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경 광양문화연구회원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추진

벼가 제법 누런 빛으로 익어갈 무렵 부암 마을회관을 찾게 되었다. 왜 왔는지 필자를 궁금해하는 표정이 어르신들 얼굴에 역력했다. 마을이 공사 중이라 어수선해서 취재하기 힘들다고 하던 이장님을 뵈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자 묶어 놨던 보따리를 푼 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 어르신이 우리 이장님이 저렇게 박식하고 이야기를 잘 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하셔서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마을 입구에는 포클레인이 서 있고 돌과 흙이 뒤엉켜 어지럽다. ‘봉강면 부암마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이라고 쓴 현수막이 현장을 설명해 준다.

곳곳에 구멍 난 담장,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 진즉 철거되어야 했을 슬레이트 지붕 등을 개조하는 큰 사업을 벌이신 거다. 이제 시작했으니 아마 내년 5, 6월쯤 마무리될 거라고 하신다. 이후에는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정말 바쁜 걸음이다.

부암 마을
부암 마을

부암(傅岩)’ 지명 유래

부암 마을은 1756년경 송창국이라는 사람이 처음 정착하여 형성하였다고 한다. 조령리의 중심지로 아랫먹뱅이라(묵방을 이렇게 발음하여 부름) 불려 오던 중 묵방(墨方)이라는 이름이 고상하지 못하다고 하여 1902년 송식이라는 사람이 스승 부()자와 바위 암()자를 합하여 부암(傅岩)이라고 개칭하였다. ()자는 먹방 스승이 공부하는 방()을 의미하며 암()자는 마을 앞에 바위가 많음을 참고하여 지은 것이다. (광양시지 참고)

이장님도 지명 유래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셨다. 공부를 가르치는 스승을 지칭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을 보면 한학자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송식이라는 분이 한시에 능통한 분이었고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서당 터도 있었다고 하니 학식과 덕망이 높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장님(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마을 어르산들
이장님(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마을 어르산들

4개의 소()

부암 마을 앞 냇가에는 4개의 소()가 있다. 거주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지냈던 동냥치 소(), 소 여물통같이 생긴 구시 소(), 벼락이 많이 내렸다는 벼락 소(), 매어 놓은 소를 메기가 끌고 들어갔다는 소쟁이 소(). 특히 벼락소는 2개의 깊은 굴에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퐁퐁 솟아 나온다. 선조들이 소()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꾼 걸 보면 소()에 대한 애정이 깊었을 것이다.

4개의 소()를 품고 널따란 바위(너리방석)가 약 1Km에 걸쳐 펼쳐있다. 저렇게 통으로 넓고 큰 바위가 냇가에 펼쳐진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따뜻하고 푸근해 보이기까지 하는 너리방석은 백운산에서 내려오는 청량한 계곡물과 어울려 신비롭기까지 하다. 물가가 너무 깨끗해서 모기도 없다고 하니 자연히 여름에 외지 사람들이 와서 휴가를 보내고 쉬는 공간이 되었다.

동냥치 소(沼)
동냥치 소(沼)
구시 소(沼)
구시 소(沼)
너리방석
너리방석

고로쇠가 주 수입원

1년에 6만 말 이상 나오는 고로쇠는 마을의 큰 자산이다. 산수 좋은 곳에서 자란 광양 고로쇠가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고로쇠 수액 생산 및 유통 관리는 광양고로쇠약수협회'가 하고 있다. 50여 명의 회원들이 오랫동안 지속해 온 단체인 만큼 고로쇠 나무를 잘 관리하고 우수한 수액 체취를 위해 비료 대신 퇴비를 사용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고로쇠가 나는 철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주차장이 없는 마을은 입구부터 복잡하다. 부지를 빨리 확보해서 너무 낡은 고로쇠 창고를 옮기고 현재 고로쇠 창고 자리는 주차장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주민들의 가장 큰 소망이다. 마을 입구는 차 돌릴 곳조차 없으니 이장님 임기 동안 꼭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해서 해결하고 싶으시다.

고로쇠 외에 고사리, , 매실, 감 등에서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올해는 지속된 고온으로 생각지도 않은 병충해가 생겼다. 벌레들도 면역력이 강해져 웬만하면 죽지 않으니 과실 농사가 안되는 건 당연하다. 더위에 잘 견디는 특종작물을 개발 중이라고 하나 농민에게 보급되는 기간이 긴 것도 애로사항이다.

단장된 담장
단장된 담장

자랑거리는 긍정적으로 협조하는 마을 사람들

3년 임기인 이장직을 연임하다 보니 정홍기 이장님은 올해 5년 차 이장 일을 하고 계시다.

우리 마을은 복이 많아서 이장 할 사람들이 꽤 있어요. 다음 이장직은 걱정이 없어요.”

맡을 사람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한 분이 이장을 오래 하는 마을도 있는데 정말 복이 많다.

