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연수 앞둔 정홍기 농업기술센터소장
도립미술관, 공공산후조리원 등 유치 주역
지게차, 산림산업기사 등 16개 자격증 부자

공로연수를 앞둔 정홍기 농업기술센터소장을 만나 그동안 공직생활에 관한 소회를 들었다. 옥곡면 백양마을이 고향인 정홍기 소장은 1991년 임용돼 현재까지 33년의 공직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고향인 옥곡면사무소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후 전라남도청 전입고사를 통해 도청에서 근무했으며, 2015년 다시 광양시청으로 복귀해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공직생활 중 정 소장은 시장‧군수표창 3회, 도지사표창 3회, 장관급기관장표창 4회, 대통령표창 1회, 기타포상 5회, 상장 1회 등을 수상할 만큼 지역사회 발전 기여와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정홍기 농업기술센터소장
정홍기 농업기술센터소장

Q.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창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는 않았지만, 개근과 학습 태도가 좋아 생활기록부에 좋은 점수를 받다 보니 성적보다 사람의 도리와 자세의 중요성이 크게와 닿아 윤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대 철학과에 진학했지만,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국립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예전 부친께서 면사무소를 자주 출입하면서 직원들을 부러워하셨던 것이 가슴에 맺혀 공무원의 길을 걷기 위해 반수를 통해 부산 동아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입학 후 부산의 지역 특성상 지역감정이 좋지 않아 군대를 지원해 가게 됐고 제대 후 학교를 다니며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 했지만 시골에서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졸업과 동시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게 됐다.

여수 교육공무원도 동시에 합격했지만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어 광양 행정직으로 지원해 부모님이 계신 옥곡면사무소에서 1991년 첫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Q. 공직생활은 어땠나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옥곡면사무소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행정직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 건설과로 전보되었고, 이때 토목직과 같은 기술직 직원들과 함께 근무해 공무원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광양군과 동광양시와 통합한 광양시 총무과 근무시 전라남도청 전입고사를 통해 1995년 전라남도로 전출하게 됐다. 아마도 전년도에 공무원 소양고사에서 1위를 한 것이 전입고사 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진 거로 생각한다.

전남도청에서는 농민교육원, 수산시험연구소, 체육청소년과, 기획관리실 기획관, 서울사무소, 관광개발‧정책과, 투자기획・개발과, 노인장애인과, 사회복지과, 동부출장소 등에서 근무를 했다. 

투자개발과에서 일할 때는 전남에서 관광개발 10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때 진도의 리조트 부지를 후보지로 선정한 것이 투자유치 활동결과물이다 지금은 예약이 어려울 만큼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도청에서 근무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데 2015년 인사교류 자리가 생겨 광양으로 다시 내려 올 수 있었다. 
광양시에서는 문화관광과장, 총무과장, 광양읍장, 산단녹지센터소장, 관광문화환경국장, 보건소장 등을 거쳤고 현재는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내년 공로연수에 들어갈 예정이다.

