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약동 도이마을


도이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 골약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골약면 지역에 속하였다.

1789년경에는 광양현 칠골약면 한식동 지역이었으며 1872년 왕명으로 제작된 광양현 지도에 도이리로 표기되어 있어 현재의 마을이름이 처음으로 문헌상에 나타났다.

1912년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이전에는 광양군 골약면 도이리였고, 1914년 골약면 대화리·도이리·지동리·대근리 지역이 병합돼 골약면 도이리에 속하였다.

1986년 1월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의 골약면 도이리(법정리)에 속해 행정리상 도이리 지역이었고 1989년 1월 행정구역상 동광양시 성화동 지역이 되었으며 현재 도이동에 속해 행정구역상 골약동 제10통 지역으로 도이라고 한다.

도이마을은 1650년쯤 경남 의령에서 담양 전씨가 처음 입촌했다고 전하는 설과 김해 김씨가 처음 입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나 어느 때 누가 먼저 입촌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도이마을은 '원도리', '용수골', '먹방골'로 이뤄졌는데 '윈도리' 즉 도이의 원뿌리는 옛날 이 마을 앞에 둥글고 작은 산이 있어 바다가 썰물일 때 바닷물이 이곳을 돌아가는 위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리미' 또는 '돌아티'라 부른 것에 연유돼 이곳 마을을 '도리'라 한 것인데 뒤에 풍수지리설이 가미돼 이곳 지형이 도화이화만개형인데서 착안해 한문식으로 지명을 도이라 했으며 도이평에는 도화낙지의 명당이 있다.

'용수골'은 옛날 이곳에 용소가 있어 불리워진 마을이름이며 '먹방골'은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란 뜻을 지녔다고 한다.

도이마을은 구한말부터 1914년까지 골약면사무소와 주재소가 있어 골약면의 행정중심지가 됐는데 하포항이 개항(1912년)되고 하포에 시장이 개설됨에 따라 골약면사무소, 주제소가 하포로 옮겨갔다.

1950년대까지는 이 마을 가마등에서 소금이 많이 생산돼 옥곡·진상·하동방면으로 공급했는데 그 이후 생산은 그치고 가마등도 농토로 변했다.

1972년 동네계가 있어 부모사망 시 서로 상부상조해 장례를 치렀으며 1965년 청년계가 조직돼 친목도모와 흉길사시 서로 도왔으나 1980년대 중반에 사라지고 현재는 대화마을 주민과 함께 위친계가 조직돼 주민들 간에 상부상조하고 있다.


▲ 김호일 도이마을 이장
“한 가족처럼 사는 정 두터운 동네”


도이마을 김호일 이장은 “우리마을은 외부인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부터 한 지역에서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이라 가족같이 정이 두터우며 마을 주민간의 사이가 좋다”며 "동네어르신들이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다”고 말했다.

또 “청년회조직이 활성화 돼 동네 어르신들에게 너무 잘 한다”며 “매년 경로잔치를 열어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농번기 때 바쁜 일손도 도와주는 등 봉사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장은 “성황·도이지구가 개발이 된다. 어려서부터 살던 마을이 개발돼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한편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에 괜찮을 것 같다”며 "다만 개발이 되면 어르신들이 갈 데가 없다. 시에서 작은 서민 임대아파트라도 하나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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