 마치 자신들의 무덤인 양 돌담 여기저기에 조각 난 몸으로 박혀 지금도 변함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태풍 루사 극복 기념관과 솔밭섬

덕천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솔밭섬이다. 주차장 입구에 눈에 띄는 돌담집이 있다. 저 집이 무엇하는 곳일까 늘 궁금했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본 적은 없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필자가 솔밭섬에 갈 때마다 관광버스가 입구에 주차하고 있어서 현판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현판이 어엿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이 글을 쓰고자 세 번째 방문했을 때이다.

하천섬에는 집이 네 채 있었는데, 태풍 루사때 계곡물에 휩쓸려 집 세 채가 떠내려갔다. 이에 광양시는 1930년에 건축된 남은 돌집 한 채를 2009831일에 태풍 루사 극복 기념관이라는 현판을 걸고 기념관으로 조성했다. 이장님 말씀으로는 원래 천석꾼 술도가집이었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2002831일에 발생한 태풍 루사의 피해를 극복한 현장 사진과 수해복구 때 사용되었던 장비들이 있다. 후손들에게 자연재해와 대비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 또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광양시의 노력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태풍루사극복기념관
태풍루사극복기념관

태풍 루사로 광양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등 피해가 막대했다. 당시 서천변에 벚나무가 있는 둑방까지 물이 차올라 광양읍도 물에 잠길까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문이 잠겨 기념관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들여다본 창문으로 루사로 입은 피해를 극복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조형물이 보였다.

솔밭섬은 태풍 루사가 만든 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사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근거 사진을 찾기 어려워 잘 아는 분의 도움을 받았다. 1969년 사진을 보면 원래 동천의 본류가 좌측이었고 오른쪽은 지류였다. 1979년 사진에는 본류가 있던 좌측을 논밭으로 개간하고 우측의 지류에 본류를 확장해서 물의 흐름을 바꾼 모습이다. 개간한 논밭을 태풍 루사가 다시 관통해서 양쪽으로 물이 흐르게 되었고 지금의 솔밭섬이 생겼다. 자연은 예측하지 못한 것들을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가져가기도 한다.

솔밭섬(1979년)-논밭으로 개간된 동천 본류(화살표 부분).출처-국토지리정보원
솔밭섬(1979년)-논밭으로 개간된 동천 본류(화살표 부분).출처-국토지리정보원

이야기 중에 이장님 부인이 치킨에 막걸리 상을 차려 내오셨다. 오늘 이·통장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이장님이 교육장상을 받으셔서 한턱내는 거라고 하셨다. 박수치며 축하하는 분위기가 드라마 전원일기같이 즐겁고 훈훈했다. 배고픈 참에 필자도 치킨을 맛나게 먹으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타 동네에서 솔밭섬에 오는 사람들이 목줄 푼 개를 방치하거나 배설물 처리를 안 해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며칠 후 필자가 솔밭섬을 다시 찾았다. 배설물을 잘 치우고 목줄을 꼭 채우고 산책하는 분들이 보였다. 반면 배설물도 군데군데 있었다. 유기견도 늘어나고 있다고 걱정하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좋은 환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좀 더 솔밭섬을 아끼는 시민들의 마음이 있어야겠다.

안전한 마을에 대한 바람

요즘 걱정이 더 생겼다고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은 최근 마을에 유입 인구가 많아지고 차량 통행이 빈번해진 데서 오는 불편함이다. 속력을 줄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한밤중에 조심성 없이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한다고. 특히 우산각 사거리에서 사고가 몇 번 났기에 과속방지턱이 꼭 있으면 좋겠다고, 마을 입구에 ‘30Km’ 속도 제한 표지판도 꼭 필요하다고 하신다.

볼록거울이 필요한 마을 회관 옆 삼거리
볼록거울이 필요한 마을 회관 옆 삼거리

몇 군데 볼록거울을 더 설치했으면 하는 바람도 말씀하셨다. 우산각 사거리에서 조금 더 마을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골목이 있는데 볼록거울이 하나 더 있어야 오가는 차량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곳은 상적바구 돌담이 있는 마을회관 앞 삼거리인데 거기도 골목이 있어서 차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는 볼록거울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2023731일 기준 덕천마을의 인구는 69세대다. 앞으로 10가구 정도 더 들어올 수 있는 택지가 조성됐다고 하니 인기 있는 마을임이 틀림없다. 인구가 늘어날수록 서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좌로부터 주태준 이장님,주석남 씨(72),성필영 씨(77),이삼백 씨(83),정재조 씨(82), 김옥준 씨(77),김삼동 씨(76), 정향조 씨(87),이은숙 씨(65)
좌로부터 주태준 이장님,주석남 씨(72),성필영 씨(77),이삼백 씨(83),정재조 씨(82), 김옥준 씨(77),김삼동 씨(76), 정향조 씨(87),이은숙 씨(65)

며칠 전 덕천마을을 다시 찾아 미처 둘러보지 못한 무궁화밭 데크를 걸어보았다. 언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데크 몇 군데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무궁화가 져버린 지금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위험해 보였다.

글로 쓰기 미진한 부분이 있어서 이장님을 다시 만나 세심하게 듣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을 내주신 이장님께, 그리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르신들께 감사드린다. 덕천마을이 솔향기 퐁퐁 풍겨 나오는 힐링의 솔밭섬 마을로, 더 안전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나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마을로 도약하기를 대한다.

글사진 박옥경-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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