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활용 방안 심포지엄

진월면 망덕에 있는 등록문화재 제341호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대한 민족문학의 문화 유적지로 만드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1925년 건립된 전형적인 근대 상가 주택으로 지난 2007년 등록문화재 제341호 지정받아 보존되고 있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육필 원고가 보관됐던 곳.

윤동주와 연희전문학교 시절 기숙사와 하숙 생활을 함께했던 정병욱은 1944년 1월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윤동주로부터 받은 시집 1권을 그의 어머니께 넘기며 잘 보관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윤동주의 유고를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에 묻어두고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마침내 1945년 광복과 함께 가까스로 전쟁터의 사경을 벗어나 진월로 돌아온 정병욱은 어머니가 지킨 윤동주의 유고를 다시 찾아 1948년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함으로써 비로소 윤동주 시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한 정병욱의 어머니가 유고를 보관한 곳이 바로 망덕에 있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다.

광양시는 지난 13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백영 정병욱과 민족시인 윤동주의 문학사적 조명을 통한 정병욱 가옥 활용 방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청년시인 윤동주의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존해 우리에게 건네준 백영 정병욱 가옥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또한,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을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선생의 인연을 기념하고 시인의 순결한 시 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역사적 장소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실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김흥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윤동주 시와 자아 성찰의 얼굴들’, 권두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백영 정병욱 선생의 생애와 학문’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또한 김응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가 ‘한글과 시혼을 지킨 윤동주와 정병욱’, 윤인석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역사적 터의 내력과 활용, 이야기가 있는 정병욱 가옥의 미래를 그려보며’ 등 4개 주제로 두 인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발표가 이어졌다.

이성웅 시장은 “백두산 북쪽 끝자락 용정 출신 윤동주 시인과 백두산 최장맥 남쪽 끝자락 광양의 정병욱 선생의 만남은 한국 시문학사의 꽃을 피우는 운명적 사건이며, 광양 섬진강 망덕포구의 정병욱 선생 본가는 ‘우정’이라는 이야기를 간직한 역사적 공간”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선생의 문학사적 조명을 통해 가옥의 의미 있는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문 의장은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재조명과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후대로 이어지는 우리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오늘 심포지엄은 그 의미가 참으로 크다”며 “지방분권과 지역특성화가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지역의 특성화된 문화자산을 발굴하고 개발해 문화와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글로벌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흥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윤동주 시와 자아 성찰의 얼굴들


윤동주의 작품을 독해하고 종합적으로 해석하면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 ‘자아의 여러 얼굴들’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자신의 일부이면서 서로 분리 혹은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복수의 존재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윤동주의 시에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서 자주 등장하는 자기 성찰은 성년의 세계에 진입하는 젊은이의 불안감과 고뇌에 직결되어 있다. 그의 시선과 표정은 세상을 달관한 노인의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인생행로나 사명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장년기의 투사 혹은 지사(志士)와도 거리가 멀다.

이들과 달리 윤동주 시의 자화상은 망설임, 후회, 미련, 애착, 그리움 등의 감정이 이상, 책임, 용기, 결단, 헌신 등과 같은 공적 가치와 엇갈리면서 만들어 내는 긴장과 흔들림으로 표현된다.

후회, 연민, 흔들림, 망서림 등의 불안한 감정으로 얼룩진 그의 자화상은 창작 당시의 연령탓이기 보다 윤동주가 자신의 삶과 시대를 바라보는 태도 및 입지점에 더 깊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뿌리 뽑혀진 영혼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가운데, 사람의 삶이 마땅히 간직해야 할 모습, 지켜야 할 자리, 걸어가야 할 길 등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불안하고 연약하며 초라한 현재를 비추어 볼 때 떠오르는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런 뜻에서 이 부끄러움은 어둡고 누추한 현실에 굴종하거나 타협적으로 안주하기를 거부한 젊은이가 자아의 갈등하는 얼굴들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고통의 심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권두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백영 정병욱 선생의 생애와 학문


백영 정병욱 선생은 1922년 경남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은 하동군 금남면에서 보냈고 1934년부터 1939년까지 동래고보에서 수학한 다음,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것은 1940년 4월이다. 연희전문 입학 당시의 학적부에 기재된 주소가 광양군 진월면 망덕리 22번지다.

