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산책

백운산을 오가며 숱하게 지나쳤지만 단 한 번도 멈춰 서거나 머물러 본 적 없는 초암마을이 올가을 내게 왔다. 수없이 스쳐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인연이 닿으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의미있는 존재가 되듯 옥룡의 여느 한 동네로만 머물렀던 초암마을이 그랬다.

월애촌, 장암, 진등, 초장...4중주로 그리는 아름다운 하모니

옥룡의 심장부로 월애촌, 장암, 진등, 초장 4개의 자연마을을 아우르는 초암마을은 봉긋봉긋 세 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결은 세봉암을 병풍처럼 두르고 유유히 흐르는 동천을 사이에 둔 채 상원마을과 눈 맞추고 있다.

초암마을 전경

초암마을은 나주나씨가 처음 입촌해 마을을 형성한 나씨 집성촌이고 월애촌, 장암, 진등, 초장 넷 똠이 합쳐진 마을인데 그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초장마을을 본똠(본래의 마을)이라고 불러요나숭수(64) 이장님께서 말씀을 여신다.

수정처럼 맑은 동천이 윤슬로 반짝이고 청랑한 갈바람에 갈대가 서걱이는 초암교를 건너 왼쪽으로 돌면 마을회관과 당산나무가 길 양쪽에 서 있다. 당산나무인 서어나무는 1982년 보호수 지정 당시 수령 220, 수고 7m, 둘레 2.7m로 거의 밑둥부터 뻗은 2개의 줄기와 요철 같은 수피가 인상적이다.

초암마을회관과 당산나무인 서어나무
초암마을회관과 당산나무인 서어나무

회관이 가까우니까 노인들이 전부 와서 많이 놀고 저녁 식사도 같이 해요. 열흘은 의무적으로 먹는데 자진해서 천 원씩을 내. 이왕이면 좀 잘해 먹자고 반찬을 사러 가. 그 외에는 여기 나온 사람들이 그냥 수시로 자기들이 밥을 해먹으니까 쌀이 모자라 팔아서 먹고 그래요진등마을 서동석(81) 어르신이 신나서 말씀하신다.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 들어오는 마을회관에는 나숭수(64) 이장님을 비롯해 월애촌, 장암, 진등, 초장에서 모여든 십여 분의 어르신들이 빙 둘러앉아 제각기 마을 자랑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든 마을회관의 어르신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든 마을회관의 어르신들

풀과 바위가 많은 초암마을, 문화와 역사 2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초벌로 쓴 원고를 초고(草稿), 계획의 기초가 되는 구상을 초안(草案)이라 할 만큼 풀은 종이가 귀했던 시절 기록을 위한 좋은 소재였고 바위 또한 고대부터 중요한 것을 새기는 기록의 장이었던 만큼 풀과 바위가 많은 초암마을은 문화와 역사를 이루는 2개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할 수 있다.

초암마을에는 바위가 많아요. 굴바구, 베락바구, 선바구...베락을 맞아서 베락바구라고 불렀는디 옛날에는 거기 성국청이라는 절이 있었어. 지금도 가면 기왓장이 있어. 옛날 같으면 나무를 하러 댕겼는데 지금은 갈 일이 없어요 산에.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묵어 덩그레가 돼갖고 댕길 수가 없어요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다닐 수가 없다는 말씀에 실망하고 광양시지에 기록된 청동기시대 고인돌을 찾아 나선다. 초암마을 진입로를 따라 동쪽으로 5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2기의 고인돌이 좌측과 우측에 북동-남서 방향으로 있다. 남서쪽 상석은 상당 부분 도로에 묻혀 있는 상태로 다수의 성혈이 보이고 상부에는 나주나씨 세장산비가 세워져 있다.

이게 고인돌이라구요? 여기 마을사람들은 황새알처럼 생겨서 황새바구라고 부르는데마을 주민들은 여태껏 황새바구로만 알고 있었던 소나무 아래 바위가 고인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마을을 다녀와 이틀을 보내고 아무래도 초암마을 역사의 산증인인 바위들을 눈으로 직접 봐야겠기에 이장님께 바위가 있는 곳을 안내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더니 마을의 내력을 잘 알고 계신 홍성열(64) 님을 대동하고 좁고 험한 비탈길을 달릴 트럭에 나를 태우신다.

2개의 베락바위 중 하나인 암바구
2개의 베락바위 중 하나인 암바구

베락바위가 두 개인데 한 개는 자궁을 닮아서 자궁바위, 암바위 그래요. 우리 어렸을 때 윷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비가 오면은 애들이 전부 다 이리 비집고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그랬어요. 인력으로 안 되고 벼락을 때려가지고 쪼갠 것처럼 요 밑에 떨어진 거예요신명나는 홍성열님의 설명이다.

바위가 굴처럼 생겨 동학혁명 때 피난처 역할도 했다는 굴바구는 수풀로 뒤덮여 진면목을 볼 수 없었고 거대하게 서 있는 형상이 암바구와 짝을 이루며 수바위로도 불린다는 선바위도 우거진 잡초와 넝쿨이 절반 이상을 휘감고 있다.

