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낭비’ 책임은 누가지나

진월면 망덕포구에 세워져 있던 윤동주 시비가 별다른 논의 없이 철거된 뒤 방치되고 있는 가운데 활용계획마저 뚜렷이 마련되고 있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5천만 원 가량이 소요된 시비가 활용되지 못한 채 폐기될 경우 사업 타당성 검토와 추진과정에 대한 비난과 함께 예산 낭비라는 지적마저 자초하는 모양새다.

윤동주 시비는 일제에 저항하다 일본의 차디찬 감옥에서 옥사한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친필유고가 진월면 망덕리에 있는 정병옥 교수 가옥에서 발견돼 출간하게 된 뜻 깊은 인연을 되새기기 위해 지난 2010년 2월 제작된 것으로 선소리 마을 어귀에 폭 6m, 높이 2.8m 사각형 화강암 재질로 이뤄져 있다.

시비 제작단계에서부터 주민의견 등을 거쳐 새길 시(詩)와 장소를 선정하는 등 주민의사를 반영했고 제작비는 약 4500만원이 소요됐다. 시비에는 서시와 함께 전 국민이 애송하는 ‘별 헤는 밤’ 전문과 윤동주의 친필을 새겨져 있고 시비 뒷면에는 윤동주와 망덕포구의 인연을 상세히 적고 있다. 이후 윤동주 시비는 진월면의 대표적인 사진촬영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윤동주 시비는 광양시가 지난해부터 진월면 망덕포구에 대한 관광명소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라졌다. 별다른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고 철거한 뒤 방치한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폐기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관광명소화 사업을 추진한 관광진흥과가 “윤동주 시비가 조악하다는 시의회 몇몇 의원들의 지적이 있어 철거했다”고 밝힌 부분에서도 이 같은 의도는 일정부분 드러난다. 그러다 문제가 일자 수차례 거짓 해명을 하다가 “공사과정에서 일시 철거했다 다시 건립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이 역시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활용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연찬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관광진흥과는 지역구 의원 등에 의견을 물어 철거했다는 입장이지만 이 과정에서 주무부서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것이 문화홍보실 문화재 팀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시비 철거와 관련해 (관광진흥과에서)전화상 문의를 해온 적이 있다. 하지만 시비철거는 맞지 않고 데크 확장을 통해 전망대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시비가 철거된 것으로 안다”고 확인해줬다. 시비 관련 주무부서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철거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결정으로 시비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4500만원에 달하는 시 예산이 2년도 안 돼 ‘예산낭비’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책임소재도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문성필 광양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사례는 시 예산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시각을 드러낸 것 같아 입맛이 쓰다”며 “공직자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세금 수천만 원이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성웅 시장은 기회가 되면 수시로 업무연찬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이 시장의 의지는 실과로 내려가면 그저 ‘지나가는 말’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업무연찬이 제대로 안 돼 탱크터미널 소송 등 불필요한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한 사례가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렇게 낭비된 예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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