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광양향교에서 간행한 희양문헌집(曦陽文獻集)

희양은 광양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기 전의 명칭이다. 1938희양문헌집(曦陽文獻集)이라는 제목의 시문선집이 간행된다. 발간한 곳은 광양향교였다. 특이한 것은 1925광양군지가 발행됐는데, 이 책 역시 다른 지역의 지리지와 달리 지방 유림의 중심인 향교가 지리지의 발간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 책 또한 나라 잃은 슬픔을 담아 광양 유림들이 가진 우국충절 의식을 반영해 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우리 지역과 관계된 시문을 모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희양문헌집(曦陽文獻集)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기에 전문을 인용한다.

희양은 광양의 옛이름이다. 원집과 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광양 출신 인물의 시문을 모은 것이고, 별집은 광양에 관계된 타지 인물의 시문을 수록한 것이다. 문체별·시대별로 편집했다.

박종모(朴鍾模조양제(趙陽濟) 등이 편집하고 박종범(朴鍾凡)이 출자해 1938년 광양향교에서 간행했다. 권두에 군수 손종권(孫宗權)과 정재화(鄭在和)의 서문, 권말에 박인규(朴仁圭)와 김현주(金鉉周)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은 44. 신연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단국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으로는 권1에 시 546, () 16, () 1, 2에 기() 69, () 49, () 13, () 8, () 5, () 1, () 2, () 3, 3에 비문 74, 행장 24, 사적 7, 제문 23, 4에 잡저로 상량문 12, 자경편(自警篇자성편(自省篇) 1, () 10, 계서류(戒書類) 3, 공가문(公家文) 3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소 1편은 결편이다.

시에는 고려 김황원(金黃元)의 유시(遺詩) 요사지설내연구호(遼使至設內宴口號)·등평양연광정(登平壤練光亭)등이 실려 있다. “긴 성 한쪽엔 강물이 넘실넘실/ 넓은 들판 동쪽엔 산들이 가뭇가뭇.(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이라 짓고는 다음 시구가 나오지 않아 통곡하며 연광정을 내려왔다는 고사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밖에 호남삼걸(湖南三傑)의 한 사람인 최산두(崔山斗)8세작인 영우(詠牛)사마연(司馬宴)·제물염정(題勿染亭), 이준(李浚)산성제야(山城除夜)·제귀거래정(題歸去來亭)등 광양 주변의 산성·누각·정자 등을 읊은 작품이 실려 있다.

()에는 최산두의 여안순지(與安順之), 황현(黃玹)여이난곡서(與李蘭谷書)등이 있고, 비문에는 황원(黃瑗)송태공묘지(宋太公墓誌)등이 있다. 행장과 사적은 여러 가지 업적으로 칭도(稱道)된 인물에 대한 기록으로, 4 끝에 있는 열녀의 숨겨진 이야기와 함께 향토 인물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기에는 이건방(李建芳)영모재기(永慕齋記), 송환기(宋煥箕)반구정기(伴鷗亭記), 황현의 거연정기(居然亭記)등이 실려 있어 광양 지방의 누각이나 정자·재실 등의 연혁을 알 수 있다. ···찬 등도 한말의 한문학과 지방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광양 김황원과 대동강가의 연광정(練光亭)

김황원(金黃元, 1045~1117)은 고려전기 예부시랑,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시인이다. 본관은 광양이다. 자는 천민(天民),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郎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냈다. 학문에 힘써 고시(古詩)로 이름을 떨쳐 해동 제일이라는 일컬음을 받았다고 하며, 청직하여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다. 김황원이 한림원에 있을 때에 요나라의 사신을 시로써 맞아 존경을 받았다. 그는 문명 때문에 재상 이자위(李子威)의 시기를 받아 한때 파직을 당했다. 후에 선종에게 이름이 알려져 좌습유(左拾遺지제고(知制誥)에 기용됐다. 이어서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星州))를 다스려 치적을 쌓았다.

