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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 것(14)농사가 가르쳐 주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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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2  00: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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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태 전)농협중앙회 광양·여수·순천시지부장

성지 순례 차 유럽을 여행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웅장한 신전과 아름다운 성당을 보며 동행인들이 감격할 때, 나는 엉뚱하게도 지금의 모습보다는 신전과 성당을 신축 당시 오직 신의 구원에 매달리며 가난과 열악한 환경,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모습이 먼저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신을 경애한 인간은 돌을 쌓아 성전이나 성당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사랑한 신은 돌을 바수어 흙을 만들지 않았을까?’하고. 100년에 1cm의 느린 속도로 바위를 풍화 시켜 만들어 진다는 소중한 흙은 깊게 파인 주름과 거친 손, 푸른 핏줄이 터질 것 같은 두 다리로 육신을 지탱 하며 흙에 의지해 살아온 농사꾼에게 어떤 생각과 행동과 정체성을 심어 놓았을까. 세상의 모든 생업(生業)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그 존재함에 귀천이 없으며 종사자의 노고를 위로해 주면서도 겸손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라는 지혜를 속삭여 준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한 톨의 흙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고 했던가. 관절과 허리의 통증, 대상포진과 요로결석의 고통 속에서도 농사는 먹고사는 것을 넘어 ’그저 종사함과 반복‘ 만으로도 기도나 염불 못지않은 마음의 평정을 주며, 작은 씨앗에서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줄기와 잎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생명과 번식의 소중함과 순환의 이치를 일깨워 주었다.

내가 농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보조금이 지원되는 퇴비 공급 전이어서 논밭에 퇴비를 주는 농민들이 거의 없었다. 무엇이나 남과 다르게 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수탈농업’이라는 말이 정말 싫었다. 다행히 밭 바로 인근에 소를 많이 기르는 우사가 있어 750여 평의 밭에 50여 작물을 파종할 때 마다 소두엄을 충분이 깔아주고 갈아엎기를 반복하였다. 밭은 지렁이가 우글거리고 작물은 인근 다른 밭 농작물 보다 튼실하고 크게 자라주었다. 택배를 받은 친지들은 시장에서 사 먹는 채소보다 훨씬 맛이 좋다며 고마움을 보내왔다. 나는 퇴비를 많이 주고 행정과 농협의 지도에 따라 병충해를 방지해주는 것이 농사의 전부로 알았다.

누군가는 “1평방미터의 땅을 1년간 들여다보면 한권의 책을 쓸 수도 있다”고 했다. 5년여 세월이 흐른 뒤 농사는 퇴비와 병충해 방제도 중요하지만 의당 존재하여 그 소중함을 잊기 쉬운 물과 햇빛과 적당한 바람과 깨끗한 환경, 각기 다른 거름 성분의 이상적인 조합 등 참으로 많은 지혜와 경험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네 인생살이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농사에서 퇴비가 삶에서 돈이라면 병충해 방제는 경쟁이 될 것이다. 다수확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퇴비를 많이 주려고 하지만 실지 작물은 스스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양분에 10%정도의 추가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학설이 있다. 돈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은 우리들의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중론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 몸의 30배에 달하는 분변토를 만들어주는 지렁이는 물론, 건강한 땅 1g에 존재한다는 4내지 5천종, 10억 여 마리의 세균과 수많은 곰팡이류 등도 아무리 퇴비가 많아도 촉촉한 수분이 없다면 건강하게 존재하지 못해 통기성과 보습성 등 토양에 유익하고 다양한 기능을 원만히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세브란스병원 대장암 권위자 김남규 교수는 『몸이 되살아나는 장 습관』이라는 책에서 질병의 원인 99%가 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장에는 체내면역세포의 70%가 집중돼 있어 노화와 수명까지 에도 영향을 주며, 유전정보의 80%가 담겨 있어 장이 제2의 뇌라고 까지 말한다. 그런데 그 중요기능이 30조의 우리몸 세포보다 많은 우리 몸속에 기생하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 미생물과 기생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즉 좋은 음식물보다 소박한 섬유질을 먹어 장내에 유익 균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장 건강에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손자 놈들이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심고 그 나무들이 크다보니 밭에는 그늘이 많이 생겼다. 놀라운 사실은 아무리 퇴비를 많이 주고 열심히 가꾸어도 햇볕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작물이 잘 자라주지 않았다. 적당한 바람은 뿌리에서 가지끝가지 물의 오르내림을 원활히 해주고 작물들을 운동시켜준다고 한다. 내가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확인은 못했지만 농사에는 인간의 노력과 비교되지 않는 자연의 보살핌과 위대한 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일생을 포도농사로 살아오며 90세를 넘긴 김성순 노인은 “포도가지 중에서 다른 놈 보다 두 세배를 뻗으며 다른 가지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지는 저 스스로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성숙을 위해 혼자 성장하는 가지는 억제해줘야 한다.” 고 60년 농사의 지혜를 말씀하신다. 농사나 인생이나 ‘더불어 살아감의 소중함’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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