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죽마을을 찾아 나선다. ‘은죽이라는 지명은 베일에 싸인 신비감으로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킨다. 광양 읍내를 벗어나 옥룡천을 가로지르는 갈죽교를 건너니 은죽구판장이 반긴다. ‘, 여기가 은죽마을이 맞구나안도감을 주는 고마운 이정표다.

은죽마을은 옥룡천변의 은하마을과 동네 안쪽 죽산마을을 아우른 이름이다. 광양시지에 따르면 은죽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 옥룡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죽산촌, 운죽리 등을 거쳐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계곡리, 갈곡리, 사곡면 기두리 일부지역과 함께 운곡리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은죽마을 전경
은죽마을 전경

은하수가 흐르는 은하(銀河)마을, 왜 샘을 못 파게 했을까

옥룡천을 따라 단정하게 들어선 은하마을은 정갈하고 고즈넉하다. 탐스런 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가 담장 너머로 가지를 길게 뻗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방인을 쳐다본다. 은하마을 끄트머리에는 이제 겨우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어린 팽나무가 마을의 희망처럼 찬란하다.

은하마을은 처음에는 운하(雲河)마을운하정이로도 불렸는데 마을 옆으로 흐르는 물줄기 형상이 하늘의 은하수를 닮았다고 해서 은하(銀河)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마을회관과 은죽정
마을회관과 은죽정

은하마을은 배 형상이야. 우리 시아버지한테 들었어. 전에 우리 젊었을 때 새미()를 팔라니까 못 파게 해. 그래서 저 냇가에서 여다 먹었어. 샘을 파면 마을이 가라앉는다고...” 정윤순(78) 어르신의 말씀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은하마을이 배 형상이고 배가 가라앉는 것을 염려해 샘을 못 파게 했다면 마을의 이름은 운하(雲河)가 아니라 운하(運河)가 아니었을까. *운하(運河) : 육지를 파 인공적으로 강을 만들고 배가 다닐 수 있게 한 수로

대나무가 많은 대뫼, 죽산(竹山)마을은 왜 세금을 면제 받았을까

자로 꺾어 들어 죽산마을을 향하니 흰구름을 머리에 인 백운산을 배경으로 당그래산이 덩그러니 앉아 있고 가을걷이를 마친 빈 들판은 무한한 자유와 여백으로 평화롭다.

신우대가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신우대가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죽산마을은 예로부터 야산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해 대뫼로 불렸으며 임진왜란 때는 마을의 대나무로 화살대를 만들어 공급했다고 한다. 조성기(88) 어르신은 임진왜란 때 여기 마을 대나무로 화살대를 만들어서 전쟁터에 내보냈어. 그래서 우리 마을은 세금도 안 냈대라며 어깨를 으쓱하신다.

대나무가 많고 특히 신우대라고 화살 만드는 재료가 있어요. 광양읍 유당공원에 국궁을 쏘는 유림정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화살을 공급했대요. 광양읍에 살던 내가 아는 선배도 화살 만든다고 여기로 이사를 왔고요칠십 평생을 광양읍에 사시다 9년 전 이 마을에 둥지를 틀고 3년째 이장직을 맡고 계신 백상선(70)이장님께서 덧붙이신다.

단정하고 고즈넉한 은하마
단정하고 고즈넉한 은하마

옥룡의 관문인 은죽마을에 용머리가 있는 건 우연일까

은죽마을은 용머리를 시작으로 태봉산, 당그래산 등 야트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고 죽산마을 한가운데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우물이 있다.죽산 동남쪽으로는 부드러운 능선이 꿈틀거리는 용의 등처럼 길게 내리뻗었는데 그 형상이 용의 머리를 닮아 용머리라고 부른다. 옥룡의 관문인 은죽마을에 용머리가 있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갈죽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용머리 부근 징검다리를 건너다녔는데 비가 많이 오면 오래 사신 어머니들 표현을 빌리면 젖가슴까지 물이 닿았는데 머리에 다라이를 이고 수박을 팔러 읍내까지 갔대요이장님의 전언이다.

태봉산은 높이 277m전에 봉화를 올렸다고 광양시지는 기록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 아쉽다. 손삼례(87) 어르신은 선녀가 아기를 딱 보듬고 있는 형상이어서 옥녀봉이라고 불렀어. ()를 안고 있어 태봉산이잖아. 아기가 없는 사람은 공을 들여 아기를 낳기도 했어라고 말씀하신다.

