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딸과 함께
‘삶’을 가르치는
교육자 도성혜 씨
여섯 딸의 홈스쿨링을 책임지며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도성혜 씨(44)의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도성혜 씨의 집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12살 큰딸부터 3살 막내까지, 여섯 자매가 함께 성장하며 삶을 배우는 살아있는 교실이다. 매일 아침 그녀의 집에서 펼쳐지는 홈스쿨링은 아이들의 개별적인 속도와 필요에 맞춰 진행되며, 경쟁보다는 관계와 협력을 통해 진정한 사회성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TV 없는 집, 상상력으로 채워진 교육 현장
도성혜 씨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 자리는 대화와 독서,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아이들은 택배 상자로 집을 만들고, 블록으로 인형의 집을 지으며 스스로 놀이를 창조한다. 장난감이 많지 않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상상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여섯 자매는 함께 규칙을 만들고, 언니가 동생을 돌보며 서로 협동하는 법을 배운다.
도 씨는 “결혼 후 지금까지 TV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 TV가 있으면 대화가 줄기 마련이다. 대신 산책을 자주 나가고, 가족 간 대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TV가 없으니 아이들이 책을 더 가까이하고, 이야기에도 더 집중하게 된다”며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스스로 만들고 상상하는 데 훨씬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가족 안에서 갈등을 겪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는 아이들을 보며 도 씨는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웃고 노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며 “아빠가 퇴근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면 ‘아빠!’ 하며 달려 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하루의 피로가 다 씻기는 기분”이라고 미소 지었다.
다자녀 가정의 현실과 교육 철학
‘육자매’라는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지만, 도성혜 씨는 그 이면에 감춰진 현실적인 고충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식비와 의류 등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아이들 옷은 지인들로부터 물려받아 입히는 것이 일상이 됐다.
도 씨는 “홈스쿨링으로 교육비는 어느 정도 절감되지만, 피아노 학원에 세 아이를 보내는 것도 여전히 부담”이라며 “사람들은 다자녀 가정엔 혜택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받는 지원은 전기·가스요금 일부 감면, 셋째 이상 자녀에 대한 월 10만원의 아동수당, 그리고 부모수당 50만원(23개월 한정)이 전부다.
그는 “출산 이후에는 다자녀 가정도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도 씨가 홈스쿨링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 공부방을 운영하며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접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놓치고 있는 정서적 돌봄과 관계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도 씨는 “학교나 학원은 아이들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경쟁을 부추긴다”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아이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편과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자녀들과 유의미한 시간을 통해 자율성과 분별력을 길러주고자 하는 부부의 뜻은 홈스쿨링이라는 선택을 지탱하는 든든한 동력이 됐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홈스쿨링의 가치
도 씨는 미국의 홈스쿨링 커리큘럼인 SOT 교재를 활용해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통합적으로 가르친다. 때로는 책상 앞에서, 때로는 자연 속에서 수업이 이어진다. 아이들은 단순히 교과 지식뿐만 아니라, 언니가 동생을 가르치고 서로 돕는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습득한다. 사회성 부족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도 씨는 단호하다.
그는 “강제적인 공부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는 공부를 통해 자율성과 분별력을 길러주고 싶다”며 “아이들은 어른, 또래 할 것 없이 모두와 잘 어울린다. 매년 전국 홈스쿨링 컨퍼런스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스쿨링은 교육, 살림, 돌봄, 그리고 감정 노동까지 엄마의 모든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도 씨 또한 지칠 때가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얻는 충전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녀는 홈스쿨링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엄마의 시간은 전부 아이들에게 쏟아야 한다. 그래서 지칠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얻는 충전도 있다”며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보내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살아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기 전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부모의 선택”이라며 “부모가 자녀의 속도와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홈스쿨링은 그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고 강조했다.
정직과 성실, 삶의 나침반을 심어주다
도성혜 씨 가족은 주말이면 바닷가로 나가 게를 잡고 갯벌을 체험하는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다. 지역 축제를 찾아다니며 세상을 배우고, 언젠가는 해외로 나가 아이들의 시야를 더욱 넓혀주고자 하는 꿈도 품고 있다. 이 모든 여정의 중심에는 도 씨가 자녀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두 가지 가치가 있다. 바로 ‘정직’과 ‘성실’이다.
도 씨는 “정직은 자기 삶에 대한 기준이고, 성실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꾸준한 힘”이라며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이 두 가지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는 홈스쿨링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소신을 잃지 않는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언젠가 학교에 보낼 의향도 있지만, 중요한 건 ‘공부’보다 ‘동기’라고 말한다.
그는 “공부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필요성을 느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홈스쿨링은 틀린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는 홈스쿨링을 잘못된 선택이라 단정 짓고, 왜 그렇게 하느냐는 시선으로 묻곤 한다”며 “대부분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제도와 다르다는 이유로 틀리다고 보는 시선이 가장 어렵다”고 덧붙였다.
도 씨는 교육 방식의 차이는 각자의 삶과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교육 방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