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 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기원전 8세기 고대근동의 대국들이 휴면기에 들어갔던 시기가 있었다.
아람이라는 나라는 쇠퇴기를 맞이했고, 강력한 앗수르도 아람과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견제하며 아직 제국으로서의 패권을 정착시키지 못했던 과도기였다.

이러한 주변 열강들이 잠시 주춤한 상황을 틈 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짧은 기간에 전무후무한 번영기를 잠시 누린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남북 이스라엘은 점점 신앙과 사회윤리가 파괴되고, 사회적인 불의가 판을 치고,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온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사회적 기강의 해이는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의 상황으로 치닫고 결국 패망의 길로 가고 만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꼭 반세기 전 우리 한반도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하다. 패전 이후 미국의 눈치를 보며 조심했던 일본, 중국은 사회주의의 부작용으로 잠시 잠을 자고, 구소련은 미국과의 냉전으로 한반도까지 못 노려보는 사이 북한과 남한은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마치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이 주변 열강이 주춤하는 사이 전무후무한 번영기를 잠시 누렸던 때와 유사하다.

그러나 그 때 이스라엘은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하여 차례대로 멸망하고 만다. 격동의 시기에 번영의 정점을 찍지만 부패와 부도덕 그리고 넘치는 탐욕이 스스로를 삼켜버리고 만 것이다. 우두머리들은 뇌물과 권력을 위하여 재판하고, 종교지도자들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가르치는 자들은 돈을 위해서 일하면서도 나름 잘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살아간다. 돈이 최고의 가치로 드러난 현실 가운데 사람에 대한 존경도 도덕도 헌신짝처럼 버린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오늘날 우리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탐욕의 형태들은 대부분 땅에 대한 욕심으로 나타난다. 땅은 결코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며 이것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 인간이 잠시 빌리고 그대로 또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땅이다. 만일 이러한 땅에 대하여 후손에게 잠시 빌린 청지기의 마음을 잊는다면 이는 다양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사회와 국가간의 부정적인 결과들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우리 뿐 아니라 이미 상당수의 나라들이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흥망성쇠를 거듭한 것은 역사가 수없이 많이 증거하고 있다.

땅에 대한 욕심은 거국적으로는 부동산 투기로 발전된다. 이는 곧 소유 여하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커지게 되고, 이는 우리나라 땅 값으로 북아메리카의 어떤 나라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거품경제가 커지게 되고 급기야 터지기 직전에는 모든 것이 정체되는 것 같은 순간들이 다가오고, 어느 날 여지 없이 거품이 터지면 파산이 속출하게 된다.

이러한 거품경제는 사회적 불의와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리고 오래전 땅에 대한 탐욕은 제국주의의 식민정책과 착취의 산물로 다양한 문제들이 유발된다. 독도의 문제도 그렇고, 센카쿠와 크림반도의 일들이 그렇고,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분쟁들, 그리고 남중국해에 대한 소유권 분쟁들, 쿠릴열도나 카슈미르, 포클랜드와 신장웨우얼등등 수많은 국경선과 해안선을 둘러싼 국제영토분쟁이 끊임없이 이 시대의 잔인한 테러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오늘 이 나라가 여전히 색깔 논쟁에 휩싸이고, 삐라가 등장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광인들이 천방지축 날뛰며, 얼어버린 경제에 오히려 더 찬바람을 일으킨다.

이러한 혼돈 속에 자리잡는 것은 독재다. 기득권자들은 민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다른 일들로 정신없게 만든다. 이전에 없던 당황스러운 벌금이며 월급 빼고 오르는 수많은 직_간접 세금들… 거기다가 더욱 기운 빠지도록 입법부도 제 역할을 거부하고, 사법부는 정의와 너무도 거리가 멀고, 행정부의 수장과 부서들은 무능의 극치를 달리며 복지부동 한다. 사회의 혼탁함에 서민들사상 누각을 세우고 있고, 끝없는 나락에 허우적 거린다. 거기다 각박한 현실에 너무도 이기적인 눈빛으로 이웃을 향하여 분노하고 거칠어지는 모습들은 두렵기까지 한다.

잊고 싶은 계절, 그리고 잊혀진 계절 그 정의로운 나라가 될 꿈은 요원한 것인가? 지금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인가? 대로 자괴감도 들지만 역사는 늘 소수의 깨어있는 민중에 의해서 명맥과 생존을 이어온 것을 기억하면 다시 잊혀져서는 안될 계절을 안고 싸움의 한복판으로 달려간다.
지금 우리는 다시 회복을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 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많이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기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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