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국제문화교류회 강석태 회장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 그 등불잡이의 하나였던 조선 /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 시는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조선, 곧 우리나라를 노래한 것이다.
타고르는 아시아 사람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타고르는 인도 캘커티에서 벵골 명문의 대성이라 불렸던 아버지의 15명 아들 중 열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들도 문학적인 천분이 있었다. 해서 타고르 가는 벵골 문예부흥의 중심이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란 타고르는 일찍이 11살 때부터 시를 썼고, 16세에 처녀시집 ‘들꽃’을 내어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1877년 영국에 유학하여 법률을 공부하여 유럽 사상과 접하게 되어 동서 사상을 널리 섭렵할 수 있었다. 그의 초기 시 작품은 유미적이었으나 후일 아버지의 명령으로 농촌의 소유지를 관리하게 되면서 가난한 농민생활을 보게 되면서 농촌개혁에 뜻을 두게 됨에 따라 작풍도 현실성을 띄게 되었다. 1909년 출판한 시집 ‘기탄잘리’로 1913년 아시안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는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 문화의 융합에 힘썼다. 한국엔 오질 않았고 일본은 두 번 방문하였다. 타고르는 한국을 방문하진 않았으나 한국에 대한 시를 두 편 남겼다. 앞에 든 ‘동방의 등불’과 ‘패자의 노래’이다. 그 중 후자는 최남선의 요청을 받아 쓴 것이고, 전자는 1929년 그가 일본에 들렸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대신 동아일보에 기고한 것이다.
그는 한국 땅을 밟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았다. 앞에 쓴 대로 다 만 동아일보의 기자를 만났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와 같이 아름다운 시로 조선을 노래했다. 노래에는 조선의 역사, 문화, 전통 등의 진수가 녹아있다. 타고르는 어디서, 어떻게
조선에 대한 그와 같은 깊은 지식을 얻었을까? 이것은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 있었다.

# 타고르와 조소앙의 만남

이 수수께끼가 2007년 7월에 ‘한.인문화연구원’이 발간한 ‘한.인문화논총 제16호’에 한.인문화협회 회장 김양식 씨가 권두언으로 발표한 글에서 풀리게 되었다.
김양식 씨는 이 글에서 1941년 8월 7일 시성 타고르가 노환으로 타계하였을 때 중국 중경시에서 마련한 타고르 초도회에서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부장이며 한국독립당 대표인 조소앙 선생이 시인의 죽음을 애토하는 추도문을 읽었는데, 그때 조소앙 선생께서 1919년 5월 영국 런던에서 두 분이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두터운 교분을 나눈 사실을 말하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그 추도문도 오랫동안 해볕을 보지 못하고 묻혀있던 것을 현 삼균학회 이사장이자 조소앙 선생의 자손인 조만제 선생이 조소앙 선생의 유물을 정리하던 중 서류 뭉치 속에 들어 있던 추도문을 발견함으로써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밝혀진 조소앙 선생의 타고르에게 드리는 추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 (전략)옛날(1920년)에 내가 런던에서 선생을 방문하여 대화하기를, 시두(時頭=시간성) . 방미(方尾=공간성). 고신(故身=인과성)에까지 이르자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부합하여 서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러한 후에 고(故). 시(時). 공(空)의 포위를 생각하니 마치 누에고치가 번데기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하생략)

# 조소앙과 삼균주의

조소앙은 누구인가? 조소앙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중국에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외무부장의 중책을 맡았으며, 이시영, 이동녕, 김구, 안창호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여 후일 대표로 활약하는 등 오로지 조국 독립운동에 몸 바친 분이다. 동생 조용강을 귀국케 하여 그로 하여금 삼균주의(三均主義)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삼평사를 조직하고 잡지 ‘평론’을 간행하게 했다.
삼균주의는 조국독립을 위한 활동의 기본 방략임과 동시에 독립 후의 조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를 체계화한 것으로 조소앙의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라 할 것이다. 삼균은 개인 간, 민족 간, 국가 간의 균등을 말하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선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균등이 이루어져야 하며,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일가의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소망하는 복지사회 건설의 선구자라 할 것이며 마땅히 주목할 만하다.
이 삼균주의사상은 현재 국내에서 그의 뜻을 이어 삼균학회(이사장: 조만제, 사무실: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334-2 청고빌딩 502호, 전화 02-2274-1041)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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