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의 쉴만한 물가

직장생활에 힘들어 하는 도시인들이 가끔 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농사가 쉬워보이나? 하고 반문합니다. 이 세상에 제일 힘든 일이 땅을 파는 일입니다. 거기다가 농사로 먹고 살기도 더더욱 힘들어가고 있으니 낭만적 전원만 꿈꿀 수 없는 현실이죠.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사실 농사일에 있어서 땅을 파는 일만 힘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때를 알고 적절한 때에 농사일을 하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벼를 재배하는 일도 미리 좋은 품종의 볍씨를 준비하고 싹을 틔워서 적절한 시기에 모자리를 만들고, 웃자라기 전에 모내기 날짜를 잡아 품꾼들을 불러 일을 하고, 물을 대거나 병충해를 관리하거나, 김을 매는 일, 장마에 관리하는 일, 가을이 되어서 벼가 익어갈 때, 도구를 쳐서 바짝 쌀이 익어가는 시기를 따라서 수확을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적당히 말려 매상을 하거나 방아를 찧어 쌀을 만드는 데까지 참으로 많은 손이 갑니다. 지금에야 이러한 일들 농사 월력을 따라서 메뉴얼들이 나오고 기계화가 많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 그런 것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때를 따라서 그 힘든 일들을 잘 해 가셨는지 참 신기했습니다.

남쪽 하늘에 있던 삼태성이 산 끝에 걸리면 곧 날이 새는 줄 알고 일어나 새벽밥을 지었고, 구름이 낄 때면 멀리서 우는 첫 새벽 닭 울음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때론 고단한 몸이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 태반이라고 했습니다. 모내기를 할 때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면 일을 언제 끝낼지 모르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보리쌀 갈 듯 드르륵 드르륵 울면 아직은 이르고, 딱딱딱딱 하고 급하게 울면 드디어 일을 멈췄다고도 합니다. 귀한 딸은 일찍 들여보내 보리쌀 가는 소리가 드글드글 여유가 있는데, 미운 며느리 늦게까지 일시키고 들어가 바쁘니까 보리쌀을 딱딱딱딱 급하게 가는 소리와도 같이 개구리 가 운다고 했습니다.

봄에 쑥국새가 많이 울면 날이 많이 가물다고도 했습니다. 쑥국쑥국 밤새 울음소리 들리면 오지 않는 비를 기다리는 농심이 더욱 타들어 갔겠죠. 추수 때가 되면 소쩍새 울음으로 풍년을 가늠했습니다. 소쩍새 소쩍소쩍하고 울면 솥이 쩍하고 벌어지거나 솥이 적다고 풍년이 든다 했고, 소탱소탱하고 울면 흉년이 들어 솥이 비어 탱탱거리는 소리 내는 거라 했습니다.

오랜 연륜을 존중하고 자연과 벗 삼아 살던 선인들은 복잡한 일정 가운데서도 때를 놓치지 않으며 살았는데, 오늘 우리는 스마트한 일정 속에서도 왜 이리 분주하게 살며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지... 너무 흙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내기 한창인 분주한 농촌에 일손도 덜어줄 겸 잠시 일상을 떠나 다녀오면서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일생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돌아보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 때를 아는 지혜를 좀 얻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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