당그래산은 논이나 밭의 흙을 고르거나, 씨뿌린 뒤 흙을 덮을 때, 곡식을 모으거나 펴는 데 쓰는 연장인 고무래를 닮아 얻은 이름으로 너른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이 영락없이 고무래다.

덮어버리면 물이 죽는다고 열어 놓은 마을우물
덮어버리면 물이 죽는다고 열어 놓은 마을우물

죽산마을 한가운데는 마을 우물이 청동기 유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뚜껑을 덮어버리면 물이 죽는다고 해서 열어 놨는데 항고 물이 좋았거든. 겨울에는 언 손에다 물을 뿌리면 금방 녹아. 뜨뜻해손삼례(87) 어르신의 자랑이다. 덮개를 완전히 덮으면 물이 죽을까봐 살짝 열어둔다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만물을 대하는 태도와 지혜를 본다.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활기넘치는 도농복합도시, 은죽마을

죽산마을 초입에 있는 은죽마을회관은 이국적인 당종려나무 두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좌우로 서 있고 사모지붕에 대나무 그림이 그려진 현대식 정자가 은죽정이란 현판을 걸고 이웃해 있다. 마을회관과 은죽정 사이에 섰는 고목은 2~3년 전부터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 죽은 마을의 당산나무로 마을 어르신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당종려가 이색적인 은죽마을회관
당종려가 이색적인 은죽마을회관

경로당을 겸하고 있는 마을회관을 들어서니 백상선 이장님과 어르신들이 반가움과 호기심 섞인 얼굴로 낯선 이방인을 맞아주신다. “은죽마을은 37세대 87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옥룡면 인구를 3천 명 정도로 볼 때 약 3%로 인구 비중은 낮지만 도농 복합도시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어요이장님의 마을 소개다.

경로당에 주로 와서 노시는 분들이 모두 열두 분인데 그중 열 분이 여자고 나머지 두 분이 남자예요이장님 말씀처럼 모이신 분들도 정옥희(95), 삼례(87), 반옥심(69) 세 분이 할머니시고 조성기(88) 어르신이 유일한 청일점이다.

백상선 은죽마을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
백상선 은죽마을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

읍내가 가까워 시장도 가깝고 초, , 고 학생들이 자라나고 있는 은죽마을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활기 넘치는 도농 복합도시다.

삶의 애환을 풀어주는 은죽마을의 참새방앗간, 은죽구판장

처음에는 구판장에 오시는 분들이 젊은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연세가 드시고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속상해요. 연세 드시면서 몸이 편찮아지시니까 그만큼 발길이 줄어 얼굴을 못 뵈니 안부도 궁금하고 그런 게 안타깝죠은죽마을에 이사 와 3년을 살다 우연한 기회에 17년째 은죽구판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진희(46) 씨의 말이다.

갈죽교를 건너면 소박하고 정겨운 벽화로 방문객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은죽구판장은 막걸리 한 잔으로 삶의 절절한 애환을 풀어주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뿌리치기 힘든 참새방앗간이다.

은죽마을의 참새방앗간  은죽구판장
은죽마을의 참새방앗간 은죽구판장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오시기는 해도 옛날 같은 그런 정겨운 분위기가 아니니까 아쉬워요. 그래도 여기서 오래오래 계속 하고 싶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한 분이라도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편하게 와서 쉬다 가실 수 있는 데가 되면 좋겠죠

아이가 자라서 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는 건 보기만 해도 배부른 일이지만 푸르던 청춘이 늙고 병들어 가는 걸 한자리에서 지켜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다. 은죽구판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청춘과 추억을 간직해가는 공간인 만큼 주인장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마을사람들의 참새방앗간이 되고 여행자들을 반기는 환대의 장이 되길 소망한다.

조경이 아름다운 은죽마을
조경이 아름다운 은죽마을

반짝이는 은하수가 흐르고 가을바람이 맑은 대숲을 흔드는 곱디고운 은죽마을, 그곳에는 마을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젊은 청년 백상선 이장과 물이 죽을까봐 우물의 뚜껑을 열어두고 대뫼, 옥녀봉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르신들과 마을의 이정표로 쉼터와 환대가 되는 은죽구판장이 숨쉬고 있다.

이회경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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