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지 않고 최소한만, 식탁 위 질서
자릿세와 1인 1메뉴가 말하는 가치
작은 규칙이 만든 일본식 배려와 질서

이번 탐방기에서는 일본 식당에서 마주한 ‘불편함’을 통해 손님과 점주의 효율과 공평성을 지키는 소비 질서와 배려를 살펴본다. 단순한 식문화 체험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음식과 서비스, 환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일본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야키니쿠(焼肉)’ 전문점이었다. 야키니쿠는 1872년 메이지유신 이후 육식문화가 본격화되며, 한국의 불고기·갈비 문화가 전파되어 발전한 일본식 숯불구이 요리다. 입안에서 녹듯 사라지는 고기의 풍미는 일품이었다. 특히 한 점씩 구워 먹는 화로식 구조는 식사와 대화 모두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음식의 맛만큼 인상 깊었던 것은 ‘1인 1음료 주문’ 규칙이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기자는 어쩔 수 없이 생맥주 한 잔을 시켜야 했다. 모든 손님이 음료를 주문해야만 식사 주문이 가능했다. 카페의 ‘인당 1음료’ 문화가 식당에서도 적용된다는 점이 낯설었다.
 

다양한 언어로  적혀있는 1시간 이용제와 1인당 1드링크, 2메뉴
다양한 언어로  적혀있는 1시간 이용제와 1인당 1드링크, 2메뉴

두 번째로 찾은 철판요리 식당에서도 “한 사람당 한 메뉴는 기본”이라는 직원의 말에 메뉴를 추가로 주문해야 했다. 계산하려 하니 이번에는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는 안내가 돌아왔다. 불편했지만, 일본의 소규모 음식점에서는 카드 단말기를 비치하지 않은 곳이 많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작은 오뎅바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다림 끝에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했는데, 이곳에서도 ‘1인 1음료’ 원칙에 예외란 없었다. 양배추 샐러드를 400엔(한화 약 4천원)에 추가 주문했으나, 실제로 나온 것은 한입거리의 작은 접시였다. 게다가 이용 시간은 1시간 제한.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 모든 규칙에는 일본만의 질서와 효율이 녹아 있었다.

CASH ONLY라고 적혀있는 현금만 받는 일본 상점
CASH ONLY라고 적혀있는 현금만 받는 일본 상점

일본 소비 문화의 배경

이용 시간 제한은 위생과 효율의 균형을 위한 장치였다. 손님이 바뀔 때마다 식기와 테이블을 철저히 세척하는 것은 일본에서의 기본 예절이다. 회전율을 높이고 대기 손님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도 ‘배려의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현금 결제 중심 문화는 신뢰를 중시하는 일본의 금융 관념과 맞닿아 있다. 위조지폐가 거의 없고, 카드 수수료와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현금은 여전히 ‘가장 안전한 결제 수단’으로 통한다. 더불어 자연재해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비상금 형태로 보유하는 문화도 자리 잡고 있었다.

‘자릿세(오토시)’와 ‘1인 1메뉴’ 문화는 일본식 서비스 철학을 보여준다. 자릿세는 단순한 기본 안주가 아니라, 자리를 이용하는 대가이자 운영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서비스료다. 1~2인 가구 증가와 개인 중심 식문화에 더해, 음식물 낭비가 사회적·경제적·환경적으로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소량 제공 메뉴와 최소 주문 규칙이 정착했다. 

400엔(약 4천원)을 지불하고 제공된 한입 크기 양배추 샐러드. 일본식 소량 제공 문화를 보여준다.
400엔(약 4천원)을 지불하고 제공된 한입 크기 양배추 샐러드. 일본식 소량 제공 문화를 보여준다.

일본의 음식문화에서 느낀 점

일본의 음식문화는 위생, 효율, 질서, 배려가 긴밀히 엮여 있다. 개인 공간을 존중하고, 서비스의 가치를 명확히 구분하는 태도는 한국의 ‘정(情)’ 중심 식문화와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음식 낭비 방지 문화’다. 일본에서는 남기지 않는 것이 기본 예의로 여겨진다. 손님은 먹을 만큼만 주문하고, 가게는 필요한 양만 조리하며, 밑반찬이나 추가 주문 음식도 소량으로 제공된다. 이렇게 자리 잡은 소비 습관은 자연스럽게 음식 낭비를 줄인다.

그러나 일본 식당에서는 ‘현금 결제만 가능’하거나 ‘이용시간 제한’등에 불편함을 자주 마주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의 편리한 결제 시스템과 푸짐하게 차려지는 음식 문화의 따뜻함을 새삼 감사하게 느꼈다. 당연하게 여겼던 서비스와 정성의 가치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자릿세(오토시)를 내면 제공되는 소량의 밑반찬들
자릿세(오토시)를 내면 제공되는 소량의 밑반찬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남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은 음식은 처리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고, 부패 부산물은 토양과 수질 오염을 유발한다. 수거·처리 비용만 연간 2조원(환경부·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 실천 플랫폼’ 2018년 기준)에 이르며, 모두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결국 ‘남기지 않는 문화’는 환경과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책임임을 보여준다. 한국은 맛과 나눔의 강점을 지녔지만, 음식물 쓰레기와 환경 부담은 여전히 과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작은 배려와 절제를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 먹을 만큼 주문하고, 남은 음식은 포장하거나 올바르게 버리는 습관이 음식과 환경, 서비스를 함께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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