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건대산봉수 학술심포지엄 개최
국내 최고의 봉수 전문가 참가
민간단체 주최·주관 봉수 학술심포지엄

광양시민신문이 주최하고 광양지역연구회 마로희양이 주관한 광양 건대산봉수 학술심포지엄이 지난 23일 골약동 주민자치센터 다목적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성웅 전 시장과 서동용 국회의원, 박경미 도의원, 김정임·정회기·김보라 시의원, 김재무 전 전남도의회 의장, 박필순 전 도의원, 김휘석 전 광양문화원장, 이치호 골약동 발전협의회장을 비롯한 골약동 사회단체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2013년에 설치된 메탈아트봉수가 있는 구봉산 전망대는 조선시대에 건대산 봉수대가 위치했던 곳이다.

이번 학술심포지엄에서는 국내 봉수 박사 3명 중 2호 김주홍 박사가 한국의 봉수를 주제로, 3호 홍성우 박사가 조선시대 제5로 봉수를 주제로, 이은철 광양지역사연구회 마로희양 대표가 광양 건대산봉수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 2005년 건대산봉수 시굴조사의 책임연구원이었던 마한문화연구원 조근우 원장이 좌장을 맡아 종합 토론을 벌였다.

김주홍 박사는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수단으로 고대 삼국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발전해 오다 고종 32년 각처 봉대와 봉수군이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봉수의 종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던 중앙 봉수인 경성 목멱산 봉수연변봉수와 서울봉수를 연결하는 육지 내륙지역 소재 봉수인 내지봉수국경과 해안가 및 도서 등 극변 초면에 설봉돼 연대(煙臺)로도 지칭되는 연변봉수서울 봉수로 연결되지 않고 읍()과 수군진에만 알리던 봉수 권설봉수등이 있었다.

홍성우 박사는 조선 후기 제5로 직봉 노선은 여수 돌산도 봉수에서 출발해 서울 남산(목멱산)봉수에 이르는 노선으로 모두 62개의 봉수로 구성돼 있었으며, 이는 조선 전 기간 동안 구간별 치폐(置廢)와 이설()을 통해 몇 차례의 변동 과정을 거쳐 최종 정립된 봉수망이라고 밝혔다.

5로 노선의 전체 봉수는 86개소이고 이중 직봉은 62개소, 간봉(1) 9개소, 간봉(2) 12개소, 간봉(3) 3개소가 각 노선상에 분포하고 있으며, 직봉 62개소 중 연변봉수는 53개소, 내지봉수는 9개소로 연변봉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광양 건대산봉수는 5로 봉수의 간봉에 해당한다. 5로가 초기하는 순천 돌산도봉수순천 진례산봉수광양 건대산봉수순천 성황당봉수순천 본읍으로 전달이 이뤄졌으며, 광양 건대산봉수는 전라좌수사의 소관하에 운영됐다.

각 군현에는 봉수를 전담 관리하는 조직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광양현

에는 봉수청(烽燧廳)이 설치됐다. 광양현에는 건대산 봉수 1곳이 있었다. 광양현에는 봉수군 63명과 별장 16인이 있어서 매삭(每朔) 별장 1, 봉군 5명이 봉수에 입직했다.

건대산봉수는 사곡면에 창고 1개가 있고 춘추(春秋) 2번 봉수군을 봉수대(燧臺)에서 취점(聚點)하였고 대직가사(臺直家舍)와 집물고사(什物庫舍)를 수리케 했다.

홍성우 박사는 건대산봉수 시굴 조사 결과 유물은 15세기대의 분청사기편 1점과 17~18세기에 해당하는 백자편 4점이 수습됐다. 이는 건대산봉수가 조선시대에 활발하게 사용된 것임을 입증해 주는 것으로 문헌 기록의 조선 전기~후기까지 운영됐다는 사실과도 일치하는 결과라며 그러나 유물에서 기와가 없는 점은 의문인데, 이는 이곳에 기와 가옥이 없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건대산봉수에 있었던 봉대직가(烽臺直家), 대직가사(臺直家舍), 집물고사(什物庫舍)는 봉수대 정상보 다 더 아래쪽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철 대표는 음청일기, 고문헌, 고지도를 통해 광양의 건대산봉수를 살펴보았다.

이 대표는 이번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의 모든 문헌과 지도에서는 광양의 봉수를 건대산봉수라고 기록하고 있었고, 일제강점기 대정 7년 지도에 처음으로 구봉화산과 봉화산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이에 따라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구봉산과 봉화산 지명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부터였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더불어 건대산봉수의 위치는 현재의 구봉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고문헌과 고지도에 나오는 건대산봉수와 구봉산에 현재 남아 있는 봉수 유적이 일치하고, 임시시설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봉화산봉수를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사용한 건대산봉수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봉수 유적은 단독유산이 아닌 서로 대응되는 연속유산으로 주목을 받는 가운데, 연속유산을 넘어 연결 유산으로서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봉수는 개별 유적으로 존재할 때는 큰 의미가 없다. 대응 봉수와의 연결이 완성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광양에 사는 우리가 지역의 봉수를 잘 보존하지 못해 그 연결을 끊어버리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구봉산 전망대 홍보관에 봉수 전시실 마련 제안

종합 토론에선 봉수에 대한 의문 해소와 함께 건대산 위치에 대한 이견이 나오기도 했다.

또 최근 광양지역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구봉산 전망대의 메탈아트봉수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곳에 철구조물을 세우는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홍성우 박사는 현 구조물은 그대로 두고 홍보관 내에는 그 당시에 봉수 모습을 다양하게 알 수 있는 사진 자료나 고서, 고지도 등을 전시하고, 야외에서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같이 비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이와 함께 정밀 지표 조사와 함께 봉대직가를 찾아내는 일에 다 함께 노력해 전체적으로 봉수대 위치와 봉수군이 생활했던 곳 등을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은철 대표는 봉수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위급한 변방의 상황을 중앙에 알리는 역할보다 평안함을 알리는 평안화의 기능이 훨씬 더 컸다. 지금 구봉산 전망대 메탈아트 봉수는 그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구봉산 전망대 홍보관을 봉수 박물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봉수 전시실로 바꾸는 계기가 오늘부터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민간단체만의 참여로 이루어져 더욱 의미를 더하고 있다건대산봉수가 위치하고 있는 골약동 주민들로 구성된 골약동발전협의회·주민자치위원회·체육회의 후원 단체 참여와 광양시해군전우회·광양문화지기·광양참교육학부모회의 동참, 학술심포지엄에 드는 비용을 후원한 익명의 기부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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