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24

낯선 골목길 입구에 차를 세우고 일행과 점심을 먹으러 골목을 걸었다. 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때 스치듯 십여 미터 떨어진 맞은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와본 듯한데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다. 차로 식당에 오면서 전화 예약을 하려 했으나 그냥 와서 기다려야 한다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떠올라 서둘러 식당 입구로 눈길을 돌린다. 유리문에 붙여진 안내 문구가 눈에 띈다. “2인 이상 식사 가능합니다. (3인 이상 예약받습니다.) 양해 바랍니다그랬다. 혼밥은 안되고 3인부터 예약 가능이었다.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돈다. 춥고 몸도 허한듯한 늦가을이자 초겨울 날씨엔 몸도 녹이고 보신도 될듯한 추어탕 한 그릇 오늘 점심으로 선택한다.

임가네추어탕. 광영동 광영현대1차아파트 남쪽 맞은편 골목 안길에 위치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많은 식객 사이로 아직 남은 빈자리가 보인다. 자리부터 잡고 앉아 주변을 살피니 배식구 윗벽에 붙은 메뉴판에 크게 추어탕 만원이라고 쓰인 예사롭지 않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메뉴는 딱 한 가지 영업은 점심만 하는 추어탕 전문 식당이다. 그리고 출입문 안쪽 에어컨 옆에 자리한 또 다른 안내간판 하나. “마감. 재료가 소진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그렇다. 맛집의 향기가 난다. 그리고 또 하나. 가운데 벽에 붙은 커다란 액자의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 마음. 내 아들아 나는 오직 너 한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다...”로 시작되는 글을 천천히 읽어 보았다. 천천히 식당의 내부를 살필 수 있던 여유는 메뉴를 선택할 필요가 없고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옹기 반찬 그릇에 정갈하고 넉넉하게 반찬이 담겨 나왔다. 겉절이, 표고버섯들깨볶음, 가지볶음, 배추나물, 미역줄기무침, 호박나물, 감자채볶음, 멸치볶음, 연근샐러드, 우엉채조림이 나왔다. 무려 열 가지다. 때깔이 좋아 먹음직스럽다. 바로 입에 가져가고 싶지만, 사진을 남겨야 해서 참는다. 밥공기와 뚝배기에 담긴 추어탕이 나왔다. 그리고 추어탕에 취향껏 넣어 청양고추다짐과 제피, 후추를 적당히 가미한다. 자 이제 한 숟가락 떠볼까. 곱게 갈아 걸쭉한 국물과 시래기가 뜨끈하니 뱃속을 덥힌다. 밥을 반 공기 덜어 국에 말아 본격적 식사에 들어간다. 반찬 하나하나가 오감의 저항 없이 제각각의 맛으로 환대받으며 입속에서 부지런히 자신을 뽐낸다. 반찬은 골고루 입으로 뛰어들고 식당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나이 든 단골들은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사투리로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말 그대로 단조로운 식당 안을 사람들이 채우며 멋진 실내인테리어를 만들고 있었다. 맛있게 먹고 나니 뚝배기와 반찬 그릇은 깨끗이 비워졌고 부른 배 앞에 반 공기 남은 밥공기만 덩그러니 남았다.

바쁘신 사장님께 음식값을 계산하며 몇 마디 나누고 감사히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인상 깊은 한마디는 식당의 반찬은 그날그날 새벽에 만들어서 오래 두지 않고 낸다였고 나는 열 가지 반찬에 열 가지 맛 추어탕을 먹은 듯했다. 출입문을 나와서 골목을 바라보다 들어가며 들었던 익숙한 골목길의 기억이 떠올랐다. 김종철 국장님 댁 앞 골목이었다. 언젠가 몇 사람이 집에서 오래된 초기 보해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던 생각이나 잠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형은 편히 쉬고 있을까. 아마도 열심히 쓴소리하고 있을 텐데 내가 못 듣고 있겠지. 갑자기 쓸쓸함이 밀려왔다.

광양에서 밥 한 끼 해요. 이번 주는 광영동 임가네추어탕에서 추어탕에 맛있는 반찬 후하게 한 끼 대접받고 갑니다. 그나저나 다음 한 끼는 뭘 먹지?

글·사진=정은영 민주당 지역위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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