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옹불암(舞翁佛岩)

삼명육통(三明六通)과 삼통(三通)

과연 인간은 차원이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영적인 축()을 가진 사람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들은 공부를 하든, 명상을 하든,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되든, 모두 신안(神眼)을 갖게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색()과 공()의 세계를 넘나들 수 없지만, 이들은 색()과 공()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능력을 불가에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이라 한다. 석가와 아라한(阿羅漢)이 최초의 깨달음에 도달할 때 얻었다는 3가지 초인적 지혜와 6가지 신통력을 말한다.

자유로이 원하는 곳에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자기와 다른 사람의 미래 운명과 상태를 아는 천안통(天眼通)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자기와 다른 사람의 과거세의 운명·상태를 아는 숙명통(宿命通) 현세의 번뇌를 모두 끊고 깨달음에 이르는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이 중 천안통의 지혜인 천안명, 숙명통의 지혜인 숙명명, 누진통의 지혜인 누진명의 세 가지를 특히 3명이라고 한다.(두산백과 두피디아)

신통력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영묘하고 불가사의한 힘이나 능력으로 정의한다. 속가의 사람들은 이러한 신통력(神通力)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소망한다. 신통력을 가지면 뭐든지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록의 풍수라는 소설을 읽어보면 속가의 삼통(三通)이 나온다.

첫째 법통(法通)으로, 부지런히 공부해서 얻게 되는 지혜를 말함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이치를 따지고 궁구(窮究)해서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둘째는 신통(神通)으로, 책을 보거나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바 없이 어느 날 문득 깨치는 것이니라. 셋째는 도통(道通)으로, 오랜 공부와 수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지혜이니라. 어떤 공부가 됐건 도통의 경지에 도달하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삼느니.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춰져야지 여간해서는 얻을 수 없다.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서 앎에 도달하려면 [치지(致知)] 배워야(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도 선정(禪定, 한마음으로 사물을 생각해 마음이 하나의 경지에 정지하여 흐트러짐이 없음)을 수행함으로써 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속정(俗情)을 끊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육통(六通)이라는 초인간적 불가사의한 능력뿐만 아니라 둔갑술(遁甲術), 축지법(縮地法), 장생불사(長生不死,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 호풍환우(呼風喚雨, 바람을 불게 하고 비를 오게 함), 이산도수(移山渡水, 산을 옮기고 물을 건넘) 등도 있다. 이러한 술법을 쓸 수 있는 일반인들이 있을까? 아마도 도력이 출중한 스님이나 도교 신선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에게 요즘은 왜 신통력을 갖춘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대는 경솔하게 미친 소리를 하지 말라. (, 바르지 못함)와 정(, 올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는 미혹함에 빠진 사람이다. ()를 배우되 선후를 알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면서 근본과 말단을 분간하지 못한다면 사악한 견해일 뿐이다라고 설법하셨다고 한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 관심법도 불가의 타심통에 해당하는 신통력의 일종이다. , 둔갑술이나 축지법 등은 불가의 신족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조국사는 말단으로 평가했다. 누진통을 얻어야 해탈의 경지에 올라 도통할 수 있는데, 보조국사가 볼 때는 이가 곧 본질이라는 것이다. 보조국사의 말씀은 속가의 사람들은 신통력을 갖기 위해 미혹함에 빠지지 말고, 근본과 선후를 알아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도술을 갖추라는 죽비소리임이 틀림없다.

기밀록(機密錄)명산록(名山錄)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신통력을 갖고 싶고, 천하 길지를 얻어 잘 살고 싶은 욕망은 다 똑같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 필자 또한 우리 지역의 길지는 어디이고, 이에 관한 비기(祕記)가 전해 내려오는 바가 없을까 많은 궁금증이 더해졌다.

도선의 저서라고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도선비기, 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등이 있다. 도선비기(道詵秘記)는 통일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이 중국의 풍수지리설과 음양 도참설을 골자로 하여 쓴 것으로 알려진 예언서인데, 당시 유행하던 참위서(讖緯書)의 하나로 추측되나 오늘날은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선의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도선의 비기도 후에 다양하게 변모되어 단편적으로나마 전해지거나, 도선과 무관한 것들마저도 도선의 이름을 빌어 전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옥룡자유산록(玉龍子遊山錄)유산록(遊山錄)·옥룡자 유세비록(玉龍子遊世秘錄)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사체 형식으로 조선 팔도 산천의 풍수학을 서술하는 가운데 각 지방의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에 근거해 명당을 서술하고 있다. , 4·4조의 4음보 연속체로 된 풍수가사인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도 전한다.

