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농가의 눈물겨운 외로운 싸움 끝은 어디인가

소득 없었던 상경집회 투쟁...“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매실에 이어 농가에 연간 100억원이 넘는 소득을 안겨주며 광양시 효도 농작물 2위에 올라있는 광양시 대표 작물 애호박. 그런 광양애호박과 이를 재배하는 진상면의 애호박 농가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늘 주문하던 농협종자센터에 같은 종자를 주문하고 이를 나주영산강육묘장에서 납품한 모종을 심었지만, 제대로 자라지 않고 성장 과정이 불량하거나 추위, 병충해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등 약 8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두 번의 애호박 유전자 검사 결과 18농가의 애호박 품종이 농협애호박이 아니거나 다른 품종과 섞여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농협종자센터와 나주영산강육묘장에 책임을 물었지만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회피하고 있다.

결국 진상 애호박 불량종자 파문은 법정 싸움까지 가게 됐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농협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싸워야 하는 광양 농민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광양시민신문은 지역의 농협도 행정도 힘이 돼 주지 않는 진상 애호박 농가들의 외롭고 힘든 싸움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23일 진상원예작목회 애호박 종자사고 대책위원회(위원장 백순선)가 농협중앙회 건물 앞에서 방역기 소독 연기를 내뿜고 애호박을 던지며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감행했다.

이번 상경집회에는 대책위와 피해농민, 광양한농연 하흥일 회장 외 회원, 진상농협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가했다.

대책위는 “불량 종자 사고가 터진지 7개월이 지났는데도 농협종묘센터는 3자가 합의한 합의서조차 번복하는 등 주인의 피 섞인 목소리조차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며 “말로는 조합원이 주인이라고 해놓고, 종이 뒷짐 지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기가 막히다. 농협중앙회는 즉시 나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등 사태해결에 임하라”고 비난했다.

또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음에도 자신이 만든 종자를 자신이 모른다면 누가 알겠냐”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추태를 접고 책임인정과 피해보상 등 3자가 합의한 합의서대로 즉각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대책위의 집회가 한시간 반쯤 이어지자 농협중앙회 측은 농협중앙회 경제상무와 농협종묘센터 사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자를 내세워 합의서 작성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이후 6시간 30분 동안 줄다리기 협상이 진행됐지만 ‘공급된 육묘에 대한 입증책임’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합의서 작성에 실패하고 차후 재 논의하기로 한 뒤 광양으로 돌아왔다.

백순선 위원장은 “이번 상경집회 강행이유는 피해농가와 농협종묘센터, 영산강육묘장 등 3자가 합의한 합의서를 종자센터 측이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며 “말바꾸기에 이어 농협의 책임인지를 농가가 증명하라고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제대로 증명해 낼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농협 종자센터 측의 책임인정은 검찰 수사 등으로 입증 될 경우에 민·형사상 법적인 책임을 질 것이고, 그것도 조사가 확정된 후에 하겠다고 한다”며 “그때가 언제가 될 지, 우리가 검찰 수사에 얼마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다. 자칫 법원에서 무혐의 처리가 돼버리면 보상 근거도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불이행된 3자 합의 내용

지난 5월 6일 진상면 진상농협 2층 회의실에서는 우윤근국회의원사무소 주관으로 애호박 불량종자 원인을 규명하기위해, 피해농가와 농협종자센터 대표, 영산강육묘장 대표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작성된 합의내용은 먼저 영산강육묘장 측이 보유하고 있던 애호박 종자 2봉지(2012년 5월, 2014년 7월 각각 포장)를 국가기관인 국립종자원에 유전자검사(밀봉조작여부 포함)를 의뢰해 밀봉조작이 없을 경우 2봉지에 대한 유전자검사(5월 11일)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국립종자원에서 실시한 유전자 검사결과(농협종자 여부)에 모두 승복하고, 위증자는 농가 피해액(8억원)에 대한 손해배상(6월 15일 17시까지 피해금액 전액 현금 일시불 지급) 및 민형사상 책임을 지기로 했다.

