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21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낙지는 가을이 제철이라는 말이다. 섬 활동가 강제윤이 지은 <날마다 섬 밥상>에서 빌리자면 낙지는 옛날부터 섬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자산어보에도 맛이 달콤하고 회, , 포를 만들기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낙지는 한자로 '낙제어, 풀이하면 '얽힌 발을 지닌 물고기'란 뜻이다. 낙지는 지방 성분이 거의 없고 타우린과 무기질과 아미노산이 듬뿍 들어 있는 건강식이다. 무더위에 쓰러진 소도 낙지를 먹이면 벌떡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다. 사람도 기력이 부족할 때면 낙지 한 마리만 먹어도 솟구치는 기운이 느껴진다. 낙지는 그야말로 갯벌이 주는 보약이다. 좋아. 오늘 점심 한 끼는 낙지로 해보자.

다리를 건너 태인도. 삭막한 공장지대를 지나 바닷가 길을 따라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돌아드니 작은 어선 몇 척이 보이고 낡은 건물들 사이 영업을 하는 몇몇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천년의 먹거리, 섬진강 뱃길을 연 도촌마을이라 적힌 마을 표지판을 지나 길가에 차를 세우니 오늘 한 끼를 부탁할 식당이 눈앞이다. 꽃게와 낙지요리 전문점 만복식당이다.

지인과 둘이서 식당에 들어서니 벌써 끓는 꽃게탕을 앞에 두고 식사를 시작하는 손님들이 눈에 띈다. 자연스레 꼴깍 침을 삼켰다. 원래 낙지볶음을 먹으러 왔던 마음을 잠시 흔들었다. 고개를 들어 수족관에는 싱싱한 꽃게들이 인사를 한다. 아 두 번째로 마음이 흔들린다. 둘 다 먹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1인분 13,000원 낙지볶음 2인분을 주문한다. 바로 이어 생김치, 익은무김치, 갓김치와 콩나물, 톳무침, 버섯무침, 참나물, 그리고 콩자반, 자반고등어가 식탁에 오른다. 다시 입안에 침이 돈다. 곧이어 참기름 바른 큰 대접과 밥공기, 그리고 옆에 무덤덤해 보이는 시래기국이 자리한다. 이대로 식사를 시작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숟가락을 들어 시레기국에 손이 가려는 순간 비워둔 무대 중앙을 낙지볶음이 차지한다. 완전한 한 끼 식탁이 되었다. 국산 낙지볶음은 연하고 탱탱하니 감칠맛이 제법이어서 순식간에 밥 반 공기가 사려졌다. 맵지 않으면서도 양념은 밥 먹는 동안 연달아 걸려오는 예약전화처럼 계속해서 구미를 당겼다. 남은 반 공기를 참기름 대접에 던지고 나물반찬, 낙지볶음과 함께 비벼서 시래기국과 번갈아 입에 넣으니 아...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하다. 뱃속이 단풍으로 물드는 듯.

식사 후 한적한 도촌안길을 산책한다. 오랫동안 김부각을 만들어 온 명인들의 대문 앞 표식과 김을 시식하고 생산해 온 태인도 사람들의 삶이 그려진 담의 벽화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걷는 동안 인기척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산업단지가 개발되고 한때나마 호황을 누렸을, 그러나 지금은 낡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골목을 지날 때는 마치 안에서 떠들썩한 술꾼들의 웃음소리 환청이 들린다. 유리창이 깨지고 안보일 만큼 글씨가 희미해진 미장원 앞을 지날 때는 파마를 하던 젊은 엄마가 걸어 나올 것 같은 환상도 해보았으나 잠시 머릿속 회상으로 그쳤다. 젊고 활기 넘치던 골목은 가을 낙엽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방금 만복식당 벽에 걸린 액자 속 글귀가 떠올랐다. “살면서 왠지 붙잡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만 잊은 듯하여도 문득 문득 생각에 설렘도 일어 그렇듯 애틋한 관계는 아닐지라도 막연한 그리움 하나쯤은 두어 가슴에 심어두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쇠락해가는 포구의 옛 기억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만복식당같은 맛집이 있어 가끔 들러 그리움을 꺼내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오늘은 태인도 도촌마을 만복식당에서 다음엔 꽃게탕 꼭 먹어야지다짐을 하며 맛있는 낙지볶음에 밥 한 끼 잘 먹었습니다. 다음 한 끼는 뭘 먹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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