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신 국사편찬위원회 광양시사료조사위원

안영신 국사편찬위원회 광양시사료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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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봉수에 대해 2개월 전 메탈봉수대 이설에 대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이번에 또 봉수건대산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며칠 전에 무슨 기사를 찾고자 구독하고 있는 광양시민신문 20231226일 자 정밀 지표 조사, 봉대직가 찾아내는 일 숙제란 제하의 글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펜을 들었다.

글을 쓰신 광양역사연구회 마로희양이은철 대표는 광양 봉수에 있어 깊은 관심과 연구 활동을 통해 많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 번의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광양시민에게 봉수에 관한 역사의식을 고취 시킨 것에 대하여 기여를 한 분으로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바다.

그런데 건대산의 위치에 관한 기록이 필자가 생각하는 바와 차이가 있어 이 대표가 광양 건대산 봉수에 있어 강연한 학술교재 가운데 필자가 소지한 책을 살펴보았다. 먼저 맨 처음 2021426일 창립기념 특강 시 구봉산 봉수에서 바라본 광양의 날씨는라는 교재로 강의하고, 두 번째로는 광양지역사연구회 마로희양가을 특강으로 광양 건대산봉수 연구란 교재로 하고, 세 번째로는 20231223광양 건대산봉수 학술심포지움교재로 강연을 한 바 있다. 이 세 차례의 교재 첫째 p6, 둘째 p5, 셋째 p56을 보면 똑같은 내용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건대산 봉수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1452),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증보문헌(1903-6)를 비롯한 많은 조선시대 지지류에서 확인된다. 현재 광양에는 건대산 봉수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구봉산 전망대가 있는 구봉산(성황동228-2)이며, 다른 하나는 구봉산의 서북쪽 1.6km 지점에 있는 봉화산(광양읍 사곡리)이다. 학계에서는 봉수대와 관련한 유구의 흔적이 구봉산에만 남아 있어, 구봉산을 건대산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를 세 차례의 교재마다 똑같은 기록으로 구봉산을 건대산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구봉산이 건대산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유구의 흔적이 구봉산에만 남아 있다.”라 했는데 이 부분의 기록은 오기(誤記)로 보인다. 봉화산에도 그 흔적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위 정황으로 보아 구봉산의 산마루 정상이 봉화산보다 조금 넓은 편이라서 건대산일 것이라는 추측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231226일 기사에 의하면, 이 대표는 이번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의 모든 문헌과 지도에서 광양의 봉수를 건대산 봉수라고 기록하고 있었고, 일제강점기인 대정 7년 지도에 처음으로 구봉산과 봉화산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이에 따라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구봉산과 봉화산 지명의 기원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더불어 건대산 봉수의 위치는 구봉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라고 했다.

여기서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바는 더불어 건대산 봉수의 위치는 구봉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라고 한 부분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필자가 소지한 고문헌인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지지류인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고사신서, 광양현읍지, 대동여지지, 호남읍지1차 광양, 호남읍지2차 광양, 광양군읍지, 증보문헌비고등 어디에도 구봉산이 건대산이라는 기록이 없다.

