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이 고생하면 주민이 편해요

박현철 이장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막걸리와 함께 떠났다. 동천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노랭이봉 아랫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율곡 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율천교와 덕천마 을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어느새 곳곳에 돌담길이 어우러진 율곡마을이다.

광양시지에 따르면 율곡마을은 율천 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밤실’이라고도 불렸다. 밤은 제사에 꼭 필요하며 신주 위패를 모실 때도 밤나무가 유용하므로 여러 과일 중 밤을 택해 율곡(栗谷 : 밤나무 골)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율곡마을은 장수마을이다. 남녀비율이 9대 1 정도로 남성주민이 10명도 되지 않는 마을이기도 하다. 주 소득원은 매실‧감‧밤 등이며 현재 약 49가구 50여 명의 주민수를 자랑한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던 박현철 이장이 반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 방송이라도할 걸. 오늘 어르신들이 읍에 계모임이 있어서 많이들 안계시네요” 이장직을 수행한지 올해 2년차인 박이장은 6남매 중 차남이다.

박 이장은 젊은 시절 개인사업과 농사일을 같이 해오다 부모님의 건강문제로 사업을 그만두고 지금도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효자이 기도 했다. 게다가 매실과 감은 물론 쌀농사까지 농사일만 15년이 넘은 베테랑 농사꾼이기도 하다.

박 이장은 “우리 마을은 보시다시피 돌담길이 아주 많아요. 덕분에 옛스러운 분위기도 풍기

고 마을 사람들끼리 다툼 하나 없이 화목하죠. 어르신들이 거의 매일 회관에서 점심을 함께 하는데 평소 에도 늘 열댓 분 이상 모여 북적북적합 니다”라고 율곡마을 자랑을 시작했다.

박 이장은 이어 “이번에 100원 택시도 운영하기로 해서 이장이 해야 할 일이 늘었어요. 그래도 고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또 편해지는 주민이 있는 것 아니겠 어요”라고 덧붙였다.

율곡마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마을 인근의 계곡물과 지하수를 주로 사용했 다. 그러나 시가 지난해부터 주민들에게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급수 전을 신설하면서, 간이상수도 등 소규모 수도시설을 이용하고 있던 율곡마을 주민들은 지방 상수도를 공급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 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많았다. 회관에 있던 어르신들은 “수도세가 줄었으면 좋겠다. 공사할 때도 집집마다 백만 원 이상씩 썼는데 막상 수도를 이용하고 나니 매월 들어가는 수도세가 늘어 주민들의 부담만 늘었다”고 말했다.

또한 “시에서 기존에 쓰던 계곡수나 관 정수를 쓰지 말라 한다. 농사도 지어야 하는데…. 수도세만 더 늘어날까봐 물도 함부로 못 쓴다”고 토로했다.

박 이장은 “저희 마을은 10년 넘게 물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지하수는 지하수대로 부족하고 고랑도 멀어서 어르 신들이 고랑물을 사용하기 여간 어려운게 아니죠. 지금은 주암댐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계곡수나 관정수를 농업용수로 라도 사용이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시에 민원은 넣어 놨구요”라고 덧붙였다.

박 이장은 “남은 1년 동안 마을을 위해서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죠. 마을 수도 관련해서 어르신들 부담도 덜어드리고 싶고 어르신들 건강도 신경 써야 하구 요. 또 마을 안길도 좀 확장해서 어르신들 댁까지 편하게 명절날 자녀들이나 위급할 때 차량들이 들어가게도 하고 싶구요”라며 “특히 계곡수나 관정수 문제는 정말 민원이 원만하게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수 십 년간 물 때문에 고생했던 주민들에게 기존보다 많은 수도세를 부담 시키기도 죄송스러운데, 농사에까지 수돗물을 쓰라는 건 정말 부담을 너무 늘리는 일이거든요”라고 말했다.

박 이장과 함께 거닌 율곡마을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 너머로 서로의 집이 다 보이는 정감 있는 마을이었다. 집집마다 개 짖는 소리가 골목 가득 울렸 고, 돌담을 타고 오른 마른넝쿨들이 고풍 스러운 느낌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가는 길에 이거 잡수면서 가소. 우리 마을 찾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취재를 마치고 회관에서 나올 때 한어르신이 따라 나와 손에 잘 익은 귤 네개를 쥐어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어르신이 건네준 귤의 향이 차 안에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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