이어 농협종자센터나 영산강육묘장 등 두 곳 중 한 곳이 원인 제공처로 밝혀질 경우, 피해금액에 대한 재산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8억원을 초과할 경우는 피해금액을 해당 농가가 감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합의서는 이행되지 않았고 피해 농가들은 이들 업체들을 사기 및 위증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농협종자센터 입장

농협종자센터는 상경집회한 대책위와의 합의문 작성 시도를 통해 입장을 나타냈다.

먼저 현재 국립종자원에 보관돼 있는 2012년산, 2014년산 종자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조속히 실시해 그 결과를 상호 인정하되, 포장밀봉상태 조사 결과 이상이 없고, ‘농협애호박’으로 판정될 경우, 영산강육묘장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고 농협종묘센터에는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서로 동의했다.

그러나 포장밀봉상태 조사 결과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농협종묘센터의 책임으로 타 품종이 섞여 있고, 실제 농가에 공급되었다는 것이 검찰 수사 등으로 입증 될 경우 그에 따른 민·형사상 법적인 책임을 지되, 책임의 범위는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조사가 확정된 후 그 결과에 따라 정한다는 입장을 밝혀 결국 협상을 결렬시켰다.

또 농협 측은 “이번 불량종자 사태를 야기시킨 종자와 관련해 종묘장 측에 보급한 양은 6만주에 불과하지만 육묘장이 농가에 납품한 양은 14만 7천주”라며 “나머지 8만7천주의 육묘를 어디서 갖다가 공급했는지 알 수 없지 않냐”는 주장을 펼쳐왔다.

또 백순선 위원장에 따르면 종자센터의 책임으로 밝혀질 경우에도 종자산업법상 책임만 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피해 농가의 외로운 싸움

피해농가들은 지난해 11월 성장 과정이 매우 불량한 애호박에 대해 영산강육묘장 측에 이의를 제기하며 긴 싸움을 시작했다.

피해농가들의 이의 제기에 영산강육묘장 측은 농가가 주문한 농협애호박품종 씨앗을 파종해 공급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2번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피해농가들의 애호박이 당초 신청한 농협애호박종자가 아닌 타품종이 섞인 것을 확인하고, 농협종묘센터와 영산강육묘장에 내용증명과 함께 진상규명과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양 측 모두 서로 책임을 전가할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자 피해농가들은 도움 받을곳을 찾게 됐고 우윤근국회의원사무실의 도움으로 3자를 비롯한 시의회, 진상농협,농업기술센터 등이 모인 가운데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를 갖게 됐다.

이 자리에서 3자는 국립종자원에 유전자검사를 의뢰해 농협애호박이면 영산강육묘장이 책임을 지고, 농협애호박 종자가 아니면 농협종묘센터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기로 하는 매우 단순하고도 명쾌한 합의안에 동의했다.

피해농가들 입장에서는 조속한 원인규명으로 인해 곧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의 기대는 농협종묘센터 측의 합의 번복으로 물거품이 됐고, 이에 피해 농가들은 언론 호소와 검찰 고소, 1인 시위 및 상경집회 등 강력 대응에 들어갔다.

상황이 이렇지만 광양시나 시의회, 광양시 농협 등은 남 일 보듯 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광양시와 광양시의회는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고, 광양시 농협 또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와 중앙 농협과 관련된 일이라 어느 한 쪽 편에 서기 난감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궁색한 변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검찰 조사는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피해농가들의 고소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평범한 촌부들인 피해농가들이 6개월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또 ‘조합원이 주인’이라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외쳐왔던 농협이 정작 조합원과의 분란이 생기자, 조합원의 주인으로 군림하며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위는 결의문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종을 만들기 위해 수없는 피와 땀을 쏟아왔다. 충고하건대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며 묻어도 진실은 진실로 남을 것”이라고 외로운 투쟁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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