또한, 고지도도 보면 많은 관찬(官撰) 지도와 달리 조선 후기에 개인이 꼼꼼하게 산을 보고 그린 김정호의 동여도대동여지도를 보면 자세하게 봉화건대산이 남쪽 육지 끝이며 바다를 접하는 초남 뒷산에 있다. 나아가 광양지역사서(史書) 책자 일제강점기 이후 발간된 조선지지(광양:1911)를 비롯 광양시지(2005)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소지하고 있는 9권의 책을 살펴보면 구봉산이 건대산이란 기록보다는 봉화산이 건대산이라는 기록이 훨씬 더 많이 가깝게 등재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전남편1 p309 골약면편 기록에 의하면 봉화-(烽火山) 골약면 황금리 황방과 광양읍 사곡리 점동의 경계에 있는 산, 주봉인 구봉산은 골약면에 있음. 높이 472m.”p324 광양읍편 봉화산 초남 선창 동북쪽에 있는 산, 옛날 봉화를 놓았음.” 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더불어 건대산 봉수의 위치는 구봉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라고 이대표가 주장한 기록은 아닌 것 같으며 좀 더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 고문헌이나 고지도에도 건대산봉수와 관련된 사곡면 기록이 나타난 문헌을 살펴보면 1872년 광양현지도에 기록된 글자(沙谷面 건대산봉수 자관십팔리~) 광양현각소사례책(건대산봉수일고재 沙谷面 춘추~) 호남지도(건대산 갑자경향 사방 沙谷面~) 광양군읍지(건대산봉수 재 沙谷面 今폐지~)라는 기록은 봉화산을 건대산으로 하는 기록이며, 또한 만약 구봉산이 건대산일 경우 골약면에도 위와 같은 기록이 많이 나타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골약면 기록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 5년 전 어느 가을날 필자와 전 광양시지편찬 상임위원 김광호 선생과 둘이서 광양 봉수건대산 위치를 확인코자 순천대학교 박물관장으로 계시던 최인선 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이때 김광호 씨가 광양 봉수건대산에 대하여 질문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김광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곳 점동마을입니다. 자라면서 건대산의 명칭과 정상에 있는 유구, 직가 위치 등을 구전 얘기를 들어 잘 알고 있으며, 한편 광양 봉수건대산으로 보이는 곳이 사곡 봉화산입니다. 조선 지지류나 고지도 그 이후 일제강점기 이후에 발간된 지역(광양)사서 기록에 의하면 봉화산이 건대산인데 교수님은 구봉산이 건대산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문헌이나 기록을 본 책이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라고 하니 즉답을 피하면서 하는 말이 정확한 규명을 하려면 발굴조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만 이야기했다.(그때 불교 서적 범우고(梵宇攷) 책을 빌려와 보고 돌려 드렸다.) 그러므로 최교수 역시 구봉산이 건대산이라는 기록이 있는 책(문헌)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교수도 발굴조사나 지표조사를 통해야 만이 확인될 것이라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이은철 대표는 어떤 문헌을 보고 구봉산이 건대산이라고 확인이 되었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런 부분은 우리시의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사항으로 개인적인 생각으로 판단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만약 구봉산이 건대산이라는 뚜렷한 기록이 있는 사서(史書)가 있다면 별문제가 없다 할 것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 구봉산이나 봉화산이나 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광양시에서 지표조사나 발굴조사를 통해 광양 봉수건대산으로 확인이 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봉화산(사곡 점동마을 뒷산)
봉화산(사곡 점동마을 뒷산)

또한 구봉산 안내판에 구봉산 유래기록을 보면, 구봉산(해발 473m)은 골약동 황금리 뒷산 이름이다. 황길동 하포를 중심으로 컨테이너부두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용이 꿈틀거리거나 배가 대양을 향해 출발하는 모습이다. 본디 이름은 건대산(件臺山) 또는 천태산(舛台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194년 산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면서 봉화산으로 불리기 시작한 뒤 봉수대가 초남마을 뒷산으로 옮겨가면서 구봉산이 되었다. 이후 구봉산이라는 명칭이 주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이름인 구봉산과 다르고(광양시지)나 골약초등학교 교가 등에 구봉산으로 불리는 점을 들어 광양시에서 지명 변경을 요구해 2011년 구봉산으로 바뀌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보면 본디 이름은 건대산(件臺山) 또는 천태산(舛台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라고 하는데 이는 구봉산이 건대산이라는 기록이 없는데도 이런 미심쩍은 기록은 시민들에게 혼동을 주는 기록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안내문을 기록할 때는 관계되는 문헌을 찾아보고 심사숙고하여 정확한 내용을 등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충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으로 이런 잘못된 기록은 지워야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광양에 봉화에 관한 시문을 찾아보니 사곡에 본정이 호재팔경(本亭而 乎齋八景)’과 초남마을에 전해져 오는 마을 전래 향가란 글들을 보았다. 희양문헌집1권에 보면 송여(松余) 정용구(鄭容球) 공이 지은 본정이 호재팔경(本亭而 乎齋八景)”에 두 번째로 봉대석조(烽臺夕照)’ 시구가 있으며 초남의 마을 전래 향가를 보면, “봉화산 등에 지고 돋아난 초남/ 명산 백운산의 명수(明水)도 앞으로 흐르네./ 물줄기 따라서 남쪽으로 향한 어부의 배 언제 돌아오나!/ 뱃머리 기다리는 가슴 부푼 부녀들이라는 기록이 한 곳은 초남이며, 다른 한 곳은 사곡 점동마을이다. 이상으로 광양 봉수건대산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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