삼정(三精)의 기()3.1 운동의 정신이 흐르는 초암마을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는 백두산이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다 마지막 걸음을 멈춘 백운산에 신령한 세 가지 정기(精氣)가 서려 있다고 했다. 첫째는 봉황의 정기요, 둘째는 여우의 정기요, 셋째는 돼지의 정기로, 그 세 정기를 각각 타고난 인물이 광양에서 난다는 것이다.

그중 여우의 정기를 가진 월애가 이곳 초암마을에서 났다. 월애는 고려 충렬왕 때, 공녀로 징발되었으나 빼어난 미모와 지혜로 원나라의 황후로 책봉되었다. 당시 고려 조정은 어려운 국가 대사를 월애를 통해 성사시켰고, 그의 공을 기려 월애가 태어난 마을을 월애촌으로 칭했다고 한다.

1902년생인 나성길은 19193·1운동에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를 부르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해 왜경의 검속과 폭행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고 항변하다 징역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17세였던 나성길은 운평리에 있던 서당 견용재에 다니던 중 선배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다 왜놈들에게 끌려갔는데 우리가 어찌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느냐면서 급우 6명과 함께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옥룡초 교내에 세워진 칠의사 3·1운동 기념비
옥룡초 교내에 세워진 칠의사 3·1운동 기념비

우리 아버지가 말이야. 3.1운동 시기에 만세 부리고. 그때만 해도 서당에서 공부를 배웠거든. 미성년자라 감옥살이 좀 하다가 나왔는데 옥룡초등학교 안에 가면 기념비가 있어요. 원래는 옥룡면사무소 앞에 있었는데 애들 교육시킨다고 옮겼어나성길님의 자제인 나희수(86) 어르신의 말씀으로 현재 옥룡초등학교 내에는 칠의사 삼일운동 기념비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삼정의 기가 흐르는 초암마을은 조선시대 문신 정3품 하계인 통훈대부를 비롯해 종2품 상계인 가의대부, 2품 하계 가선대부 등을 다수 배출했으며 근현대에는 교육 발전 유공으로 국민훈장 동백장, 황조근정 훈장 수상자들이 대거 나왔다.

생명에 대한 본능, ‘바이오 필리아를 충족시키는 웰니스 초암마을

이장님, 말할 것도 없이 좋지. 젊어노니까 무슨 일이든지 알아서 잘하시고 본받을 점도 많고. 우리 초암마을은 단합이 잘 돼요. 제사랄지 그런 것도 딴 마을에는 안 갈라먹거든. 근데 우리는 작년까지만 해도 갈라먹었어긍정에 찬 월애촌 서말순(77) 어르신의 말씀으로 일찍이 동갑계, 부녀계, 노인계, 상조계 등을 조직해 서로 상부상조하고 도탑게 친목을 도모해 온 마을답다.

제가 9년 간 이장을 하는 동안 20여 분이 돌아가셨어요. 1년에 평균 두 분 정도 돌아가셨죠. 원주민은 자꾸 줄고 외지에서 들어오신 분들이 30% 정도 돼요. 이제 연세가 많아 돌아가시면 점차 외지인들이 더 많아질 거예요. 그때는 오히려 화합이 더 잘 되겠죠초장마을에서 태어나 30여 년을 객지에서 살다 귀향해 높은 신망으로 9년째 이장직을 맡고 계신 나숭수 이장님의 소회다.

세봉암에서 계속 내려와요. 그걸 타고 계속 내려와요. 그래갖고 진등이라고 그러지높이 540m에 이르는 세봉암은 세 개의 큰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진등은 그 세봉암에서 장암마을과 초장마을 사이로 길게 내리뻗은 산등과 그 자락에 형성된 마을을 이른다.

칡넝쿨로 감긴 선바위
칡넝쿨로 감긴 선바위

인간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면 스트레스가 줄고 집중력이 향상되는데 이는 인간의 유전자에 생명에 대한 본능이 내재돼 있다는 바이오 필리아학설이 뒷받침한다. 초암마을은 마을 뒷산인 세봉암이 품은 다양한 생태와 끊임없이 흘러가는 생명의 동천을 내려다보는 배산임수의 명당이자 인간 정신에 깊숙이 박혀있는 녹색갈증, 바이오 필리아를 충족시키는 웰니스마을이다.

소중한 기억을 전해주신 마을 어르신들과 트럭까지 동원해 우거진 칡넝쿨을 헤쳐가며 따뜻하게 안내해 주신 이장님과 신명나게 베락바구, 선바구 이야기를 들려주신 홍성열님 등 초암마을 주민들은 문화유전자의 원형인 네버엔딩 스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생명력의 표상이자 강한 소프트파워다.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도 그렇다굴바구를 뒤덮고 있던 수풀과 선바구를 휘감아 오른 칡넝쿨 위로 루쉰의 소설 고향의 마지막 문장이 오버랩 되었다.

이회경 광양문화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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