도선이 찬했다고 전하는 저술들은 대체로 원본이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관련 저술들은 대체로 후대에 찬술되고 도선의 이름을 가탁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가 있다. 도선이 지었다고 전하는 도선답산가17, 114, 38수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의 한시이다. 대체로 4·3의 음율로 산수 형세의 변화에 따른 길흉에 대해 읊고 있다. 주로 혈()을 중심으로 주위의 사()들에 의한 혈의 운세 변화를 노래했다. 풍수에서 사란 혈의 앞뒤와 왼쪽, 오른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도선에서 시작해 고려시대를 풍미한 풍수지리사상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풍수와 관련된 수많은 저술이 탄생했다. 도선답산가역시 그중 하나인데, 여기에 실린 전() 도선 찬술의 도선답산가는 현재 알려진 유일한 한시체 도선답산가로 보인다. 더구나 이 작품은 이후 파생되는 수많은 풍수가사의 시작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한국의 위대한 인물-신라 말 선승(禪僧)이자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道詵))

우리 지역은 옥룡자 도선국사가 35년간 정주했던 곳으로, 비기가 전해질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선사(先師)들이 남긴 산도(山圖)까지 곁들인 비결록(祕訣錄)이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 이곳에는 길지와 미혈(美穴)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 공개된 옥룡자(玉龍子) 현묘경(玄妙經)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필사본으로, 서용식 전시의회 의장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202211월에 광양동백숲 문화행사 추진위원회 라상채 위원장께서 국역본을 발간했다. 옥룡자(玉龍子)는 신라 말기의 승려인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비보(裨補)풍수의 비조(鼻祖)이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진위가 의심되긴 하지만, 도선국사와 관련된 풍수 관련 서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원래 이름은 구천현묘비경(九天玄妙秘經)인데, 이를 줄여서 현묘경(玄妙經)또는 도선결(道詵訣)로 부른다. 도선국사가 입적 후 500년 만에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가 발견해 필사(筆寫)한 것을 후대에 발견하여 전래(傳來)된 것이라 한다. 사람들은 호남 8대 명당이니, 조선 8대 명당이니 하면 귀가 쫑긋해진다. 이 책에서는 광산김씨의 발복처인 순창 마흘리 말명당을 소개하고 있다.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터 잡고 있는 조선 초기의 문신 김극뉴(金克忸, 1436~1496) 선생의 묘는 조선의 8대 명당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명묘 중 하나다. 많은 풍수가들은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조선조에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이 예학(禮學)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사후에 해동18(海東18)에 추앙되어 한 가문에서 2명이나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고, 정승 5, 대제학(大提學) 7, 왕비 1(숙종비 인경왕후)을 비롯해 수많은 명신현관을 배출해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가문(家門)으로, 특히 사계 선생의 자손이라면 맞선도 보지 않고 딸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을 떨친 게 결코 이 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문화원형백과 한국의 풍수지리)

훌륭한 풍수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비결록(祕訣錄)을 보고 실제로 답산을 한 다음 발복 여부를 따져보는 등 많은 발품을 팔아야 이루어질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안영신 사료조사위원께서도 다음 두 자료를 소개해 주셨다.

먼저 명산록(名山錄)이다. 우리 지역 출신인 소설가 주동후(朱東厚, 1942~2003)가 지은 빛무리 출판사에서 간행한 광양이야기아버지와 명산록(名山錄)Ⅱ」에 언급되어 있다. 명산(名山), 명혈(名穴)에 관한 비결이고, 책표지에 명산록(名山錄), 세재 계묘 정월 일(歲在 癸卯 丁月 日)”로 필사 연대가 나온다. 아마도 1915년 쓴 것이라 추정된다. 필사본(筆寫本)으로 가로 20cm×세로 20cm, 42, 한지로 제작됐다고 한다.

표지를 넘기면 명산혈록(名山穴錄) 광양(光陽)이라고 적혀 있고, 구체적으로 명당 하나하나가 소개되고 있는데, 대충 세어 봐도 여든 개쯤 되는 것 같다. 이 여든 개쯤의 광양에 있는 명소 소개가 끝나면 순천 비결(順天祕訣)이 이어지고, 마흔 개가 넘는 그 비결 다음에는 여천 비결(麗川祕訣)이 이어지는데, 그것 또한 스물네 개쯤 된다.

주동후, 광양이야기
주동후, 광양이야기

중간에 우유산록일지승(又遊山錄一旨僧)이라는 것도 끼어 있는데 낙안, 벌교 일대의 산기운(山氣運)에 대해 다섯 쪽 분량으로 방점(傍點)을 찍어 가면서 써 놓은 것도 있다.

그러니까, 순천·구례 사이에 있는 소련재 아래로 순천, 광양, 여수, 낙안, 벌교 일대의 명당이란 명당이 이 비결서 안에 모두 소개되고 있는 셈이다.(주동후, 광양이야기, 211)

안영신 사료조사위원은 명산록(名山錄)기밀록(機密錄)을 보고 쓴 것으로 추정한다. 명산록의 많은 부분이 기밀록의 많은 부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밀록은 표지에 경인납중순제(庚寅臘中旬題)’로 된 것으로 보아 1830년이나 1890년 쓴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앞에서 언급한 명산록과 비슷하다. 명산록이 1915년에 필사된 것인데 반해, 기밀록은 월포(月浦)’라는 지명이 여러 군데 나온 것으로 보아 1914년 이전에 작성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月浦面)이 통합되어 진월면(津月面)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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