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22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출근길 종종거리며 걷는 사람들의 두꺼워진 외투에서 오종종 모여있는 남극의 펭귄들이 생각났다. 뒤이어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물이 생각나는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국물을 며칠 동안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결국 한식구가 되는 거잖아요? 국물은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해주는 음식입니다.” “일상에 지친 우리를 가장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 한 그릇 국밥 아닐까요?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떠먹는 순간, 눈썹이 내려가는 맛입니다.” “밥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밥상 위의 조연이 국이었다면, 최근엔 하나의 요리로 자리 잡은 국물이 많은 것 같아요. 바야흐로 국물의 독립 시대인 거죠.” 많이들 보셨을 얼마 전 방영한 국물의 나라라는 3부작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오늘 점심은 뭐가 좋을까? 곰탕이나 설렁탕, 돼지국밥을 먹을까? 아니면 부대찌개로 할까? 그래, 생각났다. 간만에 순대곱창전골로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보내자.

소문난순대는 중마동 신한투자증권 건물 사잇길로 들어 골목 중간쯤에 위치하며 20여 년째 영업 중이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벌써 테이블 서넛에 손님들이 식사 중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22,000원인 2인분용 순대곱창전골 소자를 주문한다. 바로 이어 배추김치, 깍두기, 콩나물무침, 생양파, 풋고추 그리고 쌈장과 새우젓이 놓인다.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검정 무쇠 전골냄비가 얹힌다. 전골냄비 위에는 뽀얀 육수에 들깻가루가 무리지어 떠다니고 순대와 곱창이 바닷가 바위처럼 육수에 몸을 담그고 있으며, 그 위로 참나물이 푸른 섬처럼 수북이 쌓이고 그 밑으로 빼꼼히 벌건 양념장이 고개를 내밀고 맨 위로 산마루에 하얀 눈이 온 듯 당면이 얼기설기 놓였다. 끓기도 전인데 군침이 돈다. 자연스레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고픈 혀를 달랜다. 보글보글 육수가 끓기 시작하니 식탁 위로 하얀 김이 연거푸 피어오른다. 숟가락을 들어 양념장을 살살 풀어 놓으니 뽀얗던 육수가 붉게 물들어 간다. 자연스레 식욕이 한 계단 상승한다. 이제 때가 가까워졌노라.

푸르러 산처럼 쌓였던 참나물 옆이 숨죽여 무너져 내리고 당면이 눈 녹듯 흐물흐물 흘러내리니 순대와 곱창이 더욱 또렷이 존재감을 들어내며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국물 한 숟가락 떠서 호호 불어 입으로 옮기니 아아... 얼큰하며 크게 맵지 않고 간도 적당하고 조화로운 양념 맛이 딱 좋다. 그다음은 당면, 한 젓가락 집어 호르륵 삼키니 아...이 맛 또한 아는 맛 그대로다. 이번엔 순대를 하나 앞접시에 옮기고 참나물 올리고 양파 한 조각 쌈장에 찍어 순대 위에 올려 먹으니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입에 침이 흥건하다. 곧이어 곱창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니 냄새도 없고 질감도 적당하여 만족의 미소 위로 땀 한방울이 흐른다. 맛있는 세상이다. 뻘뻘 땀을 흘리고 닦으며 흡입하다 보니 어느덧 바닥이 보이고 마지막 신의 한수! 2000원 밥 한공기 볶음밥을 주문한다. 국물을 덜어내고 다시 참나물과 김가루, 참기름 듬뿍 섞어 콩나물 넣고 금새 볶음밥을 만들어 전골냄비에 고르게 펴준다. 아무리 배불러도 이건 못참지. 일행과 번갈아 득득 바닥을 긁어가며 볶음밥을 먹는다. 그 사이 손님이 많이 늘었다. 여성 손님들이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듯하다. ‘소문난순대의 순대는 체인점이 아니고 사장님이 직접 만들며 야채가 많이 들어가 소화가 편한 것이 또 다른 장점이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오늘은 중마동 소문난 순대에서 순대곱창전골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못차리고 땀 뻘뻘 흘리며 국물이 메인인 밥 한 끼 잘 먹었습니다. 다음엔 저녁으로 소주도 한잔 곁들여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음 한 끼는 뭘 먹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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