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초등학생 딸의 운동회 때, 포크댄스 파트너로 참가 했다가 독배를 마신 기분으로 집에 왔다. 댄스 연습 후,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는데, 건너편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온 엄마들의 수다 때문이었다.

“ 아까 그 아저씨 봤어? 되게 못하더라!”
“ 아니, 근데 그 사람 백수인가? 이 낮 시간에 아버지가 딸과 함께 포크 댄스 연습을 하러오다니...”

하지만 어쩌랴! 그 분에 대한 경박스러운 수다는 무참히 빗나간 걸... 아내도 있지만 딸의 운동회를 위해 중소기업 사장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자연스럽게 혹은 계획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40대 중반에 늦둥이를 본 내 입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넘는‘ 선택적 인지’의 한국적 패착(敗着) 또한 만만치않다. 평소 옷차림과 형식 등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 상, 거주지에서 늦둥이와 같이 있을 때는 주로 트레이닝복에 다 업고 다니기 일쑤이다. 그리고 어린이집 셔틀버스를 태워주거나 오후에 집에 올 때, 마중을 나가보면 전부 엄마인데 아빠는 달랑 나 혼자이다. 그런데 언젠가 처 이모부께서 교회 모임을 같이하는 -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시는 - 분께서 얘기한 걸 전하셨다.

“ 김집사님, 우리 동에 사는 그 조카사위라는 분 혹시 집에서 노세요?”
“ 왜요?”
“아니 자주 보는데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애기 업고 다니고 놀이터에서 놀고해서...?”
“ 예! 그 사위가 학교에 있는데, 주중에 아이랑 떨어져 있고 해서 같이 있을 땐 특히 늦둥이라 그럴 거예요!”
“아! 예......” 그에 몹시 당황하였다는 부록도 따랐다.

현재 8살인 이 늦둥이 때문에 지금까지‘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대여섯 번정도 들었다. 어느 어릴 때 애를 안고 있는 내게, 인터폰 수리하러 온 기사 왈 “손자를 일찍 보셨네요?” 라며, 자기 맘대로 들이댄 게 첫 번째다. 황당함에 즉시 벽걸이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아저씨 얘가 큰아들이고 안고 있는 이 얘는 띠 동갑 동생이거든요!”“ 아, 예! 제 고향에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후배가 손자를 일찍 봐서...”

이후 어느 때 산책로 벤치에서 애를 안고 있는데, 지나가는아주머니 왈,“ 할아버지라기엔 젊고 아빠라고 하기엔...”“ 아주머니, 저 아빠거든요!”

어느 날 아침인가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업혀 있는 아이에게 옆 동 청소하는 할머니께서,“ 아이고 할아버
지 허리 아프겠다. 내려와라!” 라고 내질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말하기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즉 자신(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추측하는 바대로 말하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듣고 싶은 것만 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인지경로를 통해서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을 접하지만, 이들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선택적 인지(상황)>이라고 한다. 상기와 같은 일방적이고 얼토당토 않은 사람들의‘ 선택적 인지심사(메카니즘)’를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간파했다“.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다. 신념에 대한 토대가 없어도 일단 믿고 만족한다. 그러곤 믿음에 따라 움직이려 한다.” 자신의믿음에 반하는 증거는 철저히 무시해버리고 믿음을 확인해줄 수 있는 증거를 찾아 헤매는 이른바‘ 확증 편향(confirmationbias)’이 그것이다.

사족: 여전히 남자 혹은 아버지는 주중 바쁜시간에 자녀에게 시간을 할애해 주거나 집에 있거나 애를 보면, 이렇게 눈총을 받고 구설수대상이 되는가?

정채기
‘강원관광대학교 교수
한국남성학연구회장
꽃다발
<志剌發光>
정채기 교수는 진상이 고향으로 교육학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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