Q. 공직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성과는 
# 광양시로 돌아오자마자 도립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게 됐는데 여수, 순천 등 6개 시‧군에서 도립미술관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다.
당시에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선정 평가표가 여수 쪽에 많이 기운 상황이었고 판이 바뀌게 된 배경은 평소 흥분을 잘 안 하는데 도청 행정부지사 주재의 부단체장급들이 참석한 첫 회의에서 평가표를 보고 갑자기 얼굴이 빨개질 만큼 흥분을 해 손을 들고 이런 평가표면 광양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시‧군들도 다들 동조하며 평가 항목 기준표가 바뀌게 됐는데 이 정도면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원들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모신청서 작성, 현장 실사, 프리젠테이션까지 밤낮없이 준비하게 됐다. 선정위원회가 열리는 당일 현장 실사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을 첫 번째로 하게 됐다. 시간상 촉박한 일정이라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리젠테이션도 평소 발표를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다른 시‧ 군들이 과장급이 발표를 하기로 협의해 부담이 컸다. 그렇지만 프리젠테이션 장소가 동부지역본부 회의실이었다. 막상 서보니 예전에 동부출장소에서 관리팀장으로 근무하며 직접 회의실를 만들었던 곳이어서 고향에 온 듯 한 느낌을 받아 차분하게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결국 2015년 7월7일 최병길 입지선정평가 위원장이 도립미술관은 광양시로 결정됐다고 발표하자 그 자리에 동료직원들과 만세와 함께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 2022년에도 보건소장으로 8월 인사발령 직후 전라남도 공공산후조리원 공모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전라남도 공공산후조리원은 2015년 9월 1호점 개원을 시작으로 해남, 강진, 완도, 나주, 순천 등 5곳에 설치·운영되고 있으며, 저렴한 비용과 양질의 서비스로 산모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고 있어 광양시에 유치될 경우 전남에서 가장 젊은 도시 광양에 차별화된 고품격 전국 최고의 공공산후조리원을 건립해,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고 모성 보호와 저출생 문제 해소 등 시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10월 26일 전남도는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입지 적합성, 사업추진 의지, 사업계획 적정성, 접근성, 특화프로그램 영역을 심사해 광양시 미래여성의원이 최고 득점으로 우선 사업대상자로 선정됐다. 총사업비 126억원(도비 40억, 시비 60억, 민자 26억)을 투입해 중마동 미래여성의원 인근 부지에 지상 4층 연면적 2,409㎡ 규모로 조성하게 됐다.

# 공직생활을 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3일 연속 받는 일도 있었다. 2017년 12월 20일 전국 최초 광영동 법사랑타운 조성으로 법질서 유공 대통령 기관 표창을 받았으며, 12월 21일 통계조사 및 국가사회발전 유공으로 대통령 포상, 12월 22일 공무원 노사문화 최우수행정기관 대통령상을 받게 됐다. 2개는 기관 표창 이지만 3일 연속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돼 기쁜 기억으로 남고 있다.

Q. 보유한 자격증이 다양한데 이유는 
도청 사회복지과, 노인장애인과에 근무해 사회복지업무에 관심이 많아 사회복지사2급, 이어 시간이 흐른 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1급 자격을 취득했다.
이어 산단녹지센터소장, 관광문화환경국장, 보건소장,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근무하며 업무 외적인 시간을 자격증 취득에 사용했고,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은 다 따려 했다.
그래서 소방안전관리자 2급, 굴착기운전기능사, 버섯종균기능사, 산림기능사, 산림산업기사, 유기농업기능사, 조경기능사, 종자기능사, 지게차운전기능사, 축산기능사, 환경기능사 등 1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문도 없는 시골집에서 살다 보니 머라 할 사람도 없고 유튜브 방송 등을 틀어 놓고 자격증취득 공부를 취미로 했다.

Q. 앞으로 계획은
2014년부터 부모님하고 같이 살았었고 어머니는 이제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단둘이 시골에서 살고 있다. 지금도 매일 출근을 아버지와 함께 하는데 물리치료를 받고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시고 오신다.
보통 국장 퇴직 후에는 유관기관이나 관련 분야로 진로를 찾는데 퇴직 후에는 아버지가 건강은 하시지만 혼자 둘 수 없어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

Q. 후배 공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면 비슷한 결과를 얻는다. 이왕 하는 일이면 조금 더 잘해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법사랑타운 조성도 전국 첫 사례인데 작은 소도시에서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졌다면 흐지부지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조금 더 잘해 보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전국 최초로 선정됐다. 

또한 광양시가 2015 전남 관광대상평가 대상을 받은 것도 제자리에 머물며 남들 하는 만큼만 해 냈으면 관광 분야에 불모지인 광양시가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광양읍장으로 근무할 때까지는 일일이 언론사에 연락을 통해 하나라도 홍보 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지역 사회단체들도 읍사무소에서 기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지역 네트워크와 행정 소통이 강화되는 계기가 돼 적극적인 소통행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라남도 읍면동 행정평가에서 광양읍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운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스스로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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