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 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초등학교(우리시절엔 국민학교다) 6년 내내 한 반에서 함께한 동창들이 있다. 시골이다 보니 학생이 많지 않아 50여명 되는 친구들이 함께 생활 했었다.

중간에 선생님의 딸 한 명과 오누이 둘이 전학 온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멀리 전학을 간 친구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가까워 오다보니 그런 친구들과 지난 시절들이 그리워 SNS의 유익을 보며 다시 만나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리던 그 얼굴들이 실루엣만 희미하게 남아 있고 어느새 지긋한 나잇살들이 남녀 모두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들이다. 성적과 상관없는 삶의 자리들도 그렇고, 여전히 살아가기에 허덕이는 이도 있고 어느새 자리를 잡아 제법 넉넉함으로 친구들을 섬기는 이도 있다.

워낙 산골짜기 깡촌이다보니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객지로 나가 온갖 고생들을 하면서도 천성이 착한 친구들이다 보니 세상의 모진 풍파에도 닳았어도 어릴적 그 맘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아낌없이 친구들을 위해서 허세 부리지 않고 섬기는 모습이 귀했다.

오래간만에 번개팅으로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뿔뿔히 흩어져 살던 친구들이 일찍들 내장산으로 모였는데 웬지 한가하다 싶더니만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의 얼굴이 반가움에 홍조를 띠고 그렇게 오른 산 곳곳에 수줍은 듯 단풍든 나무들 사이로 산골 태생의 피를 못 속이고 산책하듯 산을 오르내렸다.

산을 내려와 정읍을 거쳐 근처 선운사와 보리암의 산책로로 마지막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의 집을 끝으로 하는 여정 속에서 많이 웃고 즐거워한 시간들이 금새 지났다.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이 고맙고, 그런 와중에 내 맘을 감동시켜 준 일들이 있다.

사실 초등 동창들 중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대학에까지 진학을 하진 못했다. 그때만 해도 일찍 산업 전선에 가거나 멀리 직장을 구하러 떠나는 일이 보편적이었으니까 고등학교 정도까지의 학력이 대부분이고 다들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했다. 그런 친구들과의 대화 내내 나는 주로 많이 듣는 편이다.

가만 들어보니 아무래도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이것 저것 조심스레 그간 사회생활 가운데 있었던 종교인들에 대한 인상들과 그런 가운데 느낀 일들로 조언하기도 하고 묻기도 하며 조심스레 충고한다. 나쁜 목사가 많더라 에서부터 여타 부끄러운 부분들에 대한 친구들의 이야기에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있었고, 어떤 친군 아예 내게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네들의 이야기가 다 싫지 않았다. 애정과 깊은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진심어린 이야기들이었기에 비록 학교의 배움은 부족했어도 사회생활과 경험 가운데 터특한 지혜와 조언은 내게 더 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명하지 않아도 진실한 목회자 친구가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내게 그런 사람이 되라 한다. 가을 여행을 통해 몸은 피곤하지만 산과 사람에게서 얻은 배움은 잠시 침침하고 한 켠에 쏠렸던 눈과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고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가을 여행이 많은 계절이다. 며칠 전 보았던 영화의 대사가 인상깊다 "우리가 장소를 떠날 때 우리 스스로의 무언가를 뒤에 남기고 간다.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나 짧은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여행하는 것은 스스로의 고독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고독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인 아닌가? 그게 우리가 왜 삶의 마지막에서 후회 할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이유가 아닐까?" (영화 “리스본행 열차"중 아마데우의 독백 중에서) 깊은 고독과 사색을 통해 얻는 지혜를 말하고 있다.

여행이 주는 이익, 산과 사람을 통해서 주는 배움들, 개인적 고독과 삶의 질고 가운데 터특해 가는 지혜들 모두 열린 마음의 눈과 귀를 가지면 보이고 들린다. 특히나 아이에게까지도 배움이 있다 하지 않던가!

이 아름다운 계절 자체가 주는 가르침과, 사색하며 고독하게 하는 계절의 메시지와, 서점과 집안 어느 켠에 먼지 쌓인 책의 어느 한 줄에서 얻는 인상 깊은 이야기들과, 좋은 영화에서 들린 감동등등 이 가을의 많은 여행들 속에서 삶을 지혜롭게 할 가르침들에 귀기울여 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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