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 라종렬 광양사랑의교회 목사
약 50여명이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수도원처럼 함께 동거숙하며 훈련받는 동안 하루의 일과표가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빡빡하게 돌아간다.

하루 중 1시간 정도는 노동하는 시간이 있다. 종일 책과 씨름 하다가 무리가 될 수 있기에 산책이나 운동하는 시간도 따로 갖고 있다.

노동은 간단한 청소에서부터 설거지를 하거나 야외에 있는 텃밭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종류들을 3주씩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지난 6주 동안에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공부하면서 준비하다보니 아침은 주로 빵으로 먹는다. 계란이나 양배추나 양상추와 야채를 곁들여서 스프나 우유 그리고 시리얼도 함께 먹는다. 아침에 모두가 먹을 야채를 썰고 씻고 끓이는 일들, 우유를 따뜻하게 데우는 일들까지 다들 서투르지만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다.

지난밤에 설거지 하는 팀들이 엎어놓은 그릇들도 정리하고 이러저러한 일들까지 준비하다 보면 훌쩍 아침 시간이 다가온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메뉴들로 인해 조장의 인솔에 따라서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어느새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 같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그 표정들을 배식대 너머로 보인다.

빵을 직접 굽진 않는다. 시중에서 파는 식빵을 가지고 쓰는데 그냥 먹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간단하게 구워서 먹는다. 그래서 이 빵을 굽기 위해 주방에는 널따란 철판이 마련되어 있다. 빵을 구워내는 넓다란 쟁반을 준비하고, 버터랑 티슈도 준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판을 적정 온도로 다구기 위해서 가스불의 화력을 잘 조절해야 한다. 일정하게 온도가 되었다 싶으면 버터를 두른 뒤에 식빵을 올려 준다. 한번에 15장씩 갈고 금새 처음부터 다시 뒤집어 낸다.

어느새 노릇노릇 구워진 빵을 준비된 그릇에 가지런히 내어 둔다. 너무 오래두어서 태우거나, 또 발리 꺼내서 덜 구워졌거나 하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취향들이 다르다 보니 선택한 방법은 아주 조금 구운 것에서부터 적당한 굽기까지 순서대로 구워 낸다.

빵을 굽는 시간 내내 참 행복했다. 함께 아침을 준비한 이들과의 대화와 그렇게 준비한 아침을 학우들이 와서 맛있게 먹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고 예쁘게, 맛있게, 깔끔하게 준비했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준비하는 동안의 수고를 잊게 하고 더 즐겁게 했다.

그래서 계란을 담아내도, 과일을 담아내도, 여러 야채들을 내어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정갈하게 그리고 가지런히 담아내려고 했었다. 각자 준비한 부분에서 스프가 잘 풀어졌다거나, 야채가 잘 썰어졌다거나, 계란이 잘 삶아졌다거나 하는 일들 모두 하나하나 지난 대화들이 정겨웠다.

어머니와 아내가 생각이 났다. 물고에 물들어가는 것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은 아깝지 않다는 말이 있다. 소싯적 가마솥에 밥을 하다가 석유곤로가 있었고, 이어 전기밥솥이랑 가스가 공급이 되면서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학창시절은 대부분 아침을 준비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찬 물에 손 안 담그게 하겠다는 말이 생각났다. 물론 그런 말을 아내에게 하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방에 들어가 처음 찬물에 손을 담글 때마다 이렇게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아니 정말 귀하고 고맙고 수고로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밥을 지어낸 것을 늦었다고, 바쁘다고 한 술도 못 뜨고 나가는 자식이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기숙사에서도 아침 대신 잠을 대신하는 이들도 있다. 야속한 마음도 들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자식이나 남편에겐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국물 한 숟갈 입에 넣고 엄마가 해준 밥이 최고라는 말 한마디, 당신이 끓여준 국은 정말 시원하다는 칭찬 한마디 그 수고로움을 보람으로 이끌게 할 것이다.

아침을 많이 거르는 시대인 듯하다. 근무 여건도 그렇고, 식성도 그렇고, 맞벌이로 인한 환경도 더더욱 가족이 함께 아침 식탁을 대하는 시간도 줄어든 듯하다.

빵을 굽거나 아침을 준비하는 마음과 더불어 잃어버린 많은 소중한 것들이 아쉬워진다. 그런 사랑을 받아야 누군가를 또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터인데, 이 사랑이 고픈 세대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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