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마을 손재기·박정희 부부
생업 접고 사랑의 밥상 운영
7년째 어르신 건강과 안부 챙겨
광양 초남마을에서 7년째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는 손재기(66)·박정희(62) 부부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들은 마을 이장을 맡으며 주민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더 늦기 전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생계 터전이던 가게를 정리하고 ‘사랑의 밥상’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손수 지은 따뜻한 밥과 정성 가득한 반찬으로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부를 살피는 이들 부부의 헌신적인 삶은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부부의 작은 시작, 마을 어르신의 행복으로
손재기 이장이 무료 급식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며 마주한 어르신들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밥에 물을 말아 드시거나 장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힘이 있을 때 부모처럼 어르신들을 섬기자”는 마음으로 급식소 운영을 결심했다. 당시 불판과 석쇠를 만들어 식당을 운영하던 그는 모든 생업을 접고 오직 봉사에 매진했다.
2018년 12월 1일 문을 연 급식소는 약 6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작됐다. 그는 자녀들에게 손편지를 쓰고, 향우들과 인근 기업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했다. 그 덕에 어르신들의 점심과 저녁 식사를 매일 제공할 수 있었다.
아내 박정희 씨는 주방을 책임지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두 사람은 어르신들에 대한 애틋함이 남다르다.
손재기 이장은 “어머니가 치매로 고생하실 때 대소변까지 받아낸 아내의 헌신적인 모습 덕분에 지금의 급식소 운영도 잘 이어지고 있다”며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밥 한 끼 이상의 가치, 건강과 안부까지 살핀다
이들 부부에게 무료 급식은 단순히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부를 돌보는 일이다.
손 이장은 “혼자 사는 어르신이 많아 식사하러 안 오시면 직접 안부를 확인한다”며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 기력이 부족한 어르신들을 위해 매끼 영양가 있는 반찬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급식소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문을 연다. 매 끼니 세 가지 이상의 반찬과 국이 제공되며, 수요일 점심에는 팥죽이나 콩죽, 토요일 점심에는 찰밥이 고정 메뉴로 제공돼 어르신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4명에게도 도시락을 만드는 등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봉사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부부는 개인 시간이 부족한 점이 가장 힘들었지만, 주민들의 응원과 자녀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손 씨는 “지난해부터는 어르신들이 주 1회는 쉬라고 권유해 일요일은 쉰다”며 “초기에는 어르신들 간의 다툼도 있었지만, 아내가 조용히 중재하며 잘 해결해 온 덕에 현재 큰 어려움 없이 즐겁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고생했네, 잘 먹었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사라지고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운영할 수 있는 날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어르신들의 끼니를 챙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 40년 해로의 비결
손재기·박정희 부부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광양읍 한 카페에서 친구 소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다. 당시 ‘농장 주인’이라 소개받은 손 이장의 농장은 실은 파산 직전이었고, 소 세 마리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박 씨는 흔들림 없이 그의 곁을 지켰다.
첫 만남에, 손 이장이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하자 박 씨는 형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그건 흠이 아니라고 말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음날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으나 여러 차례 반대 속에도 불구하고 박 씨의 큰 형부가 도움을 줘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
결혼 당시 형편이 어려워 당장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으나 손 이장이 장모님께 ‘5년 안에 새집을 짓고, 현대식 화장실도 만들겠다’는 약속을 4년 만에 지키며 신뢰를 쌓아갔다.
박정희 씨는 “남편이 어릴 때부터 자수성가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들도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 번도 부모한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잘 자랐다. 우리가 무료 급식소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좋은 일 하는 부모님이 자랑스럽다’며 꾸준히 응원해준다”며 “잘 커줘서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래도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또 남편이 가진 소신 덕분에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급식소를 운영해오고 있다”며 남편에 대한 존경을 전했다.
또 손 이장은 광양시 노인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광양시가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85세 이상 고령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동안 급식소를 운영해 올 수 있었던 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이웃들과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며 “그 감사함을 주민들과 나누고,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부를 살피며 부모님께 효도하듯 매일 정성껏 밥상을 차릴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