가장 자랑거리는 외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잘 살고 이웃 간에 다툼 없이 잘 지내는 것이다.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도 적극적으로 협조한 주민들 덕분에 용기를 내서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고맙고 자랑거리라고 하셨다.

모두 선해서 서로서로 챙겨주고 일이 생기면 긍정적으로 대화하고 협조해서 해결해요.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회관에 모여 식사를 하지요. 97세 부모님을 모시려고 3년 전에 일부러 부산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효자도 있는데 바로 저 형님이에요.”

아까부터 가만히 듣고만 있는 오른쪽 어르신을 이름이다.

바로 그 옆에 계신 어르신은 85세라고 했다. 살아온 평생만큼 들을 게 많아서 모셨는데 귀가 이렇게 어두운 줄 몰랐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유난히 딱 붙어 앉은 부부가 눈에 띄었다. 귀촌한 부부다. 처음으로 부녀회장도 맡았단다.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오늘따라 둘이 딱 붙어 앉아있다고 옆에서 뭐라고 해도 웃기만 한다. 한마디 해보시라고 했지만 수줍음이 많아 결국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어쨌든 이장님이 강조하시는 화합과 어울림에 잘 적응하고 있으니 정 많은 인심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리라.

전원마을 조성이 주는 기대와 우려

전원주택이 들어설 계획이 있어서 체험형 가구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2가구가 1년 계약해서 들어와 살고 있어요. 이런 일을 7년 동안 해오고 있어요. 이미 8가구가 귀농, 귀촌해서 살고 있고요. 전원주택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미리 마을 분위기나 정서를 체험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거지요.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친절을 베풀고 잘 해주자는 마음으로 회의도 자주 하고 있어요.”

이 마을과 윗마을을 합해 필동마을이라고 한다. 이 두 마을 사이에 만 평 정도 택지가 조성되고 50가구가 입주할 계획이다. 기대되는 것은 마을이 커지는 것, 우려되는 것은 입주민들과 하나로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귀농, 귀촌을 하는 사람들은 마을 인심을 보고 들어온다고 한다. 부암 마을 주민들은 입주민들과 갈등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예행연습하고 있다. 체험해보고 마음에 들면 그 부근의 땅을 사서 빈집을 구입하고 입주하게 된다. 입주한 분들이 잘 어울려 살고 있으니 반은 성공한 셈이다.

전원 주택 조성 부지
전원 주택 조성 부지

신재생 에너지 태양광 설치 사업에 대해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실현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부지확보 외에도 마을 사방 1km 내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태양광 에너지의 공장, 창고, 지붕 임대를 통한 임대료 수익창출, 개인 잉여전력 판매 등을 통한 수익창출 등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대할 수도 있는 일이다. 경관 훼손과 환경 파괴가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다. 우리가 쓰는 전기는 우리가 생산해서 써야 하는 시대가 온다고, 농촌 인구가 줄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신재생 에너지의 보급이 아니겠냐고 하신다. 부암 마을의 현재 인구는 35가구 150여 명이다. 외지인들이 전원주택 입주민들과 더 좋은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데는 충분하고 싼 에너지도 한몫한다. 인구 유입이 많아지니 전력 공급이 늘어야 하고 결국 태양광 에너지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지만 특히 농촌에서 시급하다고 한 어르신이 강조하신다. 태양광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보급하고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충분히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젊은 꿈을 꾸는 마을

이장님은 농심정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한 지 30년째다. 한 주인이 30년이나 운영했다고 시에서 감사장도 받으셨다. 메뉴는 닭불고기, 백숙, 오리, 염소 요리 등이다. 이곳은 젊은이들이 찾는 하계휴양지로 좋으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개발해서 광양의 찐 맛을 보여줘야 한단다. 맑은 물살이 흐르는 냇가에 펼쳐있는 편안한 평상, 널찍한 공용주차장도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안성맞춤 여름 휴양지다.

이장님을 따라 부암교를 건너 기원농장이라는 곳에 잠깐 들렀다. 봉강에 쉬어가기 좋은 이런 곳도 있으니 알리고 싶으신 게다.

부암 마을 뒤쪽 언덕에는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공원으로 만들어 운동기구를 놓고 둘레길도 조성 중이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장소로 만들면 마을이 더 좋아질 거라고 주민들 기대가 크다.

끊임없이 마을을 가꾸고 손질하고 구상하면서 꿈꾸는 이장님은 젊다. 그런 이장님을 믿고 협조하는 마을 분들이 있으니 부암 마을은 점점 젊어지겠다. 숙원인 고로쇠 창고와 공용주차장이 잘 완공되기를 응원한다. 배려심 많고 인정 넘치는 부암, 더 넉넉하고 살기 좋아진 부암을 만나러 갈 날이 기다려진다.

·사진 박옥경 광양문화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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