연희전문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기거했다. 이 기숙사에서 만나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이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윤동주 시인이 나이로는 5년 연상이고, 학년은 2년 위였다. 정병욱 선생과 윤동주 시인이 때로는 ‘살과 뼈를 나눈 형제’처럼 정다운 사이였고, 때로는 ‘독서와 산책’을 함께 하는 친구였고, 때로는 ‘민족과 문학의 앞날’을 논하는 동지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는 최초의 독자였던 정병욱 선생은 시인의 자필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부중 한부를 받게 된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된 후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된 정병욱 선생은 이 원고를 모친께 맡겼고, 해방과 함께 진월로 돌아와 1947년 이를 시집으로 간행했다.

백영 선생은 서울대학교에 적을 둔 이후 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명한 문학가의 작가론, 작품론을 염두에 두고 방대한 문헌을 섭렵한 적이 있으며, 한국문학연구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새로운 연구방법론에 대한 확고한 주관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유명을 달리한 시기는 서로 달랐지만,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선생은 한국문학사와 한국문학연구사에 길이 빛날 족적을 남긴 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 김응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한글과 시혼을 지킨 윤동주와 정병욱


운동주 시집이 존재하게 되는 과정에는 규암 김약연 선생과 고종사촌 송몽규, 벗 문익환 등이 있었다. 그런데 연희전문에 입학한 윤동주가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글벗을 만났으니 그가 정병욱 선생이다. 단 한권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가 남기가지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통째로 사라질 뻔했던 육필원고 묶음을 바로 후배 정병욱과 그 가족이 보관하여 세상에 알린 것이다.

1940년 4월 처음만난 윤동주와 정병욱은 살아갈 길에 평생 동행하는 길벗이자, 시를 함께 읽고 평했던 글벗이었으며, 영원한 우정을 나눈 영벗 이었다.

윤동주의 한글 유고가 섬진강가의 한 양조장집 마루 밑에 숨겨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영혼의 기록은 1948년 유고시집이 간행된다. 당연히 ‘진월면 망덕리 외망마을 23번지’에 1925년에 지어진 양조장 집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로운 사연을 품어왔던 공간이다. 이제 어떻게 사용하여 그 의의를 찾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윤동주 유고가 보관됐던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와 정병욱을 회상하는 공간 △장소애(場所愛)을 일으키는 고향의 공간 △민족정신을 향한 친근한 공간 △한류를 향한 국제적 공간 △항시적인 후원조직, 윤동주 학회 등과 관계형성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이제는 윤동주의 윤동주의 시혼이 숨겨져 있던 정병욱 교수의 집이 보존되어야 할 차례다.
광양에 가면 반드시 윤동주와 정병욱의 영혼이 깃든 집에 들러 저분들의 영혼을 기억할 수 있도록 광양을 사랑하는 분들의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 윤인석 성균관대학교 교수
이야기가 있는 정병욱 가옥의 미래를 그려보며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가옥은 정병욱 교수가 기거하던 고택이라는 점,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해 온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사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한글로 작성된 시고가 두분의 우정과 신뢰로 보존됨으로써 해방 후에 시집으로 간행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건축적ㆍ국문학사적인 의미가 크다.

가옥의 활용계획으론 △윤동주 생애실 △정병욱 생애실 △영상실 △어린이 문학관 △양조장 재현 등이 필요하다. 장기 보전 방안으론 기증이나 매입을 통한 가옥의 소유권 이전과 윤동주 유고 보존 기념관 등록,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보존관리 주체로서 지속 가능한 관리운영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지역 축제 연계 △문학과 관련한 컨텐츠 이용 △지역학교와 연계 △지속적인 재원조달 계획 수립 및 시행도 병행돼야 한다.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가옥의 현재 상태는 고착 상태로 지구단위 계획은 세워졌으나 체계적, 장단기 계획이 없다. 왜 지자체에서 소유권을 확보 해야만 각종프로그램(문화해설사, 간이화장실 설치 등)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소유주의 바람은 소박ㆍ간단하다. 집주인으로 하여금 소외ㆍ무시당하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과 집 주인이 생업에 큰 지장을 받지 않도록 피크타임에는 문화해설사(시간제)지원, 간이화장실 설치 등을 바라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소유주가 일상의 생활을 하면서도 미래에 중요한 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초보적인 보전조치를 하는 것이다. 시청에서 구입은 가장 마지막 단계의 목표로 설정하고 우선 가능한 프로그램 유치와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광양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