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면 청암마을에는 짙은 녹음이 내려앉았다. 텃밭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사는 부부도 여일하다. 농부네 텃밭도서관 주인장 서재환(58)-장귀순(51)부부의 삶은 여느 시골집 풍경과 다르지 않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 삶속에서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그것을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일 터이다.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봄날 찾아간 텃밭도서관에서 농부네 부부는 30년 전 찍은 사진 한 장을 내놓았다. 사진 속에는 삼십대 젊은 부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살 박이 아이가 물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신만만함 혹은 젊은 치기가 남아 있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표정에는 행복이 듬뿍 묻어난다. 사진 속에 큰 아이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태어났다.

이 부부가 이렇게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사연은 남다르다. 이들 부부가 아직 젊은 처녀 총각시절이었던 80년대 초, 그때는 연애결혼도 흔했고 부모가 맺어주거나 소개를 받아 결혼하는 중매도 흔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부부의 결혼은 중매와 연애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 부부는 편지로 맺어졌다. 당시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펜팔을 통해 서로를 처음 알았던 것이다.

그때가 1981년, 서재환 씨가 스물여덟, 장귀순 씨는 이제 갓 여고생 티를 벗은 스물한 살 때다. 농부의 입장을 살피자면 순천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왔던 그는 펜팔로 연애를 하기에는 좀은 늙은(?) 나이에 ‘샘터’라는 잡지를 통해서 경북 안동처녀 장귀순 씨의 주소를 받아 결혼작전에 들어간 것. 샘터는 작고한 아동문학가 정채봉이 주필로 있던 그 잡지로 지금도 독자들의 사랑이 여전하다.

펜팔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벌인 쪽은 서재환 씨다. 아무래도 결혼이 급한 쪽은 농부 쪽이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로서는 스물여덟이면 노총각이었다. 배고프면 찬밥 더운 밥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며 “집사람과 펜팔 할 때 전에 읽었던 시집과 소설 등 모든 미사어구를 동원해 갖은 방법을 통해 꼬셨다. 당연하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그 옆을 지키던 안주인가 함박웃음을 매단다.

그렇게 주고받는 편지가 1년 6개월 동안 40여 통이다. 그리고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다 용기를 내 안동을 찾은 농부에게 보수적인 안동 분위기와는 달리 장인은 선뜻 딸을 내주겠다고 허락했다. 딱 한 번 보고 결혼을 약속한 셈이다.

이 대목에 이르자 안주인은 “처음 보고 결혼을 허락한 아버지가 저녁에 어머니께 많이 혼나셨다. 딸을 내버리듯 줬다고. 하지만 제가 싫었다면 이 사람을 따라 나섰겠냐”며 “다 마음이 있었던 거지”라고 했다. 너무 솔직한 안주인의 말에 주위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진다.

그렇게 전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가 만나 산 세월이 30년이다. 이제 펜팔을 하던 처음 그 설렘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랜 정과 믿음, 그리고 함께 있어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농부네 부부의 얼굴이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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