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마로(馬老)에서 광양으로 바뀐 지명

집안의 곳곳에도 이름이 다르고 거기에 맞는 역할과 상징이 있다. 안방에는 조상신, 마루에는 성주신,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다. 보통 제사를 조상에게 안방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마루에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집안의 운수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므로, 이를 보호하는 성주신에게 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루는 집안의 우두머리인 가장을 상징하고, 아버지를 보호해 달라는 의미로 제를 지내는 것이다. 집안의 가장 높은 아버지가 병들면 집안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광양의 중심지가 마로이듯이, 집안의 우두머리인 가장을 상징하는 곳이 마루이다. 마루에 해당하는 대주(大主)는 가족의 대표이자, 이것을 상징하는 성주신은 가신(家神) 신앙의 대표하는 신이다.

광양의 옛 지명 마로라는 명칭은 신라 경덕왕 16년 서기 757년에 희양현(晞陽縣)으로 개칭된다. 많은 사람은 희양(晞陽)이라는 명칭을 는 밝을 희, 은 볕 양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은철 대표는 자를 밝을 희로 볼 것이 아니라 마를 희로 뜻을 빌어 온 훈차로 해석한다. 또한 의 해석은 물의 북쪽에 있다는 지명의 의미를 첨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마를마로와 비슷한 음으로 읽혔을[훈독(訓讀)] 것이고, 이가 한자식으로 지명이 적힘에 따라 희양현(晞陽縣)이 되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밝고 따뜻한 고을보다는 관청이 있었던 높은 고을의 의미가 한자식 지명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희양(晞陽)이라는 일반적 의미가 많이 쓰이다 보니 마로를 훈차한 희양이 언중들로부터 세력을 얻고 晞陽의 훈독인 마로는 원래의 의미가 희미해져 버렸다. 晞陽은 아마도 마로로 훈독하다가 한자음으로 읽는 방식이 고착되다 보니 희양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에 마로를 훈독했었던 희양(晞陽)을 한자음으로 읽고, 다시 같은 의미인 을 훈차하여 광양(光陽)으로 바뀐 후, 광양(光陽)이라는 지명이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망덕과 배알도를 연결하는 ‘별 헤는 다리’
망덕과 배알도를 연결하는 ‘별 헤는 다리’

작명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별 헤는 다리

지금까지 광양의 옛 지명인 마로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에 언급한 광양의 지명 이야기와 전혀 다른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 지역의 명소에 대한 이 시대의 작명이기에 공시성과 통시성을 다 갖고 있다. 최근에 광양의 명소인 별 헤는 다리의 작명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광양시는 섬진강 망덕 포구와 백두대간 종점 관광 명소화 사업 일환으로 해상보도교의 명칭을 시민 참여 (공모) 방식으로 확정했다. 망덕포구에서 배알도까지의 제1다리는 별 헤는 다리이고, 배알도에서 근린공원까지의 제2다리는 해맞이 다리이다. 망덕 포구의 정병욱 가옥에서 보존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별빛 감성을 담았고, 빛과 볕의 도시 광양의 무한 발전 가능성을 상징하는 태양과 일출 경관을 자랑하는 장소성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보도 자료를 냈다.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통해 사물이나 대상을 구분한다. 맨 처음 어떤 이름이 생겨났을 때는 음성(형식)과 내용(의미)이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맺어진 것이 아니라 자의적(恣意的)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이름이 부여됨[命名(명명)]으로써 우리 사회는 그 사물이나 대상[또는 세계]이 어떤 특정한 속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또 지은 이름을 관습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머리에는 그 이름에 대한 정체성이 자리 잡게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시가 김춘수의 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보통 시를 이야기할 때 어떤 대상을 보고 느낀 정서를 압축적인 언어로 형상화한 서정 갈래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시는 그러한 류의 시가 아니고 존재의 인식 과정을 보여주는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시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꽃은 꽃밭에 흔한 꽃이 아니다. 존재론적이고 추상적 개념으로 ‘(의미 있는) 존재에 해당한다. 우리는 어떤 일과 사물의 세계를 항상 접하고 산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나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머리에 인식하기 이전에는 알지 못하는 존재이었다가, 김춘수의 의 시구처럼 이름 부르기[呼名(호명)]’를 통해 그 사물은 나에게로 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이름 부르기를 통해 존재간의 상호작용이 이뤄지고, 존재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이름 부르기는 매우 중요하다.

조선시대의 유교 사회에서도 이름이 집안에서 본인의 위치를 결정해 준다. 돌림자를 써서 옛날에는 할아버지 항렬인지, 조카뻘인지 각 문중의 항렬자를 정해 각 문중의 위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 옛날에는 서양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이 강했다. 사람도 산줄기와 강줄기에 따라 기운을 받고 이에 동화되기 때문에 풍수지리를 반영한 성격의 지명을 갖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작명 방법도 많이 변화되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여자 이름을 일본식으로 자()를 넣어 지었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빛깔과 향기를 담고 있는데 일제의 영향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렸다. 광양시는 망덕에서 배알도로 연결하는 다리를 놓고 그 명칭을 시민 공모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광양에서 평생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교편을 잡으셨던 임 모 선생님께서 응모하신 이름으로 결정됐다.

망덕과 배알도를 연결하는 ‘별 헤는 다리’
망덕과 배알도를 연결하는 ‘별 헤는 다리’

센스있는 작명 문탠로드

최근 센스있는 작명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곳이 있다. 부산 해운대에는 예전에 동해남부선이 다니는 철길이 있었다. 바로 그 위로는 해운대 쪽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오솔길이 있다. 특히 보름달이 떠서 동해 바다의 물결과 어울려지면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휘영청 밝게 뜬 보름달이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에 반사되는 모습은 한편의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을 달맞이 고개라 부른다. 그런데 언젠가 사람들의 입에서 문탠로드로 회자(膾炙)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너도나도 어딘가 궁금증이 더해져서 찾아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까지 모여들기 시작하자 이곳이 핫플레이스(hot place)가 되었다.

00일보에 최장수 칼럼을 쓰는 강호동양학자인 000교수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을 거창하게 짓거나 무슨 철학을 담아낸 것이 아니고 시대에 맞게 달맞이 고개를 영역(英譯)한 것에 불과하다. 부산 해운대구청은 문탠로드로 지은 이름의 덕을 톡톡하게 보고 있으니 000교수에게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별 헤는 다리! 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막힌 이름인가? 우리 주위에는 가게나 건물 명칭으로 한문식 작명이 널리 퍼져 있다. 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쉽게 부를 수 있고 기억되기에 우선 좋다. 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전지구적인 이슈인 생태환경적인 이름이어서 더욱 좋다. 더 창의성을 높이 사야 할 것은 망덕 마을 정병욱 교수의 가옥에서 연희전문학교 동창인 우리나라 민족 저항시인 중 한 분인 윤동주의 유고 시집을 만들 원고가 보존된 역사적 공간이라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서 더욱 좋다. ‘별 헤는 다리로 작명하신 임선생님께 광양시는 사소한 선물을 넘어서서 덤으로 작명비를 다시 계산해 드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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