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가 좋은 일 참 많이 해.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여기로 와”


봉강 상봉마을 입구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누가 심었을까 정확히 기억도 없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없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훌쩍 자란 나무가 늘 그렇듯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무 밑으로 모이고 주고받는 안부와 때론 재미지게 나누는 이야기에 늘 웃음꽃이 피어났다.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함이 나무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을까. 지금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태와 짙은 녹음은 무더운 여름철 더 없이 좋은 쉼터를 만들어 주며 마을의 자랑이 됐다.

이런 상봉마을 당산나무에겐 오래된 친구가 있다. 바로 허만임(78) 할머니다.

자식들이 개가해서 모두 품을 떠나고 서로 기대던 할아버지도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할 일이라곤 어린 시절부터 보고자란 당산나무 밑에 앉아 오가는 이들과 정을 나누는 게 전부.

“여기가 좋지 맴도 편하고 바람도 시원하게 잘 불고 말이여.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여기 와서 쉬다들 가. 이 나무 심은 사람은 분명 좋은데서 잘 있을 거야 이렇게 좋은 일을 했으니께 말이여”

지금은 마을회관도 새로 짓고 노인정도 있어서 어르신들이 다들 그곳으로 모이지만 허만임 할머니에겐 당산나무 밑이 제일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여기가 시원하고 탁 트여서 좋지. 여기 앉아있다보믄 버스타러 온 마을 사람들 동무도 해주고 어디 갔다 오는 사람들 여와서 쉴 때 말벗도 하면서 있는 거여. 나한테는 여기가 제일이여”

말을 잇던 허만임 할머니가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다봤다. 매일 손녀로부터 안부전화가 걸려온다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밥은 먹었는지 오늘은 뭐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 같은 대화지만 하루도 잊지 않고 전화하는 손주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 아들손주는 공부를 잘해서 영재학교댕기고 우리 손녀딸은 매일 나한테 안부전화하며 보고 싶다고 해. 자식들보다 손주들이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

무더위를 피하려 당산나무 그늘을 찾은 기자에게 할머니는 늘 그렇듯이 편안한 말벗이 돼주었다. 마치 고향 할머니 집에 놀러간 것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게 맞아주는 상봉마을 지킴이 허만임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변치 않는 친구 당산나무.

오래오래 할머니가 당산 나무 곁을 지키고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머니, 할머니랑 나무랑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게요”하는 기자에게 할머니가 웃으시며 한 말씀 하신다.

“아무 때나 와, 나야 늘 여기 있을 것잉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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