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용지마을 팔순·칠순 합동 축하잔치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이 하교하고 있었다.

금호동에 조성된 숲으로 아이들의 자전거가 하나 둘 사라질 때쯤 알 수 없는 먼지가 시야를 뿌옇게 흐렸다. 이어 태인동과 연결된 다리가 나왔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창문을 서둘러 닫았다. 태인동 용지마을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 9일 용지마을에서 팔순과 칠순을 맞은 어르신들이 합동으로 동네잔치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위해 방문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인지라 이색문화처럼 느껴졌다.

마을에 도착하자 이장님의 마을방송이 마을 곳곳으로 정겹게 울려 퍼졌다.

팔순, 칠순을 맞이하신 다섯 분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마을회관 앞에 자리를 마련하고 음식을 준비 했으니 참석하셔서 함께 식사하며 축하 하자는 내용이었다.

기쁜 날을 기념해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우리가 평소 잊고 있는 사람의 정이 있었다.

삶 속에 지쳐 서로를 돌아 볼 겨를도 없이 본인만을 생각하며 사는 요즘, 대조적인 광경을 보고 스스로가 얼마나 허기지게 살았는지를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하얗게 세신 어르신들이 회관 앞으로 모이기시작했고‘ 최영운 선생 팔순, 김재찬·김재생·김종필·김재영 선생칠순’ 합동 축하잔치가 시작됐다.

마을을 울리는 축하의 박수소리에 오늘의 주인공인 네 사람은 가슴에 단 꽃보다 더 활짝 미소를 피웠다.

이날 팔순을 맞은 최영운 어르신은“ 한 마을에서 얼굴을 맞대고 여태껏 별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마을 주민들의 덕분”이라며“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나. 항상 서로 돕고 좋게 지내면서,마음을 좋게 가지고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이어 올 해 칠순을 맞이한 어르신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김종필 씨는 감사의 인사를 하기 전 주머니에서 미리 적어온 메모지를 꺼냈다.

한줄 두 줄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인사말로, 자신과 참석해 주신 모두의 지난 삶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편지였다.

“이 동네에서 태어난 제 동기가 10명이 있었습니다. 1명은 세상을 떠나고 몇 명은 객지에 있고 이렇게 우리 네 명이 이곳에서 오늘을 맞이했습니다”함께 나고 자란 친구들의 기억을 더듬는 김종필 씨의 울먹임에 가슴이 찡했다.

듣고 계시던 마을 할머니들도 지난 세월들을 되짚는 편지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조용히 눈 주위를 훔쳤다.

김종필 씨는“ 주민들의 보살핌 덕분으로 고희를 맞이한 친구들과 그 은덕을 어떻게 되돌려 드릴지 궁리한 끝에 주민들을 모시고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자는 뜻을 모았다”며“ 소찬이지만 음식을 준비했으니 많이 드시고 즐거운 시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케이크 절단식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르면서 어떤 능력을 다해도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사진으로도 글로도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인간의 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용지마을, 이곳이야 말로 뿌연 매연 속에 가려져 저 너머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 책임을 다해 살아오신 용지마을 어르신들, 그리고 올 해 팔순과 칠순을 맞이하신 네 분의 앞날에 건강과 평온만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태인교를 건넜다.

최난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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