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SBS드라마 ‘뿌리깊은나무’의 클라이막스는 아무래도 한글 반포 과정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소이일행은 아이들과 거지를 모이게 한 후 노래를 가르친다. 가갸거겨...한글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부르며 저잣거리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직도 그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다. 한글은 백성들 속에서 노래로 퍼지며 그렇게 기습적으로 들불처럼 역병처럼 퍼졌던 것이다.

이렇듯 동요의 갈래 중에 '참요'가 있다. 대개의 구전 동요가 역사 현실과 무관하게 발생하는데 비해, 예언의 동요인 참요는 역사와 연관이 있다.

조선시대에 숙종이 장희빈의 미색에 빠져 인현왕후를 폐위시키자, 장안의 아이들이 '미나리요'를 부르고 다녔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시사철"이라는 노랫말의 예언대로 장씨는 몰락하고 민비는 복위되었다. 동학혁명이 좌절되기 전에는 전봉준의 패전을 예언하고 애달파한 '파랑새요'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근대의 참요로는 광복 직후 유행했던 '미국사람 믿지 마소요'를 들 수 있다. "미국사람 믿지 마소 소련 사람 속지마소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소'라는 가사는 현실을 통찰한 민심을 보여준다. 지도자들이 그 민심을 외면하고 천심을 거스른 결과가 동족상잔의 전쟁과 분단이었고, 그로 인한 질곡이 우리 삶을 아직 옥죄고 있다.

이처럼 민중은 예로부터 정직하게 현실을 꿰뚫어봐 왔지만, 지도자들은 오히려 늘 진실을 외면해 왔다. 진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고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광양시민신문 출범도 마찬가지다. 정직한 시민들은 본질을 대번에 간파했다. 그래서 지지하는 창간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고, 3개월이라는 긴 시간 틈틈이 준비하는 기자들 곁에서 함께해 왔다. 대부분 생업을 꾸려가기에도 빠듯한,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외친 것도 아니었다. 동요인 참요처럼 저마다 제 발로 쭈뼛쭈뼛 모여든 이들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생매체, 아니 고생길에 자발적으로 풍덩한 현직 기자들도 대단하지만, 낮은 자리에서 기꺼이 창간 기자들의 손발이 되어주고, 주주모집에 나서 준 운영위원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한마디로 세상 살 맛이 났다. 성별·연령·학력·소속·지위·재산·거주지, 이런 것들이 아무 의미도 제약도 되지 않는 성숙한 시민단체가 하나 태동된 것이다. 이름 하여 광양최초 시민주 독립언론 ‘광양시민신문’ 이 그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 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광양시민신문>창간을 외면했다. 극소수 개인을 빼고 언론인도, 학자도, 문인도, 정치인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지역 대부분의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또한 침묵의 카르텔은 기묘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덕분에 자기 울타리에 안주하고 있는 진실(?)이 언제까지 감추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세상에 비상식적인 일이 한두 가지이고 억울한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말 그대로 ‘지역에 신문이 몇 개며, 1년도 못가 문 닫을 건데, 왜 광양시민신문으로 가느냐’ 하는 무뇌아들은 제껴두자. 하필 광양시민신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반문해도 좋다.

그러나 <광양시민신문> 창간은 결국 언젠가 곪아서 터질 수밖에 없게 형성되었던 우리 지역의 사회 환경적 조건이 농익어 터진 한 극점이다. 만물이 극단에 이르면 소멸하고 정반대의 것이 일어나게 되는데, <광양시민신문> 창간이 그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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