김황원은 예종 때에는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요나라에 가는 길에 대기근이 있는 북부지방에서 주군(州郡)의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했다. 귀국 후에 예부시랑·국자좨주(國子祭酒한림학사·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를 역임하고 나서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관직을 내놓고 물러남) 하였다. 한편 고려사97 김황원열전에 의하면, 김황원은 힘써 고문(古文)을 배워 해동제일(海東第一)’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이궤(李軌)와 함께 한림직에 있으면서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고 하였다.

희양문헌집에 광양현 출신의 김황원이 쓴 등평양연광정(登平壤練光亭)이 실려 있는데, 이 시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김황원(金黃元)이 연광정에 올라 종일토록 깊이 생각했으나, 다음 시구가 생각나지 않아 통곡하고 미완성의 시를 남겼다고 전한다.

긴 성 한쪽엔 강물이 넘실넘실
넓은 들판 동쪽엔 산들이 가뭇가뭇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이는 희양문헌집(曦陽文獻集)뿐만 아니라 많은 문헌에 소개되어 나온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기에 다음 시구를 이을 수 없었을까?

연광정은 어떤 곳인가? 평양 대동강(大同江)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강으로, 여러 물이 모여서 돌아 흐르므로 명칭이 생겼다고 하는데, 과거 열수(洌水), 패수(浿水) 또는 패강(浿江), 왕성강(王城江)이라고 불렸다. 하류에는 평양시가 위치하고, 강 유역에는 고구려 유적지가 많다. , 대동강의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어울려 누정은 부벽루와 연광정, ()는 을밀대, ()은 대동문(大同門) 등과 어울려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또한, 한강의 여의도처럼 여기도 능라도(綾羅島양각도(羊角島봉래도(蓬萊島) 등의 하중도가 있다.

이 시는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독자들 수준에 맞게 윤문이 잘 되었다.

평양성을 끼고 흐르는 강물,
! 넓기도 하여라.
강 건너 멀리 아득한 벌판 동쪽에는
점 찍은 듯 까맣게 산, , …….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쉽게 표현하기 위해 한시의 원문(原文)을 살리지 못한 아쉬운 점도 있지만, 초등학생들의 상상력을 더해 참여할 수 있으므로 좋은 학습 자료가 될 만도 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완성된 김황원의 시

미완성 시가 독자에게 흥미와 호기심를 유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틀림없다. 누구든지 시작(詩作)에 참여해 본인이 결말을 짓고 싶을 것이다. 그 후 이 시를 이어서 쓴 사람이 없었는데, 순조 때에 판서 극옹(屐翁) 이만수(李晩秀, 1752~1820)와 판서 담녕(澹寧) 홍의호(洪義浩, 1758~1826), 정승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1774~1842)가 이어쓰기를 하였다. 김황원이 쓴 두련(頭聯) 뒷부분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채운 것이다. 결국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후대의 각기 다른 세 시인이 참여했고, 한 편의 7언 율시가 완성되어 정자의 현판에 걸리게 되었다고 한다.

긴 성벽 기슭으로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넓은 벌 동쪽에는 겹겹이 산이 있네.(김황원)

수많은 집과 누각들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사시장철 노래와 풍악 소리가 명월을 안고 도네.(이만수)

강 위에 서린 안개 바람은 끝이 없고,
옛사람의 글귀는 시공을 넘나누나.(홍의호)

천년을 지나도 황학은 돌아오지 않고
돌아보니 눈가에 백운만(상류의 항만)의 지는 해만 걸리는구나.(홍석주)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김황원)

萬戶樓臺天畔起
四時歌吹月中還(이만수)

風煙不盡江湖上
詩句長留宇宙間(홍의호)

黃鶴千年人不見
夕陽回首白雲灣(홍석주)

다음으로 한 편의 시를 더 소개할까 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귀래정유고(歸來亭遺稿, 청구기호 : 3648-62-254-134)에 인조 18년인 1640년에 귀래공 이준이 62세 때 연광정(練光亭)에서 지은 시가 31면에 나온다.

수많은 형상을 말로 다 나타내기 어려워
해질 무렵 가을산이 정말 아름답구나.

萬象言難盡
秋山日夕佳

계절적 배경은 가을이고, 시간적 배경은 황혼 무렵이다.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대동강가의 명랑(明朗)하고 수려한 경치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절경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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